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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이 세상에는 없는 여인들의 아름다움

  • 입력 2008.0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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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는 북(北)프랑스의 카토에서 출생 되었다. 마티스는 원래 파리에서 법학(1887년 - 1889년)을 공부하였는데 1890년부터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파리로 나가)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였다. 1892년에는 파리의 장식미술학교에 적을 두고, 미술학교의 수험준비를 하였으며, 또 아카데미 쥘리앙에서는 부그로의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그 아카데믹한 가르침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루브르미술관에 가서 모사(模寫)에 힘쓰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의 거장 귀스타브 모로의 눈에 들어 그의 유명한 예술학교 (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하여 모로의 자유로운 지도 아래 색채화가로서의 천부적 재질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897년 소시에테 나시오날 전람회에 출품한 ‘독서하는 여인’을 국가가 매입하게 되자 이 전람회의 회원이 되었다. 그 후 피사로 등과 알게 되어 인상파에 접근하였고, 또 보나르나 뷔야르 등의 영향도 받았다. 모로가 죽은 후에는 아카데미 카리에르에 다니며, 드랭과 알게 되었다. 이 무렵 그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웠으나 모든 것을 다 잊고 그림그리기에만 열중하였다. 그러한 그의 모습을 그 스스로가 그린 화실에서의 자화상을 통해 알 수 있다.
소재 면에서 그는 인물의 묘사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삶에 대한 감정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이 인물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선과 색채가 살아 숨 쉬는 화면의 역동성을 마음껏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인물화에는 무엇보다도 화가만의 독특한 색채와 선적(線的)인 요소를 볼 수 있다.
즉 태양의 불꽃을 보는 듯한 강렬한 색채의 화려함과 단순하면서도 일그러진 형태는 그림의 대상을 더욱 덧보이게 한다.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가미하면서 자신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듯이 그림을 그렸으며 또 작가의 대담한 붓 터치는 하나의 리듬을 형성하는 듯 하고 짧은 터치와 굵은 터치의 조화는 마티스만의 율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인물화에 있어서 그 인물을 어떻게 보고 이를 어떻게 화면에 조형하는가의 문제는 화가의 자유이며 유일한 몫이라 할 수 있다. 마티스가 그린 초상화를 정밀하게 분석하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그림들은 실존하는 모델을 놓고서의 사생(寫生)하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만년에 갈수록 자기의 머릿속에서의 상상대로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초상화라 하면 특정한 모델을 놓고 그 인물의 모습을 실사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마티스의 초상화는 모델을 놓고서의 그림도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용모와 자세에서 추출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있으며, 모델 없이 처음부터 자기가 상상한 모습을 그린 것은 마치 시인이 어떤 감상이 떠오르면 시를 읊듯이 또 작곡가가 노래를 작곡하듯이 자기의 상상을 옮긴 초상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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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델을 사용한 초상화는 그 화제(畵題)에 모델의 이름을 넣고 있다. 예를 들면 화가의 아내를 그린 것은 ‘마담 마티스 (1907)’라 하였고 이 그림의 특징은 인상적이고 화려한 색채에 있다. 즉 모자는 선명한 붉은 색에 황금색 문이 든 것을 비록해서, 옷은 검은색인데 붉은 다양한 모양의 문이 박혀있으며 그 동정과 소매 그리고 허리에는 흰색에다 검은 문이 든 화려한 옷이다. 그리고 배경은 청색과 보라색으로 광선의 방향을 나타내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모델의 눈동자는 좌우가 대칭적이며 그 눈길이 관자를 보고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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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 그린 ‘마르궤리테의 초상(1907)’도 화제에 모델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모델을 사생한 그림인데 이를 먼저 그림과 비교하면 이 그림 역시 강한 보색 대비를 사용하고, 색채에 자율성이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먼저의 그림이 야수파란 이름에 걸맞게 충동적인 색채라면, 이 그림은 상당히 잘 정돈된 느낌을 주며 구성에도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동공도 좌우가 뚜렷하며 대칭적이고 초점이 어느 한 곳을 보고 있다.
마티스가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 남긴 글에 ‘초상화는 매우 독특한 예술의 하나이다. 우선은 화가의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며 화가와 모델이 완전히 일체가 되어야한다. 화가는 아무런 선입감 없이 모델의 앞에 서서 마치 어떤 풍경 속에서 풍기는 여러 가지 내음 즉 대지의 내음, 구름의 흐름, 나무들의 움직임으로 풍기는 꽃 내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에 귀기울이듯이 그 모델과 무언의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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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그린 초상화에는 우선 화제에 이름이 들어있지 않다. 그리고 모델의 어떤 특징을 추출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성보다는 상상으로 그렸기 때문에 거의가 표정이 없는 무표정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노출한 듯한 표정이다. 그러한 무표정이 어디에 나타나는가 하면 바로 눈에서 보게 된다. 그러한 그의 작품이 ‘녹색 눈의 여인(1908)’ 이다. 이 그림은 전체가 화려한 빛깔로 구성되어 있으며 배경은 밝은 푸른색이고 적갈색의 짙은 빛깔의 옷과 대조를 이룬다. 이 그림의 여인의 특징은 눈동자가 노색인데다가 크며 무한이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어 눈에 초점이 없다는 것이다. 즉 무방비 한 상태로 자기 자신의 내부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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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린 ‘여인의 얼굴 (1917)’도 화제에 이름이 없는 것으로보아 화가의 상상에 의한 초상화임에 틀림이 없다. 다른 초상화에 비해 그림의 빛깔이 그리 화려하지 않으며 화면 전체가 얼굴로 되어 있어 얼굴 각 부위의 표정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 양 볼이 마르고 광대뼈가 두드러진 것으로보아 여인은 심각한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같으며 시선은 밑으로 주고 있는데 역시 초점이 없는 무한한 거리를 보고 있으며 좌우 동공의 크기가 다른 것으로 보아 이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허탈감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무표정으로 자기의 내심을 드러내고 있다. 즉 화가는 자기의 어떤 순간의 심각한 허탈을 이 여인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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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횐 깃털 모자의 여인 (1919)’도 모델의 특정한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화가의 상상에 의한 여인의 초상화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횐 옷과 깃털이 달린 모자 그리고 검은 몸 장식을 하고 있어 배경의 붉은 색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마티스 그림의 빛깔의 특징이 나타나 있으며, 이 여인은 시선을 수평보다 약간 밑을 보고 있으나 역시 초점이 없는 무한한 거리를 보고 있어 자기의 내심을 드러내고 있다. 눈의 초점은 없으나 좌우 눈동자의 위치가 비교적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위 눈꺼풀이 위로 당겨 올라가 있는 것으로 보아 화가 났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이 보인다.
이렇듯 마티스의 여인의 초상화에서 화제에 여인의 이름이 없는 것은 거의가 화가 자신의 상상에 의해 그린 여인들이며 이 세상에는 없는 여인들이다. 그 여인들은 한결같이 방심하여 무방비한 상태로 자기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누구와도 쉬 사귈 수 있고 친숙해질 수 있어 서로의 내심을 토로할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세상에 없는 그림의 여인들은 화가가 자기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자들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는 예술이란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아름다운 색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 빛깔을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우리의 눈과 마음을 해방의 기쁨으로 충만 시킬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하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