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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정교향곡’

  • 입력 2021.04.28 16:07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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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가 연주한 가정교향곡 앨범 커버 이미지출처 Presto Classical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가 연주한 가정교향곡 앨범 커버 이미지출처 Presto Classical

[엠디저널] 현대인들의 바쁜 일상의 결실로 풍요와 편리를 가져다주었지만 사회 구성원들 간 관심과 대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민족의 대명절이라는 이름도 이제는 결속이나 결합보다는 또다른 공휴일, 휴식의 연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는 귀성길, 다른 도시에 들러 남은 연휴를 즐기는 D턴족이나 부모님과 함께 고향 근처 여행지에서 연휴를 즐기는 J턴족이라는 새로운 용어들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각자의 개성과 가풍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명절을 준비하고 맞이할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휴일은 오히려 바쁜 시기이기도 하다. 휴일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준비한 무대에 더 많은 관객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 공연, 연주의 시간과 공간은 떨어져 있는 이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해주는 힘이 있다. 작품은 창작자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내기에 우리가 그를 감상하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고 가족 간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평범한 일상도 음악에 그려내다.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는 바그너 이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이자 독일 후기 낭만파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대작곡가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 중 ‘가정교향곡(Sinfonia Domestica, Op. 53)’은 작품의 제목 그대로 당시 작곡가 자신의 일상과 가정생활의 화목함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악보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는 슈트라우스의 글이 적혀있다. 

작품에 붙여진 이름대로 교향곡(Symphony)라고 한다면 신과 인간, 삶과 죽음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떠오르기 쉽다. 특히 베토벤, 말러의 작품들, 후기 낭만의 대표적인 두 거장 브람스와 바그너의 작품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인 주제들에 비해 일반적인 주제를 교향곡에 도입한 작곡가가 바로 슈트라우스이다.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시(symphonic poem 또는 tone poem)로도 알려진 이 곡은 전통적인 4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 형식이지만, 주제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묘사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구분 없이 한 악장처럼 연주되는 대규모 관현악곡이다. 슈트라우스의 다른 작품처럼 거대한 편성과 규모를 자랑하지만 음악에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담겨있는 것이 특징이다.

1898년 슈트라우스는 독일의 슈타츠오퍼 베를린(Staatsoper Berlin, 영. Berlin State Opera)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그의 인생에 있어 자신의 상황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사회적 지위와 자신의 이야기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가 ‘가정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때는 사실 또 다른 작품인 ‘영웅의 생애(Ein Heldenleben, Op. 40)’의 속편을 만들어 또 다른 성공 가도를 잇고자 했다. 1898년에 완성된 ‘영웅의 생애’는 50분에 걸친 대곡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철저하게 구축하고자 하였던 슈트라우스의 의욕이 강하게 담긴 자전적 성격을 띠는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스스로를 영웅시했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

슈트라우스의 아내 파울리네와 그의 아들 프란츠 이미지출처 Richardstrauss
슈트라우스의 아내 파울리네와 그의 아들 프란츠 이미지출처 Richardstrauss

일상 속 가족의 다양한 목소리, 다채로운 악기의 선율

‘가정교향곡’은 1903년 그 해의 마지막 날 베를린의 샬로텐부르크에서 완성되었다. 작품의 악기 편성은 피콜로, 3대의 플룻, 2대의 오보에, 오보에 다모레, 잉글리시 호른, 4대의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4대의 바순, 콘트라바순, 4대의 색소폰, 8대의 호른, 4대의 트럼펫, 3대의 트럼본, 튜바와 타악기(팀파니, 베이스드럼, 트라이앵글, 심벌, 글로켄슈필), 2대의 하프와 현악기로, 대규모 관현악 편성이다. 바흐 이후 관현악 작품에 많이 사용되지 않았던 오보에 다모레(Oboe d'amore)라는 악기가 애처로운 음색으로 어린 아들 프란츠를 묘사한 점이 신선하다. 이 악기는 바로크 시대 악기로 오보에보다 더 부드러운 음색을 가지고 있다.

곡이 완성된 이듬해인 1904년 미국 투어에서 슈트라우스가 직접 지휘자로서 뉴욕 카네기 홀에서 초연을 선보였다.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뉴욕의 워너메이커 백화점에서 두 번의 연주를 더 선보였는데, 이 연주를 위해 백화점 1층 전체는 대편성의 오케스트라가 자리했고 6천 명이 넘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곡의 비엔나 초연은 1904년 겨울,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슈트라우스는 철학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일도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가정교향곡’에 그려지듯 부부 생활, 가족 간의 대립, 어린 아들의 목욕 시간과 같은 일상적인 가족의 이야기로 그려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악장에서는 세 가지 주제가 연주된다. 40분의 러닝타임 중 5분 정도로 짧지만, 도입부인 이 악장에서는 한 가정의 남편과 그의 아내, 아들을 상징하는 테마가 소개된다. 남편의 주제는 첼로의 저음으로 시작해 오보에가 바로 이어받아 바이올린 주도의 현악이 펼쳐지고, 다소 변덕스러운 연주가 이어진다. 두 번째 테마인, 아내의 주제로 넘어오며 안정감을 되찾고 생기있고 장엄한 주제로 이어지면서, 잔잔한 아이의 테마로 도입부가 마무리된다. 이처럼 아버지, 어머니, 아이를 나타내는 3개의 주제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가족 간의 사랑과 다툼 그리고 화해를 그려냈다.

2악장은 스케르초(Scherzo)로 오보에 다모레, 오보에, 클라리넷, 플루트가 투명하고 순진하게 아이들의 놀이와 즐거움을 장난스럽게 표현하며 현악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다양한 악기의 음색으로 선율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세 식구의 일상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듯하다. 활기찬 대화, 조용한 자장가 이후 아들이 잠이 들면, 7시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글로켄슈필로 정확히 일곱 번의 종소리를 친다. 

3악장 아다지오는 여유로운 테마 선율로 다채로운 밤을 그려낸다. 저녁 7시 이후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의 시간으로 부부 둘만의 시간을 묘사한다. 이후 또다시 일곱 번의 종소리로 아침을 알린다.

4악장 피날레에서는 아침이 되어 부부의 소소한 다툼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마치 하루가 지나고 일상 속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각 악장의 테마가 보여주듯 가정의 일상과 그 중요성을 작품 주제로 다룬 작곡가는 흔치 않다. 신선한 악기 편성도 있지만 극적이거나 철학적인 주제가 아닌 이러한 일상의 주제를 음악으로 담아냈기에 관객들은 이 작품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곡은 ‘돈 후안(Don Juan)’, ‘돈키호테(Don Quixote)’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과 함께 슈트라우스의 주요 레퍼토리로 다루어진다. 

악기의 선율로 표현되는 계속되는 음의 높낮이처럼 평온할 것만 같지만 때로는 시끄럽고, 사랑만 가득할 것 같지만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만 하는 이러한 모습은 전 세계 어느 가정의 모습과 같을 것이다. 

다가오는 설 명절, 소소한 일상과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슈트라우스의 ‘가정교향곡’을 감상하며 곁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는 것도 새로운 명절의 풍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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