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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깨우는 로베르트 슈만의 선율 교향곡 1번 ‘봄’

The Spring Symphony

  • 입력 2021.05.12 11:36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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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의 첫 교향곡이 초연된 도시인 라이프치히의 봄
슈만의 첫 교향곡이 초연된 도시인 라이프치히의 봄

[엠디저널] 얼어붙은 대지 위에 봄의 전령처럼 피어나는 꽃들 그리고 처마끝에서 떨어지는 고드름의 물방울 소리는 마치 봄을 깨우는 노크처럼 다가온다. 햇살이 숲을 밝히듯 봄을 부르는 소리는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사이 우리 주변을 공명한다.

추운 계절을 견디고 동면에 빠진 생명을 깨우는 슈만의 열정을 교향곡 ‘봄’을 통해 느껴보자.

독일 낭만음악의 선구자, 로베르트 슈만의 첫 교향곡 ‘봄’

클라라 슈만과 결혼한 지 1년이 되던 1841년에 작곡된 교향곡 ‘봄’(Symphony No.1 in B flat Major, op.38 ‘Spring’)은 슈만의 첫 번째 교향곡이다. 이전까지 슈만은 피아노와 성악곡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음악가로서 슈만의 첫 시작은 피아니스트였다. 과도한 피아노 연습으로 인한 손가락 부상 후 그는 본격적으로 작곡에 전념하게 되었다. 손가락 부상으로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을 위기에 처했지만 그에게 작곡가의 길은 필연적인 운명의 길이지 않았을까.

그의 초기 작품인 1832년부터 1839년까지의 작품은 대부분이 피아노곡이었다. 조금 더 익숙한 영역에서 새로운 시작의 발판을 찾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1840년부터 그는 다른 영역으로도 작업 반경을 넓혀갔다. 1840년에는 적어도 138곡의 가곡을 작곡하여 가곡의 해(Liederjahr)라고 불릴정도로 슈만의 음악적 유산에 정점을 찍은 해였다. 가곡(Lied, 리트)은 시에 곡을 붙인 성악곡으로, 보통 한명의 성악가와 피아노를 위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시와 음악이 결합된 형식의 가곡은 가사 없이 악기로만 연주하는 기악곡과는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기악곡으로는 어떠한 분위기나 느낌을 표현할 수 있지만, 가사가 있는 가곡의 경우 언어를 통하여 특정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슈만이 피아노 외의 다른 작품에 도전한 첫 시도였던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피아노와 성악을 위한 작품, 즉 가곡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초연될 당시의 게반트하우스 홀 내부
초연될 당시의 게반트하우스 홀 내부

끊임없는 격려로 새로운 시작을 열어주다

1840년은 슈만에게 또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Friedrich Wieck, 1785-1873) 교수의 딸 클라라를 오랜 기간 연모했는데 드디어 사랑의 결실을 맺은 해이기 때문이다. 가곡 작품에 있어 다작을 한 해의 마지막 작품은 클라라와의 협업으로 만든 가곡 모음집이었다. 슈만은 1840년과 1841년에 걸쳐 19세기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Friedrich Ruckert, 1819-1896)의 시모음집 ‘Liebesfrühling(사랑의 봄)’에서 발췌한 시 12편에 곡을 붙여 클라라와 공동으로 가곡 모음집을 출판했다. 뤼케르트는 오늘날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만 생전에는 독일 지식인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성과 비극성, 힘을 동시에 갖춘 그의 시에 슈베르트, 브람스, 레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르토크, 볼프 같은 작곡가들이 곡을 입히기도 했다.

뤼케르트의 ‘사랑의 봄’에 의한 클라라 슈만의 가곡 Op.12은 슈만이 9곡을 클라라 슈만이 4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Die gute Nacht’는 제외되고, 3곡만 선택되어 발표되었다. 가곡집 완성 이후 슈만이 바로 시작한 작품이 바로 ‘봄’이라는 제목이 붙은 교향곡 1번인 점을 보면 이 가곡집의 제목이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슈만이 그의 작업 반경을 교향곡으로까지 넓힐 수 있었던 것은 클라라의 응원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클라라의 일기에서 그점을 추측할 수 있는데 발췌문은 다음과 같다. ‘그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쓴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 그의 상상력을 피아노로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 그의 작곡은 감정적인 면에서 오케스트라로 표현하기 좋다. [...] 나의 가장 큰 바람은 그가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작곡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분야이다.’ 이처럼 시기적으로도 슈만의 교향곡 1번 ‘봄'은 클라라와 화사한 신혼 시기에 작곡된 만큼 클라라에 대한 오랜 연모 끝에 사랑을 차지하게된 슈만의 가슴부푼 기대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영화감독 피터 샤모니(P. Schamoni)는 1983년 ‘Spring Symphony’(한국에서는 애수의 트로이메라이로 알려져 있다)라는 이름으로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는데 교향곡의 원제와 이름이 같다.

현재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외관
현재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외관

1841년에 완성된 이 곡은 슈만 자신이 ‘봄의 교향곡(Frühlingssinfonie)’이라 이름 붙인만큼 전 곡에 걸쳐 그의 행복감과 생애의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41년 3월 31일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작곡가이자 지휘자이기도 했던 멘델스존의 지휘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ra)에 의해 초연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교향곡임에도 불구하고 초연 당시 청중들의 호평을 받아 새로운 음악세계를 성공적으로 열어주었다.

클라라의 일기 기록에 따르면 슈만의 교향곡 1번은 슈만이 시인 아돌프 뵈트거(Adolf Böttger) 시의 한 구절인 “바꾸어라, 당신의 모든 것을. 봄이 가까이 왔다(O wende, wende deinen Lauf/Im Thale blüht der Frühling auf!-영. O, turn, O turn and change your course/In the valley, Spring blooms forth!)”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으로 알려졌다. 슈만은 교향곡 1번 작곡 당시 각 악장에 1악장 ‘봄의 시작’, 2악장 ‘저녁’, 3악장 ‘즐거운 놀이’, 4악장 ‘만개’와 같이 소제목을 붙이려고 했지만 작품의 초연 전에 부제들을 악보에서 삭제하기로 마음을 바꾸어 출판된 악보에는 포함되어있지 않다. 슈만은 이 곡이 표제음악으로 보여지길 원하지 않았음을, 즉 청중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어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향곡을 듣는 사람들에게 악장의 부제는 길잡이정도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성품은 낭만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슈만은 시에서 받은 감동과 그의 내면에서부터 싹트는 새로운 봄에 대한 느낌을 이 작품에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슈만은 1842년 11월 23일, 당시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루이 스포어(Louise Spohr)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모든 사람 에게 해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봄에 대한 기대와 열정 속에서 이 교향곡을 1841년 11월 말에 작곡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봄을 묘사하거나 그리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작곡가의 주장대로 이 곡은 자연을 묘사하는 표제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곡의 창작과정에서 영감을 준 봄에 대한 슈만의 내적 열정과 표현은 작품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교향곡 1번 ‘봄’의 오케스트라 구성은 플룻,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프럼펫, 트럼본, 팀파니, 트라이앵글과 현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슈만은 이 교향곡에서 팀파니의 사용을 확장시켰다. 이 곡은 오케스트라를 메인 곡 중 처음으로 3대의 팀파니를 요구하는 곡이었다. 연주시간은 해석에 따라 29분에서 31분정도이다.

길고 긴 겨울이 끝나가는 계절의 변환기, 자연이 주는 감동과 더불어 우리 마음 속 싹터 오르는 새로운 봄의 기운을 이 작품과 함께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봄소식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겨울의 권태를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음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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