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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 듯이 하는 것

폴 클레의 ‘파르나소스 산에서’

  • 입력 2020.12.31 13:46
  • 수정 2020.12.31 13:53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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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스위스의 화가 폴 클레(Paul Klee 1879~1940)는 독일 베른 근교 뮌헨부호제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는 모두가 음악가이었다.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1898년 고교를 졸업하고서는 미술을 택하여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한 후 1901년까지 미술을 공부하고서는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폴 클레의 초상과 그의 싸인. 베른, 베른 미술관
폴 클레의 초상과 그의 싸인. 베른, 베른 미술관

클레는 30대 중반이 될 때도 자신의 고유한 색채를 발견하지 못해 고심했다. 그러다가 1914년에 떠난 튀니지 여행 덕분에 중요한 분기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북아프리카의 강렬한 태양 속에서 갑자기 색채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클레는 당시 일기에 이렇게 썼다. ‘색채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을 잡으려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 이 행복한 순간의 의미는 바로 색채와 내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화가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클레는 새로운 경지로 도약하는 듯이 보였으며 그려진 결과로서의 작품이 아니라, 작품의 생성 과정이야말로 창조적이라는 신념이 더욱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그의 미술을 자연 그대로의 현상에 대한 묘사에서 추상 경향의 미술로 바꾸어놓았다. 그의 표현대로 ‘기억을 기초로 한 추상미술’로 변화시킨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보다 피안의 세계가 더 중요하다는 회화신념을 굳히게 되어 색채에 눈을 뜨고 새로운 창작의 세계로 들어갔으며 기성화법의 모방이 아닌 여러 가지 혼합기법을 사용하던 것이다. 그 결과 선과 형, 투명한 색조의 음악적 톤이 결합 되어 사물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 진실을 포착하기에 이르렀다.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 듯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 그는 눈에 보이는 대상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또한 이것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상을 자연 형성력의 근원으로 여겼다. 그러면서도 그의 그림에는 유모아가 저변에 깔리는 것이 특징이다.

클레 작: ‘큰길과 샛길’(1929) 퀘룬, 트로이 미술관
클레 작: ‘큰길과 샛길’(1929) 퀘룬, 트로이 미술관

그가 1928년 말에서 1929년 초까지 이집트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큰길과 샛길’(1929)이라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 조형 방식에는 새로운 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마도 동양풍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 아닌가 생각되며 가느다란 대상(帶狀)의 색층(色層)을 수평으로 여러 층 쌓아 올리고는 이을 세로로 분할 하여 나가는 기법은 강이나 논과 밭 그리고 평야에서 얻은 영감과 동시에 여행지에서 경험한 문명의 자연과 역사 그리고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추상적으로 표현하고는 그 가운데에 그곳의 풍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질서와 무질서,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선의 배합으로 교묘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클레는 그림에 있어서 점, 선, 면, 공간이 지니는 에너지를 놀라울 정도로 정밀하게 분석하여 과학적인 태도로 그림의 기본요소인 형태의 표현에 신중했다.

또한, 이런 추궁의 과정에는 언제나 시적(詩的)인 착상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그의 논문 ‘창작에 대한 나의 신조 고백’(1920)에서 엿볼 수 있다. 이상적인 형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한 규율과 자유분방한 공상이 서로 결합하여 협력하여야 하며 이는 점에서 시작된다. 즉 점이라는 소단위가 움직이며 지어내는 창조행위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이러한 그의 생각은 당시의 시인이나 음악가 가운데서도 이에 깊이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클레 작: ‘파르나소스 산에서’(1932) 베른, 베른 미술관
클레 작: ‘파르나소스 산에서’(1932) 베른, 베른 미술관

이러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작품으로는 ‘파르나소스 산에서’(1932)를 들 수 있다. 점묘(點描)주의적인 색점(色点)의 배열이 영원히 빛나는 모자이크와 같이 색채를 발하고, 땅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단형(短形)의 색면(色面)들이 무리 지어 배열되고 있다. 이러한 화법은 클레가 색채에 대해서 눈을 뜨면서 시작된 것으로 이 그림에서는 빛을 발하는 무수한 색점들이 땅과 산 위를 덮어 끝없는 빛의 향연을 펼치고 있으며 여기서는 검은색과 흰색의 윤곽선 자체도 빛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아포론과 뮤즈들이 출입하던 산기슭의 문은 아직 붉은 태양의 빛을 받지 않아 누군가가 찾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행복과 희망의 문이 되고 있다. 이처럼 클레는 파르나스 산 전체를 색채로 덮고 말았다.

클레는 자기가 표현하는 선에 관해서 기술하기를 운동의 행위를 처음 일으키는 선(線), 계속되던 운동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중단되는 선, 운동의 계속과 휴식이 반복되는 분절(分節)된 선, 얼마만큼 멀리 왔는가를 돌이켜 보는 반대 운동의 선, 마음속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를 망설이는 선의 묶음, 강 위쪽에는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다리의 아-치, 작은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거슬러 오를 때의 파동, 처음 만날 때 기쁨이 따르는 수렴(收斂)의 선, 점차 사이가 벌어지면 달리게 되는 평행선 등 선 표현의 종류와 그 강약에 관해서 기술하였다.

클레 작: ‘억제되지 않는 흐름’(1934) 베른, 개인 소장
클레 작: ‘억제되지 않는 흐름’(1934) 베른, 개인 소장

이러한 선의 종류와 강약을 가장 잘 표현한 그의 작품으로는 ‘억제되지 않는 흐름’(1934)이 있다. 화가는 물이 범람하는 장면을 그리면서 억제되었던 감정이 풀리면서 심리적인 흥분을 억제할 수 없었던지 핑크와 푸른색의 묶음 대(帶)로 흐름이 마치 리듬을 타고 흐르는 듯이 표현하였다. 이 물의 흐름이 점점 격해지면 주변의 땅을 덮쳐 모든 것을 흐름에 떠내려가게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그 흐름의 리듬은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되어 멈출 수가 없다.

클레가 남긴 기술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하나의 과도기인 것으로 어제의 세계에서 오늘의 세계로 이행되는 과정을 사는 과정에 미련이 남는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배회하는 가운데 공포를 느끼게 되고 세상이 공포로 충만 되면 될수록 예술은 추상적으로 된다. 추상의 예술은 행복한 시대에 번영하는 법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였다고 생각되는 것으로는 ‘공포’(1934)라는 작품이 있다.

클레 작: ‘공포’(1934) 베른, 개인 소장
클레 작: ‘공포’(1934) 베른, 개인 소장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서운 힘이 옆 자락에서 손을 벌리고 다가온다.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몸을 작게 웅크리고 되도록 가장자리로 몸을 피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무서운 힘은 그의 거대한 자루 속에 그 작은 생명을 몰아넣는다. 공포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온다. 붉은 표직(염색체의 표시인 듯)을 지닌 방금 태어난 듯한 둥근 생명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극도로 단순한 형체가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농축된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클레의 그림을 보면 추상적인 곡선과 원, 삼각과 사각 등의 요소가 서로 결합 되어 이루어지는데 풍부한 암시가 생성의 비밀로서 시적 요소와 건축적인 요소가 결합 된 꿈이 작은 화면에 다종다양하게 실현된다. 그의 화면에 나타나는 형상은 이승과 저승의 바람을 타고 생성 성장 된 현상 인양 신비의 눈을 뜨게 한다. 이러한 그의 작품으로는 ‘루체른 근교의 공원’(1938)이라는 그림이 있다.

클레 작: ‘루체른 근교의 공원’(1938) 베른, 베른 미술관
클레 작: ‘루체른 근교의 공원’(1938) 베른, 베른 미술관

나무나 과일을 암시하는 검은 기호(記號)는 모두가 흰색 테두리로 둘려져 그 검은 기호들을 돋보이게 하며 또 그 주변은 따스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을 주는 색채들로 감싸져 검은 기호들은 튀어나와 보이면서 그 존재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색과 색의 배열과 배합은 화면 전체를 더욱 화려하고 빛나게 한다.

이것은 만년의 클레가 도달한 가장 행복한 회화시(繪畵詩)의 세계를 암시하여 그가 신조로 하고 있던 ‘예술은 눈에 보이는 것을 새삼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 듯이 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는 창조에 대한 신념으로 ‘보이지 않는 힘’ 즉 사물의 근본을 창조의 용광로에 넣어 그곳에서 보이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추려내 구성요소로 하기 때문에 비할 데 없이 복잡한 것 같지만 그 본류를 따라 올라가면 보이지 않았던 근원을 찾아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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