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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환희의 그날을 기다리며
  •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 승인 2020.12.3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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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한 해를 정리하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 들려오는 익숙한 소리가 있다. 보신각의 제야의 종소리, 전국 각지의 음악홀에서는 베토벤의 선율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올해는 최근 또다시 코로나 19의 수도권 확산세로 인해 1953년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타종 행사가 취소되었다. 음악계에서도 연말 시즌은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연주회 나들이 계획으로 바쁜 시기였으나 올해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2020년은 세기의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로 분주할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많은 부분 취소되거나 축소하여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도 롯데콘서트홀에서 작년에 부임한 새 음악감독 오스모 벤스케(Osmo Vänskä)의 지휘로 12월 19~20일로 기획되었던 베토벤 교향곡 ‘합창’ 연주가 취소되었다가, 최근 재오픈하여 수석 객원지휘자인 마르쿠스 슈텐츠(Markus Stenz)의 지휘로 변경되어 띄어앉기 좌석 운영과 더불어 연주일을 하루 더 늘려 금요일부터 3일 간 진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확산세가 심해질 경우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전환기 시대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평가받는 예술가이다. 대중들에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작곡가로 기억되며 올해는 어느 때보다 자주 그의 선율이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또한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음악사적으로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이룬 혁명적 작품을 중심으로 음반사 워너 클래식은 ‘Heroic Beethoven(영웅적인 베토벤)’을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베토벤 하우스 내 실내악 홀 이미지출처 NRW Tourism

베토벤의 도시, 본(Bonn)

베토벤의 출생지이며 유년기를 지낸 독일 서부의 본(Bonn)은 그의 위대한 음악 여정이 시작된 곳으로 언론의 조명과 대중의 발걸음이 머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2016년 7월 이후 독일 연방 정부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Land Nordrhein-Westfalen, NRW), 라인-지크(Rhein-Sieg) 지구 그리고 본시 정부와 함께 베토벤 하우스 재단(Stiftung Beethoven-Haus)을 중심으로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주관할 기관인 Beethoven Jubiläums GmbH(Beethoven Anniversary Society)를 설립하여 ‘BTHVN 2020’이라는 슬로건으로 올해를 준비해 왔다.

BTHVN 2020을 중심으로 본의 베토벤 하우스 박물관, 베토벤 오케스트라 본, 테아터 본과의 협력으로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한 오페라와 가곡까지 베토벤의 천재적 음악성을 기리는 연주회와 공연이 기획되었고 더불어 베토벤과 음악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를 다루는 전시까지 선보여 청각과 시각을 모두 사로잡는 기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베토벤의 도시인 본의 이미지 향상과 함께 콘서트, 전시회, 오페라, 발레, 연극, 심포지엄 등 많은 행사가 준비되었지만 대부분의 대면 행사가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공개되며 전 세계에서 행사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연주자들이 각자 녹음해서 보낸 파일을 모아 편곡한 베토벤의 음악부터 3D로 보는 그의 자필 악보, 젊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분데스쿤스트할레(Bundeskunsthalle Bonn)에서는 베토벤의 생활, 작업, 환경, 음악작품에 대한 전시가 진행중인데 12월 17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360° VR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마침은 시작의 또다른 의미

우리나라에서는 취소되었던 서울시향의 베토벤 ‘합창’ 연주가 재오픈되어 한 해를 마무리하며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베토벤의 교향곡 9번 Op. 125은 ‘합창’ 교향곡으로 많이 불린다. 이는 마지막 악장인 4악장에서 흔히 관현악(기악)을 위한 음악인 교향곡 역사상 처음으로 인성(人聲), 즉 합창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4악장에 나오는 독창, 합창은 독일의 시인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가 1785년에 집필한 시 ‘환희의 송가(Ode an die Freude, 영: Ode to Joy)’에 곡을 붙였다. 본래 실러는 이 시를 ‘자유(Freiheit)’로 기획했으나 당시 검열의 강도가 강했기 때문에 ‘환희(Freude)’로 바꾸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은 시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 아닌, 시의 앞부분 바리톤이 “오 벗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우리 한 번 더 즐겁고 기쁨에 넘치는 노래를 불러보세. 환희여! 환희여!”라는 가사를 선창하고 이어 시를 붙였다.

베토벤의 도시 본에 위치한 베토벤하우스 이미지출처 In Bonn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은 1824년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Theater am Kärntnertor)에서 초연되었는데 연주를 마치자마자 연주자와 청중은 열광했다. 그러나 베토벤 자신은 이를 알지 못했다. 그는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 콘트랄토(Contralto, 여성 최저 음역, 메조소프라노와 테너 사이의 음역) 솔리스트였던 카롤리네 웅거(Caroline Unger)가 그를 열광하는 청중 쪽으로 향하게 한 뒤에야 그는 이 환호성을 알아차렸다. 실제 연주의 지휘는 카펠 마이스터(Kapellmeister, 관현악단이나 합창단의 지휘자)였던 미하일 움라우프(Michael Umlauf)가 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베토벤도 지휘대에 함께였다.

무대에 오르는 인원이 최대 2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전체가 한마음으로 부르는 장엄한 합창은 특별한 음향 장치가 없더라도 객석 끝자리의 청중의 가슴까지도 깊이 울림을 준다. 이 때문에 한 해 동안의 반목과 갈등을 해소한다는 의미로 연말에 즐겨 연주된다.

세기의 전환점을 지나 인류 역사의 전환점인 지금, 새로운 철학은 더 혼돈을 가중시키는 무질서의 부작용이 온다. 지성의 힘은 각자의 자리에서 심연과 몰두로 희생이 아닌 배려의 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로 귀결된다. 음악은 이렇게 들려오고 있다. 네모진 기계를 던지고 세상을 향해 멀리나아갈 수 있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디지털 안에 갇힌 영혼들에게 선사하는 자유와 환희의 송가이다.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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