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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씬해지길 강요하지 말자

본인이 조절하도록 격려해야, 비만과 거식증의 예방책 될 수 있어

  • 입력 2021.06.01 13:48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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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도진순 교수의 주해가 달린 백범 김구선생님의 자서전 ‘백범일기’에 재미있는 사건이 쓰여있다. 그가 21세 되던 해(1896년) 치하포에서의 일이다.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하며 정탐을 하는 일본인 ‘스치다’를 주막에서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쾌남아답게 왜인을 죽인 후 백범이 7인분의 식사를 먹어 치우는 이야기이다. 물론 국모를 죽인 왜인들에 대한 복수를 이 일본 육군 중위에게 한 것인데, 백범이 떠난 뒤에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 소년 장사는 밥 일곱 그릇을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더라는 걸!” 어느 인간의 담대함이 식성의 크기와도 비례되었던 때의 얘기이다. 어디 밥그릇 숫자만이랴. 우리 조상들이나 중국인들은 남자다움(?)의 잣대를 들이키는 술의 양에도 많이 비교한 듯하다. 방랑시인 김삿갓이나 유명한 한량들의 얘기에는 그래서 끝없는 ‘술 마시는 호걸담’이 겹친다. 

구강기, 세상에 대한 신뢰감 갖는 시기

먹고 마시는 행위는 모두 입을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바로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젖을 빨거나 우유를 마시며 배운다. 그래서 프로이드는 이 성장기를 ‘구강기(Oral Stag)’라 불렀다. 태어나서부터 한 살이 되는 기간은 인간의 뇌 조직이 가장 많이 발전되는 성숙의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 아기는 엄마를 알아보고 사랑을 나누고 외부인을 살펴서 가려내 미소를 배운다. 손을 뻗어 엄마의 얼굴을 만져보고 혀를 굴리며 말을 따라하려 애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간에 아기는 “세상을 참 살만한 곳이구나”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사회적 성장 학자들이 말하는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 시기이다. 그래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은 어른이 된 후에도 단순히 영양 섭취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먹고 사랑에 굶주려도 먹는다. 화가 나도 마시고 사랑을 나눌 때도 마신다. 사회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이런 것에도 변화가 왔다. 음식이 부족하던 시대에는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능력이었다. 그래야 기근이 들거나 전쟁에도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요즘처럼 음식이 범람하고 더욱이 물질문명이 발달 된 세상에서는 안 먹는 사람일수록 절제가 있고 의지력이 있는 인격체가 되었다. 심장병이나 당뇨를 방지하기 위해, 이제 절식은 생명을 지키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마음 편하게 자란 청소년, 식욕조절 쉬워

그런데 모든 것에는 항상 극단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 부자 나라 미국의 제일가는 보건문제는 비만이다. 재미있게도 이 나라는 가난한 사람 중에 비만이 많다. 사회계급과 몸무게는 반비례한다는 통계이다. 부자들은 음식 이외에도 각종 취미생활과 그룹 활동 등을 통해 인생의 살맛을 찾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른 몸매’는 사회 계층은 물론 인격체를 가늠하는 외부조건으로까지 발전되었다. 특히 꽃처럼 피어나는 청소년들에게 그렇다. 그래서 지금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병이 생겨났다. 죽음으로까지 이끌어 가는 이 병은 사회관과 가치의 변화 때문에 온몸과 마음의 병이다. 

아기들은 먹고 싶을 때 먹고, 배부르면 수저를 놓는다. 마음 편하게 자란 청소년들 그리고 극심한 자기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은 청소년들은 자신의 식욕조절을 배운다. 이들에게 심하게 날씬해질 것을 강요하지 말자. 먹고 마시는 것은 본인들이 조절하도록 격려해 주자. 이것이 죽음에 이르는 비만이나 거식증으로부터의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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