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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참아라’를 탄생시킨 ‘경피증’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21.04.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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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 작: ‘참아라’(1940) 베른, 베른 미술관 - 화가 폴 클레 (Paul Kle)

[엠디저널]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예술가의 한 사람인 스위스의 화가 폴 클레 (Paul Klee 1879~1940)는 독일 베른 근교 뮌헨부호제에서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회화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바이올린 솜씨는 전문가 수준이었다. 1898년 고교 졸업 후 뮌헨으로 간 그는 음악과 더불어 시, 단편소설 등을 공부하였지만, 최종적으로는 세기말의 화가인 미술아카데미의 프란츠폰 슈투크 문하에 들어가 1901년까지 사사 받으며 화가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클레는 탄압을 피해 베른으로 돌아와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정착했다. 1935년 여름 홍역을 수반한 기관지염에 걸려 폐병과 심장병의 합병증이 생겼다. 그의 병은 점막을 마르게 하여 심장까지 파고드는 희귀병인 경피증(硬皮症 scleroderma)으로 진단되었다. 경피증이란 피부가 경화(硬化)되는 만성질환으로 교원병(膠原病)의 일종이며 두 종류가 있다. 즉 그 병변이 내부 장기의 침범 없이 피부에 극한적으로 머무는 반상경피증(斑狀硬皮症)과 전신의 각 장기를 침범하는 전신성경피증(全身性硬皮症)이 있다. 후자의 겨우 처음에는 피부에 홍반(紅斑)이 생기고 부종(浮腫)이 나타났다가 곧 피부가 위축되면서 단단해지고 황색을 띠면서 하부조직과 결합하여 딱딱하게 굳어진다. 나중에는 피부에 색소가 과다하게 침착되고나 탈색되기도 하며 모세혈관이 확장되면서 피부가 위축되어 가죽같이 변해 버린다. 내장은 주로 식도, 폐, 심장, 신장 등의 장기가 침범되어 연하곤란(嚥下困難)이라 해서 음식을 삼키기가 곤란해지며, 폐에 섬유가 침착해서 호흡하기가 어려워지고, 심장이나 신장을 침범해 장애를 이루 켜 고혈압이 돼 상당한 고통을 받다가 사망하게 되는 병인데 클레는 전신성 경화증이었다. 이러한 불치의 병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제작한 마지막 5년간의 작품은 큰 변화를 보였다. 그림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제작 속도는 점점 빨라져 해마다 그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젊은 시절 건강했던 폴 클레의 초상(사진) 베른, 베른 미술관

클레는 1917년부터 한 해에 200점보다 적게 제작한 적이 없었는데, 발병하던 해에는 148점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25점을 제작하는 등 작품의 수가 뚝 떨어지다가, 1937년에는 264점, 1938년에는 489점, 1939년에는 1254점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으며 그 형태와 색도 아주 단순해지고 과격해져 그림은 그 자체에서 태어나는 듯했다. 이 당시 클레는 캔버스 위에 상형문자 같은 선들을 직접 붓으로 그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굵고 진한 색의 기호들을 통해 개인적인 메시지를 관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인상을 주는 그림들이 많다. 또 그의 작품들은 무한히 다양하고 깊이 있는 예술세계를 이루고 있는데다가 불가사의할 만큼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어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사물의 현재 상태는 단지 순간적이고 우연적인 배열에 지나지 않으며 그 근원적인 세계로 거슬러 올라가려 했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난해한 점도 다소 납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그가 발병하여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 중에 그린 작품 중에서 몇 점을 골라서 경피증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살펴보기로 한다.

클레 작: ‘참아라’의 드로잉(1940) 베른, 베른 미술관

그의 만년의 작품 ‘참아라’(1940)는 경피증이 전신 각 장기를 침범해 고통받는 자신의 얼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그의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몽테뉴의 가르침 “참아라, 고통을 느껴라 그리고 입 다물어라”를 상기하면서 이를 실천하려는 자기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병의 아픔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는 것을 입 주변에 교차되는 선들로 표현하고 있으며, 화가 자신의 슬프고도 긴장된 표정을 표현한 것으로 ‘클레의 초상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은 건강했던 자신의 얼굴을 구기고 찡그리고 압축해서 한곳에 몰아넣어 표현하였다. 그리고 화가는 말하기를 “나는 창조 한다. 울지 않기 위해서”라 하였으며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는 유사한 작품을, 즉 그로서는 보기 드물게 격한 감정을 표현한 그림들을 마치 그의 장례행렬과도 같이 많이 그려 남겼다.

몽테뉴의 가르침을 따르려 노력하면서 또 생의 비극과 대극하고도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닮고 있다. 참고삼아 화가가 건강했던 시절에 찍은 사진과 ‘참아라’의 드로잉 그림 등 셋을 대조하면 자기의 얼굴을 구기고 찡그려서 그려 넣었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되어 화가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클레 작: ‘진실한 얼굴’(1339) 베른, 베른 미술관

그의 작품 ‘진실한 얼굴’(1339)은 달빛이 없는 어두운 우주의 암흑을 뚫고 나 홀로 쪽배로 외로이 항해하는 얼굴이다. 그 눈은 마치 해골의 안와(眼窩)보다도 깊이 뚫려 있어 이는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클레의 심정을 털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번쩍 나타났다가는 멋대로 사라지는 유령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유령의 얼굴치고는 기가 약한 양질의 유령인 듯싶다. 오싹하는 음기를 몰고 오기는 하나 죽음과의 화해를 시도하려는 착한 면이 엿보인다. 이렇듯 클레의 심리표현은 언제나 복합적이다.

클레 작: ‘드라마’(1940) 베른, 베른 미술관

클레가 세상을 하직하는 해에 그린 ‘드라마’(1940)라는 작품은 그의 상용문자 활용화법으로 그 힘차고 단순함이 극에 달한 작품이다. 이 무렵에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지고 있는 때인데도 불구하고 화가의 손은 다른 화가로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단순한 형태와 깊은 심리적 의미를 과감하게 결부시킨 독자적인 분야로 이 그림은 음악 연주에 감동하며 그린 것이라 한다. 그림에는 북을 치는 고수가 손을 들고 격렬하게 북을 내려칠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극도로 상징화된 단순한 형태가 여기서는 생명의 고동 그 차체를 표현한 것 같다.

클레 작: ‘죽음과 화염(火焰)’(1940) 베른, 베른 미술관

그의 작품 ‘죽음과 화염(火焰)’(1940)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껴서인지 죽음의 얼굴을 직접 그린 상당히 심각한 의미를 내포한 그림이다. 평시 클레의 죽음에 관한 생각은 인간의 파괴가 아니라 인간 삶의 완성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그림 가운데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은 죽음의 얼굴이며 그 죽음의 얼굴 뒤 오른쪽에는 몽둥이를 든 한 사나이가 있고, 그림의 왼쪽에는 금색의 신비한 둥근 구체(球體)가 하나가 있는데 이것은 죽음의 세계인 저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몽둥이를 든 사나이는 저승사자이며 저승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저승사자가 죽음을 저승으로 안전하게 모시기 위한 길 안내를 의미하는 것이다.

죽음의 얼굴 바로 위의 세 줄기의 검은 선은 화염(불낄)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주변의 붉은 색과 죽음의 얼굴의 흰색 그리고 죽음의 얼굴을 지지하고 있는 대지의 푸른색 등의 빛깔은 불과 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것으로 죽음의 승리를 부정하는 순수한 자연의 모든 원소(元素)로의 환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화가의 죽음에 대한 자기 철학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클레 작: ‘정물’(1940) 베른, 훼릭스 클렌 소장

화가의 마지막 그림이라 하는 ‘정물’(1940)은 병이 악화되어 더 삶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화가의 마지막 유작이다. 저승의 바람에 날려 온 듯한 음침하고 불길한 정물들이다. 우측 테이블 위에는 눈이 없는 석고상이 빙그레 웃으면서 한 손을 들고 누구에겐가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그 밑에는 뼈만 남은 시체들이 뒹굴고 있다. 좌측의 붉은 테이블과 그 위의 단지들의 불길한 배색 그리고 어디에서 튀어나온 듯한 쏘시지 모양의 줄기, 정갈 같이 보이는 꽃 등은 모두 죽음을 연상케 하는 것들이다. 암흑 속에는 둥근 만월이 있고 좌측 밑에는 천사와 한 몸이 된 야곱의 모습은 죽음의 세계의 피안에 있는 영원한 세계로의 전생(轉生)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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