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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의 미묘한 조화, 고엽음악에 그 목소리를 씌우다 Autumn Leaves
  •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 승인 2020.10.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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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의 포스터 / 이미지출처 : Marcel Carne

[엠디저널] 추억, 그리고 향수를 기억해내는 일에는 편지가 있다. 음악 또한 그러하다. 편지가 사라져가고 있다. 뮤직 플레이어, 턴테이블의 수고로움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 다음에 오는 반전의 큰 대가, 아름다운 정(情)을 영화가 사랑한 음악을 통해서 살펴본다.

소리에 담겨 있는 기억은 우리의 뇌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음악만으로 영화나 특정 장면의 분위기를 기억해내고 또한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며 상대방과의 공통의 대화 소재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처럼 음악이 기억을 불러오며 오래전 음악을 들으면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두뇌와 호르몬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뇌의 알파파(α-wave) 자극은 필요한 섬세함의 자극을 만들어 주는 통로로 이어진다. 보통의 알파파라 하면 자연의 숲소리가 그러한 작용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편안하게 있을 때 알파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억은 감정이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은 대뇌 주름에 기록되어 기분을 좋게 만드는 음악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켜 기분을 더 좋게 하고, 그 반대의 음악은 우울함을 방지하는 세로토닌 분비를 억제하여 우리의 기분을 더욱 안 좋게 하기도 한다. 음악은 언어처럼 공유하는 방식이 비슷하지만, 언어보다 더 주관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비슷한 감정이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음악은 기억을 불러오는 무의식적인 작용을 일으킨다. 이를 이용한 것이 광고음악이나 영화음악으로 영상미와 더불어 사운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파리에 깃드는 바람결과 가을비 떨어지는 소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둠 속 울리는 풀벌레의 울음과 같이 감정을 표현하는 요소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들을 보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와 흥얼거리는 멜로디가 있는데, 이브 몽탕(Yves Montand, 1921-1991)의 ‘고엽(枯葉, Les Feuilles Mortes)’이 그러하다. 해마다 이 계절이 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샹송(Chanson)이다. 

1940년대 후반 이 곡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이브 몽탕’이라는 세계적인 스타를 탄생시켰는데, 그는 1950-60년대 한국의 영화 팬들이 가장 사랑했던 유럽의 배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항구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성장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로 그의 무대를 옮겼다. 이후 1945년 거장 마르셀 카르네(Marcel Carne)감독의 영화 '밤의 문(Les Portes de la nuit)'에 출연했지만 영화가 실패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의 삽입곡인 ‘고엽’이 뒤늦게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를 스타 반열에 올려주었다. 전쟁 후 역사적 수치와 죄책감이 공존하던 파리의 정서를 비극적 사랑을 통해 그려낸 영상 속 ‘고엽’은 영화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이다.

이 곡은 1949년 우리에게 더 익숙한 제목인 ‘Autumn Leaves’로 번안되어 미국에 소개되면서 냇 킹 콜(Nat King Cole),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 등 유명한 영미권 가수들에 의해 불리며, 그는 더욱 세계적인 가수로 성장했다.

영화 ‘밤의 문’ 속 한 장면 / 이미지출처 : Canal Square

시적 리얼리즘의 경지, 사색의 음악

1946년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시인이자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던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 1900-1977)의 시에 프랑스 최고의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조제프 코스마(Joseph Kosma, 1905-1965)가 곡을 붙였다. ‘고엽’이 삽입된 작품의 마르셀 카르네 감독은 프랑스 영화사에서 1930-40년대 영화계를 주도한 조류인 ‘시적 리얼리즘(Poetic Realism)의 경지를 열었다. 영화를 ‘시적 리얼리즘’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한 것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보다는 은유적인 방법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삶을 다루되 이를 시적인 분위기로 인상주의적 조명과 정적인 장면 등 서정적이고 사색적인 감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 혼란스러운 사회를 살아가는 프랑스인들의 불안과 절망을 멜랑콜리한 언어와 이미지로 표현해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흑백필름의 영상처럼 우리의 기억 속 어느 가을날에 들려오는 가랑잎 소리와 함께 허밍으로 함께 공명하는 그 울림은 마치 우리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편지를 적어 내려가는 것과 같다. 마치 음악이 그러하듯이.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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