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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낭만적 감성을 담은 선율

드보르작의 낭만적 소품(Romantic Pieces)

  • 입력 2020.11.26 10:53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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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어느 계절보다 아름답고 특별한 이 계절, 깊어가는 늦가을의 낭만을 느끼는 시기이다. 계절의 깊이는 구슬프기도 하고 엄숙하기도 한 보헤미안적 애수를 짙게 풍기는 선율로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 / 이미지출처 : Vancouver Sun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 / 이미지출처 : Vancouver Sun

첼로의 짙은 선율

어느 날 저녁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들려온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Daniel Müller-Schott)의 드보르작(A. Dvorak, 1841-1904)의 ‘4개의 낭만적 소품(Romantic Pieces for Violin and Piano, Op. 75, B. 150)’이 그러했다. 중저음의 선율로 편곡된 그 연주는 바이올린 원곡과는 또 다른 이 곡의 매력을 찾아주었다. 이 4개의 모음곡은 1887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작곡되었고, 이전의 작곡에서는 2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소품(Miniatures) 3중주로 편곡되기도 했다.

드보르작은 비올라 연주자로도 활동했는데, 그는 이 곡을 아마추어 연주자와 함께 연주 가능한 작품으로 구성했지만, 아마추어 연주자가 연주하기엔 곡이 어렵다는 생각에 바가텔(Bagatelles)형식의 곡을 쓰게 됐다. 작곡 초기에 그는 카바티나(Cavatina), 카프리치오(Capriccio), 로망스(Romance), 엘레지(또는 발라드, Elegy or Ballad)와 같이 4개의 부분으로 구성했고, 이후 이 곡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4개의 낭만적 소품’이라는 타이틀로 2중주 곡으로 편곡되면서 당시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연주 레퍼토리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드보르작의 ‘가정음악’

이 곡은 드보르작이 자신의 원곡을 새로운 편성으로 편곡하면서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 ‘소품들(Miniatures)’은 가정음악회를 위해 탄생한 작품이었다. 1886년부터 2년간 그의 장모 집에서 지낼 때 알게 된 화학을 전공하던 대학생, 요제프 크루이스(Joseph Kruis)를 만나게 된다.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는 드보르작의 친구 얀 펠리칸(Jan Pelikan)과 함께 바이올린 듀엣을 연주하곤 했는데, 바로 이 만남이 드보르작이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트리오’를 쓰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드보르작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하면서, 기존의 악장에 붙은 제목을 그대로 쓰지 않고, 카바티나, 카프리치오, 로망스, 엘레지를 각각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Allegro moderato), 2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Allegro maestoso), 3악장 알레그로 아파시오나토(Allegro appassionato), 4악장 라르게토(Larghetto)와 
같이 악장의 빠르기말로 대체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곡에서의 약간의 변형을 제외하고 ‘4개의 낭만적 소품’과 ‘소품들’은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편곡되면서 마지막 4악장은 앞선 세 곡의 길이와 비슷한 길이로 이 곡의 절정에 다다르게 했다.

안톤 드보르작 / 이미지출처 : Britannica
안톤 드보르작 / 이미지출처 : Britannica

이 시대의 작품들 중 이 정도의 장대한 엘레지는 흔치 않다. 각 곡에 붙이려던 별칭은 그 곡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고 이 곡은 비록 작은 곡들이지만 드보르작의 보헤미안적 정서와 낭만이 가득한 작품임을 보여준다. 드보르작은 보헤미아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음악가로 슬라브 민요의 선율을 바탕으로 하여 보헤미안적 정서를 낭만주의 음악 언어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하지만, 선율로써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을 담아냈다. 

19세기 드보르작이 자신의 곡을 재편성해 새로운 2중주곡을 만들어 낸 것처럼 2014년에는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편성으로 21세기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독일의 남성 첼리스트를 대표하는 연주자인 다니엘 뮐러 쇼트는 2012년 한국에서의 독주회 이후 한국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연주자이다. 이 곡은 2014년 월드투어를 앞두고 발매한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피아니스트 로버트 쿨렉(Robert Kulek)과 함께 불 같은 테크닉을 가진 그의 강렬한 해석과 첼로의 깊은 음색으로 이 곡의 장대한 엘레지 피날레를 장식했다. 작곡가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선율로 사람들을 감동시켜왔고 연주자들은 각자의 몫으로 그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만추(滿秋)의 서정이 깊어지는 만큼 짙은 첼로의 선율로 풀어낸 바이올린 소품과 함께 도심 속 은행잎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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