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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소리 온누리에 펼치다

  • 입력 2021.02.08 11:11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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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2021년 신년의 아침이 밝았다. 팬데믹 상황에서 권장하고 있는 거리두기로 인해 전 세계의 문화행사도 영향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많은 연주 및 행사들은 연기 또는 축소 운영되고 있는데 매년 첫날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도 올해는 관객 없이 진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방역을 위해 1월 초까지 콘서트 개최를 금지한 데 따른 조처이다.

이러한 문화행사의 축소는 물론 영상을 통한 공연 실황으로 대체되곤 하지만, ‘콘서트 고어(concertgoer)’들에게는 큰 시련일 것이다. 콘서트 고어는 콘서트뿐만 아니라 연주회장에 가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을 일컫는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본다면 콘서트 홀 좌석에서만이 아닌, 오디오와 라디오를 포함하여 일상 곳곳에서 음악을 즐기는 부지런한 음악 애호가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빈 신년음악회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Neujahrskonzert der Wiener Philharmoniker)는 유구한 전통과 아름다운 음악의 향연으로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매년 새해 첫날 아침 열리는 정기연주회로, 빈의 무직페어라인(Musikverein) 황금홀(Goldener Saal)에서 오전 11시 15분부터 시작된다. 음악회 프로그램은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the Strauss Family; 슈트라우스 1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다양한 왈츠와 폴카, 행진곡, 서곡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가벼운 레퍼토리들로 이루어지고 일반 음악회에서는 보기 힘든 여러 이벤트가 함께 열리기도 하기에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유쾌하고 활기차며 열정과 생명력을 화려한 기악 편성으로 담아냈다. 그들은 상류사회의 사교음악으로 치부되었던 춤곡을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위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왕족이나 귀족들이 단순하게 춤을 추기 위해 필요한 부수적인 춤곡이 아닌 한 편의 아름다운 시나 무언극으로 여겨진다.

3만 송이의 희고 붉은 장미, 카네이션, 백합으로 수놓인 무직페어라인의 황금빛 내부 장식과 경쾌한 왈츠의 조화(調和, harmony)는 객석의 관객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언젠가 꼭 가고 싶은 도시로 기억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금빛 홀을 장식하는 꽃들은 1980년부터 2013년까지는 이탈리아 북서부 산레모(Sanremo)에서, 2014년 이후로는 빈 시립 정원(Wiener Stadtgärten)에서 공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연주의 TV 중계에서는 공연 전 미리 촬영해 놓은 빈 국립오페라 발레단(Wiener Staatsballett)의 발레를 함께 볼 수 있다.

“Prosit Neujahr!(새해를 축하합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건네는 신년 인사에 이어 연주가 시작된다. 오케스트라는 동일한 콘서트 프로그램으로 12월 30일(프리뷰 콘서트), 31일(이브 콘서트) 그리고 다음 해인 1월 1일 연주를 하는데, 마지막 연주만 정기적으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된다. 무관중 공연 이전에는 이 신년음악회의 입장권 구하기는 (총 세 번에 걸친 연주일지라도) 전 세계의 클래식 음악회 중 가장 어려운 미션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예매로 티켓을 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며 매해 1월에 빈 필하모닉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접수로, 무작위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만 구입이 가능하다. 이후 우편 메일을 통해 개별적으로 티켓 구입에 대한 안내를 하는데, 가장 비싼 티켓은 최대 990유로까지 있다.

빈 필 신년음악회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에 시작됐다. 첫 연주는 1939년 12월 31일, 클레멘스 크라우스(Clemens Krauss, 1893-1954)의 지휘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특집으로 열린 마티네 콘서트(matinee concert, 낮에 열리는 음악회)로 기록되어 있다. 크라우스는 1929년부터 1933년까지 짤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슈트라우스 정기연주를 진행했고 이후 그는 신년음악회의 시작에도 영향을 끼쳤다. 다음 해인 1940년 12월 31일에도 슈트라우스의 작품들로 짜여진 공연을 개최했고 이 공연은 바로 다음 날인 1941년 1월 1일에도 반복되어 첫 번째 빈 신년음악회로 기록되어 있다. 전쟁 중에도 크라우스의 지휘는 계속 개최되었다. 종전 선언 후 1946년과 47년에 요제프 크립스(Jesef Krips)가 잠시 맡은 뒤, 다시 크라우스가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1954년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빈 필의 악장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빌리 보스코프스키(Willi Boskovsky)가 후임이 되어 1979년 은퇴까지 역대 최다 횟수인 25회의 신년음악회를 개최했다. 이 시기에 공연 실황이 국내외로 중계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당시 빈 국립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이었던 미국 출신의 로린 마젤(Lorin Maazel)이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지휘했다. 그는 신년음악회 역사상 처음으로 오스트리아인이 아닌 지휘자로도 기억된다. 1987년부터는 20세기 최고의 명지휘자 헤르베르트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을 시작으로, 해마다 다른 지휘자를 초빙하는 제도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제도는 단원들에게는 여러 지휘자의 다양한 스타일을 접하게 해주고, 지휘자들에게는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볼 기회를 제공한다.

3만 송이의 꽃들로 장식된 무직페어라인의 황금홀 이미지출처 빈필하모닉
3만 송이의 꽃들로 장식된 무직페어라인의 황금홀 이미지출처 빈필하모닉

축제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다.

연말에 공개되는 연주곡목과 음악회가 끝난 직후 발표되는 다음 해의 지휘자는 음악회만큼이나 화제가 된다. 또 다른 중요한 신년 행사로 빈 필하모닉 무도회와 빈 국립 오페라극장 무도회가 있다. 신년음악회와 무도회에서 주축을 이루는 음악은 오스트리아 왈츠의 명가로 꼽히는 슈트라우스 가문의 음악이다. 오스트리아와 서유럽 중심의 축제인 빈 신년음악회는 점차 유럽 전역으로 그 외연을 확장했고, 아시아계 관객의 참여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6년부터 중앙그룹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체인, 메가박스의 큐레이션으로 클래식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의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의 공연과 전시를 선별해서 상영하는데, 정규 상영인 클래식 라이브와 오페라가 있다. 클래식 라이브를 통해 연주를 생중계하는데, 시차가 안 맞거나 중계 오류로 인한 사고 방지를 위해 딜레이 중계를 통해 상영하고 있다. 음악회가 끝난 3~4일 뒤에는 KBS에서 녹화중계로 방송되기도 한다.

2021년의 신년음악회는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의 지휘로 관객 없이 진행되고 90여 개국으로 중계되었다. 다만 앙코르곡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Marche De Radetzky)`은 청중의 박수와 함께 연주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를 이어가기 위해 특별한 방안을 고안한 것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콘서트가 열리는 무직페어라인 황금홀에 스피커 20대를 설치해 사전 등록한 시청자의 박수 소리를 라이브로 넣은 것이다.

빈 신년음악회는 축제를 넘어 이제는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오직 한 번 볼 수 있는 그 희소성으로 사람들은 기다림을 마다치 않는다. 감동을 주는 하나의 작품이 우리의 삶에 활력소와 영감을 주듯 가치 있는 문화콘텐츠를 나누고 소통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물론 무관중 공연이나 공연 실황이 문화예술 행사의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음악은 연주되는 악기 소리뿐만 아니라, 그날의 바람 소리와 몸짓, 웅성웅성 사람들 모이는 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같이 어디에나 존재한다. 침묵의 정적을 깨기도 하고 야외 축제의 음악일 수도, 연중행사로 가는 음악회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을 채우는 공간, 그곳에 음악이 있다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상황의 위기를 이겨내고 음악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소통하고 극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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