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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수록 요구되는 인정어린 사랑 ‘소아마비’- 화가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21.02.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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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54)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가 정상적으로 발육하지 못하고 또 열여덟 살에 당한 교통사고로 척추와 우측 발을 30여 회의 수술을 받았으며, 세 번 시도한 임신도 유산으로 실패한 끝에 47세로 사망한 그녀는 자신의 고통에 찬 생애를 적나라하게 화폭에 담았으니 그녀가 남긴 그림들을 보면서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헤아려 보기로 한다.

프리다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9개월 동안 앓고 나서 치유는 되었으나 우측 다리에 마비가 와서 가느다란 나뭇가지처럼 말라버렸다. 그녀는 아버지의 강한 의지에 따라 마비된 다리의 기능회복을 위해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멕시코의 양가의 규수들에게는 결코 할 수 없는 수영, 스케이트, 축구 심지어는 레슬링까지 시켜 보았으나 허사였다.

프리다 칼로의 초상

프리다는 점점 크면서 자기의 가느다란 다리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게 되면서 가늘어진 다리에는 양말을 세 겹 네 겹으로 신고 또 우측에만은 힐이 달린 신발을 신어 이를 가려 보려 했다.

이렇게 불행을 딛고 자란 프리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에 시달림이 또 닥쳐왔다. 1925년 9월 17일 그녀가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사고로 스테인리스 손잡이가 그녀의 복부를 관통하여 척추와 골반에 골절이 야기되면서 자궁을 다쳤으며 우측 다리에는 11개소의 골절, 그리고 늑골과 쇄골 골절상을 입고 병원에 운반되었을 때 의사들은 고개를 흔들며 그녀는 살릴 수 없다고 하였다.

프리다는 많은 석고로 전신을 고정하여 마치 석관(石棺)에 들어있는 시체처럼 보였으며, 이렇게 석관에 든 채로의 생활을 한 달 나머지 지속하다가 생명은 구출되었으며 수술은 일단 성공한 듯하였으나 1년도 채 못가서 통증이 재발해 그녀의 생애를 통해 33회나 수술을 받았으며 통증이 척추와 우측 다리에 남아 평생을 괴롭혔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그녀의 몸으로는 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그림물감을 사다주고 그림을 그릴 것을 권했다. 그리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고이래 인생을 재출발하는 것이 그녀의 강박관념으로 작용하면서 그녀는 사물을 보이는 그대로의 진실을 그리게 되어 결국 사고가 그녀의 인생을 변화시키게 된 셈이 되었으며 그러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노력하여 얻은 것을 화폭에 담으려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라는 멕시코 최고의 화가를 알게 되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으며 나이 차이가 스무 살 이상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결혼하였다. 즉 그녀에게는 그림이 그와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며, 이리저리 만신창이 된 자기 육신으로부터의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육신의 아픔만큼이나 리베라는 그녀를 아프게 하였다. 리베라는 지칠 줄 모르는 정력으로 수많은 여성과 관계 했다. 그 공공연한 애정행각은 그녀를 멍들게 했으며, 특히 그의 여성 편력이 프리다의 동생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프리다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좌절했다.

칼로 작: ‘작은 상처’ 1935,

뻔뻔스러운 리베라는 그저 세상에 많은 여자에게 잠시 한눈팔았을 뿐이었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송곳에 찔려 온몸이 피범벅이 되는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하여 ‘작은 상처’(1935)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이 프리다이며 송곳을 쥐고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리베라이다. 그림 윗부분에는 ‘몇 번 찔렀을 뿐인데’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리베라는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 손에 든 송곳으로 프리다를 찌른 것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 리베라가 프리다를 죽일 목적으로 치명상을 가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무리 작은 상처이지만 너무 자주 받다 보니 프리다는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려 죽게 되었다는 듯이 프리다는 눈을 감고 있다. 또 그 상처 가운데는 피부를 찌른 것(전문 용어로는 자상(刺傷)이라함)과 어떤 것은 피부를 뚫은 것(전문 용어로는 자창(刺創)이라함)이 있는데 이것은 리베라가 상대하였던 여인에 따라 프리다가 받은 상처의 정도를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알몸이 되어 침대에 누운 프리다의 오른쪽 발에는 양말과 하이힐이 신켜져 있는 것은 그녀의 어릴 적부터의 병인 소아마비로 마비된 다리를 표현한 것으로 몸은 황폐할 대로 황폐해졌는데 거기에다 여인들과의 관계로 정신적인 고통마저 받으니 프리다는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야만적인 바람둥이 리베라가 자신의 동생 크리스티나 마저 건드리자 프리다도 다른 남자를 찾았고 동성애도 가졌다. 이것은 리베라에 대한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지만, 사람은 아플수록 인정어린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솔직한 고백이 될 것 같다. 말년에 그녀는 동성애마저 하며 인정어린 사랑을 희구한 것이다.

프리다의 이 유명한 연애 사건은 당시 리베라의 도움으로 멕시코에 망명해 와서 프리다의 집에 머물고 있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주역 트로츠키와의 애정행각이다. 두 사람은 책 속에 편지를 끼워 주고받으며 밀회를 즐겼으나 트로츠키의 아내에게 들켜 그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한동안 리베라와 프리다는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했으나 그들 내면 깊은 곳에는 지상에서 운명을 함께할 단 한 사람의 연인이며 예술의 동반자임을 서로가 확인하고 있었다. 그녀는 리베라의 못된 여인 행각에는 여성으로서 질투하고 증오하며 괴로워했으나, 리베라의 예술적 열정과 그가 창조해내는 작품에 대해서는 한없는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칼로 작: ‘골절된 척추’ 1944, 멕시코시티, 로레스 올메드 파티노 미술관

프리다는 대부분 그림에 자신을 모델로 등장시켰다. 소녀 시절 때부터 꿈이었던 아기 갖기가 유산으로 실패한 아픔을 그림으로 표현했으며, 수술 과정의 모진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다. 자신의 알몸에 못이 박힌 것으로 절박한 고통을 표현한 것이 ‘골절된 척주’(1944)이다.

신체가 척추를 세로로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그 갈라진 사이로 쇠파이프의 묶음이 박혀 있고, 갑옷 같은 코르셋이 파괴된 몸을 지탱하고 있다. 몸에는 무수히 박힌 못으로 그 아픔을 나타냈는데 이렇게 몸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은 아마도 이 그림 이외에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또 눈에서는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눈물을 통해 몸의 아픔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슬픔마저 표현하였다.

이러한 비극적인 자화상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딘가 위험이 있는 표정과 가슴을 편 당당한 자세로서 여인의 아름다움을 나타냈는데 특히 유방만은 어떤 상처 없이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자기애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다는 47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그녀의 사인은 폐전색증(肺栓塞症)으로 발표되었는데 그녀를 담당했던 간호사의 증언에 의하면 정량이 7알로 되어있던 수면제가 프리다가 죽은 날 아침에 세어보니 11알이나 모자랐다는 것이다. 리베라도 그녀의 자살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를 아끼던 많은 사람은 그녀가 마지막까지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살려고 한 강한 의지는 높이 평가하여야 함을 주장하였다.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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