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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어두움 뒤, 진정한 빛을 비추다

  • 입력 2020.09.22 11:09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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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결실과 풍요의 가을, 청명한 하늘 아래 그 정취를 찾게 되는 계절이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면서도 관망할 수많은 없는 시기이다. 전 세계적으로 폐쇄 조치가 완화되고 기업들이 서서히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우리가 고대하던 보통의 일상으로의 회귀가 불안감을 주고 있기도 한 당혹스러운 딜레마를 경험하고 있다.

인류와 함께해 온 문화예술

사람들은 문화예술을 즐기면서 살아간다. 인류 역사와 예술의 기원은 맥을 같이한다. 인류의 예술품이 등장한 것은 빙하기가 절정에 이르렀던 약 2만년 전이었다. 동물의 형상을 뼈에 새긴 그림 또는 석판에 새긴 추상적 형태부터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입체적인 표현력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인류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형태를 비슷한 형상으로 재현하는 일에서부터 그것을 넘어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들이 초기 인류의 예술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눈 앞에 놓인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거나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게 지각하고 감각하며 인식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자신만의 감각과 테크닉으로 새로운 형태로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과 관점을 빚어내는 사람이다.

이처럼 우리는 예술가들이 빚어낸 문화 예술 활동을 통하여 여러 가지 감상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삶의 만족도를 얻게 된다. 하지만 장기화되는 사태로 인해 사회 전반에서 그리고 특히 문화예술계도 위기를 겪고 있다. 해외 유명 연주자들과 연주단체의 내한 공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연주 및 공연들이 취소되고 있는 이 시기와 같이, 18세기 유럽에서도 이러한 모든 시련, ‘기나긴 질병, 어두움, 공포’가 지나가길 염원하는 마음을 예술에 반영한 작곡가와 작품이 있었다.

기나긴 어두움일지라도, 사라지기를 염원하며

대중들에게 ‘사계(Le quattro stagioni, 영: The Four Seasons)’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모테트(Motet) RV. 629 ‘기나긴 질병, 어두움, 공포(Longe mala, umbrae, terrores)’가 그러하다. 모테트는 중세 유럽에서 기원한 다성음악 양식으로 서양음악의 성악곡의 중요한 분야이다. 어원은 라틴어의 movere(move, 움직이다) 또는 이에서 기원한 프랑스어 mot(word, 단어)에서 유래한다.

초기에는 가사를 가진 성부를 지칭했지만 이후 가사를 가진 다성음악 전체를 일컬었다. 내용적인 면에 있어 초기의 가사는 종교적인 내용의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전례나 종교적인 의식, 행사 등에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었지만 점차 사랑을 주제로 하는 불어 가사를 붙이면서 한 음악에 종교적인 가사와 세속적인 가사를 함께 갖게 되어 교회 밖의 세속적인 행사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중세에는 모테트는 전례나 종교의식에 사용된 교회음악 외에도 연인들의 사랑과 사회적인 풍자를 내용으로 하는 세속음악까지도 포함하게 되고, 중세 말기에 이르면서 세속음악의 형식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발디의 모테트 악보 첫페이지 / 이미지출처 IMSLP
비발디의 모테트 악보 첫페이지 / 이미지출처 IMSLP

서양음악사에서 모테트의 출현은 음악적으로는 중세 교회음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한 음악에 있어 종교적인 가사와 세속적인 가사를 함께 사용했기에 한편으로는 교회음악의 세속화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르네상스를 지나 비발디가 활동했던 시기를 일컫는 바로크 시대의 모테트는 무반주 스타일의 모테트에서 Solo(독창)가 추가되고, 기악반주(오르간 등)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비발디의 모테트 ‘Longe mala, umbrae, terrors(기나긴 질병, 어두움, 공포)’는 1720년대 중반 성악(소프라노), 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그리고 바소 콘티누오(basso continuo)를 위해 쓰여진 곡으로, ‘per ogni tempo’로 불리기도 한다. ‘per ogni tempo’는 영어로 ‘for every time’로 직역되는데, 이는 교회 칸타타 중 하나로, 특별한 축일이나 교회 행사를 위해 작곡된 곡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많은 행사들에 사용되는 곡을 일컫는다.

카운터테너 Philippe Jaroussky와 Imaginarium Ensemble의 연주 스틸 컷악기 배치: 좌우 바로크 현악기들, 가운데 하프시코드와 테오르보
카운터테너 Philippe Jaroussky와 Imaginarium Ensemble의 연주 스틸 컷악기 배치: 좌우 바로크 현악기들, 가운데 하프시코드와 테오르보

먹구름 뒤엔 천상의 진정한 빛이

모테트의 첫 번째 아리아는 ‘세상의 모든 나쁜 것들-전쟁이나 흑사병이나 또는 다른 불운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레치타티보(Recitativo, 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에서는 이러한 먹구름들이 사라지는 것을, 두 번째 아리아에서는 천상에서 인간에게 비추는 ‘진정한 빛(vera lux, 영: true light)’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알렐루야(Alleluia)’로 마무리되며 모테트 전체 분위기인 빛과는 다르지만 음악적 효과는 뛰어나게 표현되며 오프닝의 거친 분위기로 돌아온다.

곡의 구성으로 볼 때, 첫 아리아 부분은 세상의 나쁜 것들이 사라지길 염원하는 부분은 매우 빠른 템포로 부르며, 두 번째 아리아의 빛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은 매우 밝고 느리게 표현되고 마지막 알렐루야 파트는 첫 오프닝보다 급한 속도로 진행되어 곡 전체의 밝은 분위기를 더해준다.

이 곡의 구성처럼 기나긴 어려운 시간들이 지나길 염원하는 마음에 이어지는 진정한 빛이 있고 이후에는 더욱 거칠지라도 전체의 밝음을 더해주는 에너지를 보일 것이라는 300년전 작곡가의 염원처럼 현대의 우리에게도 우울해진 이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평화로운 시기가 올 것을 기대하며 모든 의료진과 방역당국 등 코로나19 대응의 최전선에 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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