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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시네마 천국’으로 떠나다

  • 입력 2020.08.25 08:15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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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세상을 떠났다 (Io Ennio Morricone sono morto)."

무대 위 엔니오 모리코네 / 이미지출처 Genie
무대 위 엔니오 모리코네 / 이미지출처 Genie

[엠디저널] 지난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타계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가 눈을 감기 전 직접 쓴 부고의 짧지만 강렬한 첫 문장이다. 로마에서 태어난 작곡가 모리코네는 평생 고국 이탈리아에서 살았다. 하지만 최근 낙상으로 인해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작곡가 모리코네는 순수 음악을 공부했지만, 가난으로 인해 대중적인 영화 음악을 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트럼펫 주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Conservatorio di Musica Santa Cecilia)에서 트럼펫·작곡·편곡·합창지휘 등을 공부했다. 1960년 베네치아 라페니체극장에서 관현악 협주곡을 초연하는 등 순수음악에 열정을 보였으나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 라디오·텔레비전 등의 편곡을 맡았다.

클래식과 팝, 향수를 자극하는 소리의 사용

그의 음악은 클래식과 팝을 넘나들며 강렬한 기운을 불어넣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모리코네는 1961년 영화 ‘일 페데랄레(Il Federale)’를 통해 영화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첫 사운드트랙 작업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친구 감독 세르조 레오네(Sergio Leone)의 ‘스파게티 웨스턴(또는 마카로니 웨스턴, 1960-70년대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합작으로 제작된 서부영화)’ 영화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1966)의 잇따른 성공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탈리아판 서부극이자 서부영화의 전설이 된 작품 ‘황야의 무법자’에 흐르는 고독한 휘파람 소리는 아직도 우리의 향수를 자극한다. 전자기타와 오보에, 팬플루트 등으로 단순한 멜로디를 즐겨 쓰면서도 탄탄한 베이스와 바로크적 감수성으로 유려한 선율을 담았다. 이처럼 그는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악기의 소리뿐만 아니라 휘파람, 종 등 음악 외적인 소리를 삽입하며 심리학적으로 사용했다.

이후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와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1986),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언터처블’(1987),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천국’(1988), 글렌 고든 카슨 감독의 ‘러브 어페어’(1994) 등의 사운드트랙을 작곡하여 모든 작품마다 성공을 이루는 등 400편이 넘는 영화의 음악을 만든 20세기 최고의 음악가 중 하나이자 영화음악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환상 속에서 시네마 천국으로

그의 음악 중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멜로디는 영화 ‘미션’에 등장한다. 한때 어느 프로그램에서 출연진들이 합창에 도전하는 내용이 방송된 이후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환상 속에서)’의 큰 인기로 많은 대중음악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 곡의 원곡은 오보에를 위한 기악곡이었지만, 영국 태생의 성악가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1998년에 발표한 그녀의 앨범에 ‘Nella Fantasia’라는 제목 아래 새로 가사가 들어간 이 버전을 수록하며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음악회의 프로그램으로 자주 차용되는 이 곡은 바로 영화 ‘미션’의 테마 곡인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에 이탈리아어 가사를 붙여 부른 노래이다. 작곡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하였으며, 앨범 발매 3년 전 사라 브라이트만이 이 곡에 노래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직접 편지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완강히 거절했고, 그녀는 간절한 마음을 알 때까지 2개월마다 부탁의 편지를 쓴 결과, 결국 허락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덕분에 아름다운 멜로디와 더불어 가사 말로 대중들에게 더욱 깊이 스며든 것이다. 

그의 신조는 영화 음악은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영화음악은 연주를 위해 작곡되는 클래식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영화 음악이 가진 목적을 뛰어넘는다고 평가받는다. 그의 영화 음악 중 많은 곡들이 연주곡으로도 쓰였고 영화와 별개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의 대본을 읽으면서 음악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영감을 얻었다. 이처럼 그의 작업에서 자신만의 색을 살리는 것을 중시하며 그만의 ‘영화 음악관’을 확립했다. 그의 업적은 영화의 역사의 한 부분을 만들었고, 이제 그처럼 정통 오케스트라 스코어로 작업하는 영화 음악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대의 영화 음악계에서 그의 생애 작품은 전설이 되고있다. 

“영화음악 작곡가는 연출자가 관념적인 시각으로 펼쳐 보이는 화면을 청각적인 감각의 체험으로 이끌어 내는 주역이다.” 

–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1928~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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