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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후안 데 레하’를 탄생시킨 ‘심근경색증’

- 화가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

  • 입력 2021.05.07 15:33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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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 작: ‘후안 데 파레하’ (1649-50)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벨라스케스 작: ‘후안 데 파레하’ (1649-50)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엠디저널]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 1599∼1660)는 스페인 역사상 가장 성공한 궁정화가로 기록되고 있다. 순탄한 인생, 성실한 성품을 지녔던 그는 맡은 일에 대하여 철저했고, 또 화가로서의 기법이 독특하여 그림의 주제에 구애되지 않는 조형성 탐구라는 근대성을 지녔으며 색채에 있어서 비속화나 이상화에 치우치지 않는 독자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화단에서는 개성이 출중한 화가로서 시대를 크게 앞질러 인상파의 출현을 예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놀라운 재능으로 인해 귀족과 왕족의 초상작업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데는 그리 오랜 시일을 쓰지 않았다. 더욱이 그의 평생 후원자였던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와의 만남은 그가 궁정화가뿐 아니라 건축의 실내 디자인과 왕족들을 위한 궁정 내 행사인 축제를 기획하고 관장하는 등 그의 다방면에 걸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평생 보장받은 것이다.

그는 주로 왕가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한편 궁정에 왕족이나 귀족의 웃음거리와 노리개로 있던 난쟁이와 어릿광대도 화폭에 담았다는 것은 삶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구성과 기법을 실험하는 한편 그들을 가엾이 여기고 그들을 돌보는 의미였다.

특히 그가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의 작품 ‘후안 데 레하’(1649-50)의 모델은 그의 아틀리에의 조수로 무어인의 피가 섞인 44살의 세비야 사람이었다. 여기서 주인공은 마치 오셀로 같은 눈매로 우아하게 캔버스 밖을 응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로마의 판테온에서 잠시 전시되어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비평가가 전시회에 출품된 다른 작품들은 ‘단순한 예술’이라고 평하는 반면 벨라스케스의 작품은 ‘예술적 진실’이라 평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로마 최고의 권력자인 교황이 스페인에서 온 거장 벨라스케스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하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그림의 모델인 후안 데 파래도 화가이었으며 벨라스케스의 노예였다. 노예의 신분으로는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이 작품이 끝난 얼마 후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이러한 그의 결정은 자유로움을 갈구하는 그의 일상생활로부터 얻어진 사고와 자기 존재의 확인을 통한 자신감 등이 그의 행동에 깊게 관여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해서 벨라스케스는 당시 로마 교황이었던 인노켄티우스 10세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장기 체류와 긴 여행을 불편함 없이할 수 있었으며 정치적으로도 성숙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긴 이탈리아 체류 중 자유로운 생활도 할 수 있었으며 이탈리아 화가들로부터도 인정받고 존경받는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기간 중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 상류사회에 속한 어떤 여인과 깊은 내연의 관계를 유지했는데, 1851년 그 여인으로부터 사내아이를 얻게 된다. 벨라스케스는 아이의 양육비를 로마 주재 나폴리 왕국의 관리를 통해 지급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빛의 음영을 이용한 인간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초상화, 웅장한 스케일과 구도 감각이 돋보이는 전쟁 기록화, 궁정 장식화를 주로 그렸다.

벨라스케스 작: ‘거울을 보는 비너스(일명 로크비 비너스)’ (1644-48추정) 런던, 내셔날 갤러리
벨라스케스 작: ‘거울을 보는 비너스(일명 로크비 비너스)’ (1644-48추정) 런던, 내셔날 갤러리

그런데 정확한 제작 시기를 모르는 ‘거울을 보는 비너스’(1644-48추정)처럼 예외적인 그림이 이 시기에 그려졌던 것이다. 매혹적인 여성이 느긋하게 거울을 보며 길게 몸을 뻗는다.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여성의 뒤에서 우리는 그녀의 풍만한 몸으로부터 환영과 같은 거울 속의 얼굴이 누구인가를 알아보려고 말려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

이 그림의 여주인공은 눈보다 희고 대리석보다 매끄러운 피부와 탄력 있는 근육으로 군살 없이 다듬어진 몸매를 보여주면서 자신은 심연의 자아 세계로 조용히 들어가고 있다. 어깨에 작은 날개를 달고 있어 그가 큐피드임을 알 수 있는 어린 소년은 이 주인공의 충실한 몸종처럼 거울을 받쳐주고 미소 지으며 그녀를 바라본다.

화가는 이 두 사람을 붉은 천과 푸른 천으로 치장한 실내에 놓아둠으로써 그들이 고귀한 신분임을 암시하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 한 장의 누드화는 벨라스케스의 대표적인 그림들과 달리 잔잔한 성적 흥분을 바탕에 깔고 있다. 또한 관능적인 분위기가 화면 가득 담겨 보는 이로 하여금 어쩔 줄 모르는 사랑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한다.

따라서 미술평론가들은 이 그림의 여주인공을 그의 정부, 곧 이탈리아 여인으로 간주하기도 하는 것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 추리는 이 그림에서 관능적인 여성을 정면으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화가와 모델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애틋하며, 어렴풋한 여성의 얼굴 표현으로 그녀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큐피드를 배치하여 사랑의 감정을 깊이 드러낸다는 점 등을 들어 추측을 자아내게 한다. 이 그림에서 여성의 신체 표현은 정확한 모델링을 통해 얻어지는 사생 적 묘사가 돋보이는데, 이런 포즈를 제공한 그녀는 보통 사이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벨라스케스의 정부임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는 궁정화가로서뿐 아니라 건축의 실내 디자인과 왕족들을 위한 궁정 내 행사인 축제를 기획하고 관장하는 등 그의 다방면에 걸친 예술적인 활동을 하여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 피곤한 몸이면서도 여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벨라스케스 작: ‘자화상’ (1643) 플로렌스, 우피치 미술관
벨라스케스 작: ‘자화상’ (1643) 플로렌스, 우피치 미술관

이러한 그림을 통한 사실과 벨라스케스의 전기를 살펴보면 그의 성격은 프리드만(Fridman, A)과 로젠맨(Rosenman, R. H)이 사람들의 성격을 분류한 소위 A형(Type Aggressive)에 속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의 A형이란 혈액형 A형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성격과 행동의 양상을 토대로 한 분류이며 A형 성격인 사람은 짧은 시간에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하려는, 즉 경쟁심이 강하고 노여운 감정을 갖기 쉬우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주변 사정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무시한 채 항상 서두르며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다. 특히 새로운 일이 닥치거나 다른 사람과 대항하게 되었을 때 경쟁심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런 것으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일에 열중하는 탓에 언제나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식사를 하면서 신문을 보거나, 담배를 피워 물면서 운전을 하는 등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곤 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의 느린 행동에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으며, 또 A형 사람은 자기 몸에 어떤 증상이나 피로감을 느껴도 일의 수행을 위해선 하는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해 버려 결과적으로 몸에 무리를 가져오기 쉽다.

이러한 사람들은 모름지기 혈액 중에 카테코라민이라는 혈압을 상승시키는 호르몬의 분비가 많고, 콜레스테롤이라는 동맥경화를 진행시키는 지방이 많이 고이게 되고, 요산(尿酸, 痛風을 일으키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관상동맥경화증(冠狀動脈硬化症) 또는 고혈압에 걸리기 쉽다.

결국 벨라스케스는 심근경색증(心筋梗塞症)으로 61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이다. 그는 생전에 다른 화가들과 같이 결핵이나 매독과 같은 만성질환에 이완된 사실이 없는 건강한 신체를 지니고 있었다.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만일에 이런 A형 성격의 소유자라면 창작활동에 열중하다가 결국은 과로로 사망하게 될 위험이 높다. 벨라스케스를 A형 성격의 소유자로 판단하는 것은 그의 병적 추구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정황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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