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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날갯짓김태연 작가의 아침은 변환을 준비한 아침이었다.
  • 양지원(문화예술학 박사/MD편집위원)
  • 승인 2020.10.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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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무리를 지어 다음 해를 기약하는 새 둥지를 찾아 철새가 떼 지어 이동하는 하늘 위 라인이 눈에 띄는 계절! 우리가 무심하게 지상에서 생명 활동을 하는 동안 창공에서는 다양한 새 떼가 근원을 알 수 없는 길 따라 쉼 없이 날갯짓하며 이동한다. 무리 중에 참새 같은 텃새를 제외한 새는 철새 혹은 떠돌이 새, 가창오리 떼이다. 그들의 터전이 유목(nomad)처럼 대부분의 새도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쉼 없는 이동을 자처한다. 이 철새의 이동 경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거리이다. 2만 5,000km를 이동하는 철새와 북극에서 남극까지 이동하는 철새도 있다.

이들의 이동 경로는 생명을 건 처절한 모험의 여정이 된다. 새는 기상을 예측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동하는 중 고위험에 노출되어 매해 개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조류가 생명을 잃는다. 태풍과 눈보라, 안개와 폭우에서 한밤의 비상 중 시야 장애로 인해 이동 중인 철새가 한꺼번에 떼 죽음을 당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철새는 왜 이동하고, 어디를 거쳐 어떻게 제자리로 오게 될까! 그 신비를 알아내려고 인류는 오랜 세월 공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류학자의 연구 프로젝트로 발목에 가락지를 끼워 각국에서 날려 보낸 수백만 마리의 철새가 세계 각처를 날아다니는 경로를 파악한다.

철새의 신비에 대해 인류는 아직 미미한 윤곽으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4계절 낮의 길이가 달라져 새가 이동 불안(migratory restlessness)을 느낀다고 하는 설,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이동한다는 설, 태양과 별자리를 방향 지표로 삼는다는 설이 있지만 모든 조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철새는 인간의 근본을 생각하게 한다. 이는 목숨을 건 유목의 세월을 견뎌온 인류의 조상을 생각하게 한다.

고갱(P. Gauguin)의 마지막 대작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문학이 회화이고 그 예술의 가치를 있게 하는 아젠다임을 말해준다.  

인류는 철새처럼 쉬지 않고 어딘가로 이동하는지 모르고 있다. 자신이 정착민이라는 믿음, 자신이 텃새라는 믿음조차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찰나적이고 한정적인 한계를 긋게 되는 이치다. 문명의 이기와 탐욕은 극한점으로 와있다. 철새를 보며 생명체의 본능 속에 숙명의 회로를 생각한다. 비상하려는 날개로 첫 아침을 맞이한다.

회귀로의 본능을 추구하는 숙명의 회로.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숙명에 부응하는 생명체의 몸짓은 아름답고 장렬함, 그것이다.

날개짓이었다, 2018, Acrylic on canvas, 116.7x90.9cm

시간의 회귀(回歸)

근원(根源), 그 태초의 열림을 작가는 화면으로 가져왔다. 빗살무늬 토기의 '빗살'을 머리빗의 상징이 아닌 햇빛의 '빛살'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물적 해석에 있어 명칭 관점에서 고대문화 원형을 반영한 해석의 평가이다. 이렇듯 고고학 해석의 방법론으로 고대문화의 원형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방법으로 사징(四徵)은 문징(문헌자료), 물징(유적과 유물), 사징(풍습), 구징(신화, 전설, 민담 등 구비 자료)이 있다. 

‘고대 근동학(Ancient Near Eastern Studies)’이라는 학문이 있다. 지금 '중동'이라고 불리는 ‘고대 근동’은 유럽에서 바라본 시각에서 붙여진 명칭이지만, 이미 학술 용어로 자리매김했다. 어떤 대상의 배경을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의 앞이나 뒤를 가능한 한 정확하고 자세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듯 고대 이스라엘의 배경을 연구하는 학문을 '고대 근동학'이라고 한다. 구약성경에도 그 배경이 있다. 고대 근동은 하나의 '세계'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꽃을 피웠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의 시작이었던 기원전 33세기부터 이 지역에서는 수많은 나라가 생기고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에 고대 이집트도 찬란한 문명이 피어났다. 이 지역을 가장 넓게 통일한 페르시아 제국이 알렉산드로스 대제에게 무릎 꿇기까지 약 3천 년 동안, 고대 근동은 인류사의 첫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으며, 고대 이스라엘은 이 지역의 작은 일부였다.

고대 근동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수메르, 아카드, 바빌론, 아시리아 제국이 명멸한 메소포타미아(동부지역), 남부 셈어를 쓰는 언제나 크고 강력한 나라 이집트, 기원전 13세기까지 이 지역의 패권을 놓고 다투며 저마다 독특한 종교 문화를 이룬 북쪽 아나톨리아 반도의 히타이트 제국, 그리고 주로 교역로 역할을 했던 약소국들이 모여있는 레반트(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으로 나뉜다.

‘문화적 강’에 몸을 담그다

기록서로의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문화에 기반한 인문학적 사고가 요구된다’고할 때, 고대 근동 문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존 H. 월튼(John H. Walton, 1952~) 미국 휘튼대 교수는 “성경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고대 세계의 ‘문화적 강(Cultural River)’에 우리 몸을 담가야 한다”고 말했다. 구약의 충실한 해석을 위해 풍부한 자료를 활용해 그들의 문화와 친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강'은 당대 문화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고고학계는 100만 점이 넘는 문자 문헌을 발견해 상당 부분 연구해 왔다. 이들 문헌은 성경을 이해하는 결정적 지식을 전해준다. 월튼 교수는 이런 문헌과 자료를 ‘문화와 문화 사이를 연결하는 창문’, ‘열쇠의 열림 방향’으로 비유하고 있다.

작가는 작업으로 말하고 있다. 고고학자가 고대 근동 역사(history)의 그 스토리(story)를 해석하듯 김태연 작가의 화폭에 담아내는 작가의 작업으로 고대 근동의 서사를 컬러로 입혀 냈다.

김 작가의 화폭은 세계의 흐름을 현재의 시각에서 고대 근동의 문명으로 가져갔다. 그가 차용한 화면의 흙과 선, 면의 공간에서 작가는 머물러 있는 것을 모두 지우고 지속적 변형의 지금을 이야기한다. 그 변형을 마주하며 작가 자신과 인간의 변형 미래를 작품의 화면에 담고 있다.

김태연 작가

지금,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본능 속에 숨어있는 숙명의 회로를 따라,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의 극점을 향해 쉬지 않고 가고 있다. 잠시 파우제(Pause)가 있어야 하는 순간에 와 있다.  

다리가 아니면 날개, 그것이 있으니 쉼 없이 움직이고 쉼 없는 변화를 창출한다. 영원한 변화, 그것이 곧 우주의 섭리, 생리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그 리듬에 맞춰 자기 삶의 춤을 추고 있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날갯짓은 한반도의 세계관, 그 5천 년 역사를 더 확대, 확장시키는 작가의 날갯짓과 같다. 그 엄숙한 비상으로!

그대는, 그리고 우리는! 방향을 다시 선정해야 할 때임을 작가 김태연의 화풍에서 끌어오고 있다. 

김태연(Kim, Tae Yeon)

1984 선화예고 졸업

1988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2020 개인전(모리스 갤러리)

2019 개인전(갤러리인사이트)

2018 개인전(H갤러리)

외 다수 그룹전)

자료제공 Gallery Blue

양지원(문화예술학 박사/MD편집위원)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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