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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된 경찰관

  • 입력 2021.05.04 16:52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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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임상 조교수로 USC 의대에 출강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알게 됐다. 내가 수련의 과정을 할 당시에는 정신과 수련 과정이 3년이었는데 이제는 4년이 됐다. 1년이 더 늘었다. 1년은 젊은이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기간이 아닐 수 없다.

4년 차 전공의들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것이 소아정신과 실습이다. 그 실습 동안에 나는 이들을 도와준다. 이들은 어린아이들의 육체적, 사회적, 심리적인 성장 과정과 이에 따르는 문제 행동들을 이해하고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소아정신과 의사에게 특별히 의뢰할 때까지는...

그런데 이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어떤 의사는 아이를 대하는 것을 꺼린다. 간혹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아마 자신들의 어린 시절과 관계가 있으리라. 그런데 오늘 만난 닥터 T는 영 딴판이다. 우선 그의 외모부터 대부분의 다른 의사들과 달랐다. 씨름선수같이 떡 벌어진 어깨며,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말썽꾸러기 꼬마들에게는 겁을 주기 십상이다. 마약을 하거나 집에서 도망쳤던 청소년 아이들이 붙잡혀 오는 곳이 시립병원 응급실이다. 닥터 T는 이들에게 자신이 과거에 경찰관이나 감옥의 간수로 일했던 경험담을 얘기한단다.

요즘도 그는 주말 경찰관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을 한다. 우선 월급이 훨씬 높기 때문에 생활이 수월하다고 한다. 수련의사의 월급보다 경제적으로는 높은 수익을 얻는 것 이외에도 그는 경찰관으로 일하는 데에 만족감이 크다고 했다. 법에 따라서 결정을 하는 것은 아마 흑과 백이 분명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늘 ‘회색지대’를 분석해야 하는 정신과 의사의 일과는 다르리라.

나는 그가 왜 경찰관 일을 하다가 의사가 되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직업을 무척이나 즐긴다. 예를 들어 병원 응급실에서 밤을 새운 다음 날, 그는 패서디나의 ‘로즈 페레이드’에 순찰 경관으로 일한다고 한다. 남들은 일부러 새벽부터 길가에 나와 기다려야 하는 행진 구경을 자신은 돈을 받으면서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느냐고 하면서 기뻐한다.

감옥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의사

그는 수련의 그룹 중에서 반장격인 ‘치프 레지던트(Chief Resident)’다. 다른 수십 명의 수련 의사들이 투표로 뽑았다. 그는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아이 환자들을 대할 때에는 아주 자상하고 친절하다.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거나 숙제를 안 해 성적이 떨어지면 일일이 개인의 시간표를 따로 짜준다. 그리고 자신의 컴퓨터로 예쁘게 만든 시간표를 아이들의 책상머리에 붙여 놓게 한다. 예를 들어 주의력이 가장 왕성한 시간에는 어떤 과목을 하고, 해이해지는 오후에는 공놀이하는 것으로 말이다. 아이들이 성적이 향상되고 행동에 좋은 변화가 오면 반드시 칭찬해준다. 그래서 아이들은 닥터 T의 말을 잘 듣는다.

그러나 그는 2년을 더 소아정신과 의사의 전문 훈련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어서 사회에 나가 날개를 펴고 싶단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에는 고작 칠천 명의 소아정신과 의사가 존재할 뿐이다. 너무나 긴 수련 기간 때문이다.

그는 감옥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고 싶단다. 아마 간수라는 본래의 직업과 의사라는 새 직업이 가장 잘 조화된 상태이리라. 이곳이야말로 인생의 마지막 낭떠러지에 와 있는 ‘위기’의 존재들이 있는 곳이다. 그는 든든한 배짱과 호탕한 성격, 잘 수련된 인술이 저들을 도와주리라. 나는 믿기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젊은 수련의들이 기다리는 대학병원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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