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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정신치료의 첫째 원리: 몸과 마음의 속성

  • 입력 2021.07.01 17:31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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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관찰을 통해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안다

괴로움은 몸과 마음에서 오는 겁니다. 괴로움을 없애는 것도 몸과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괴로움은 본질상 몸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괴로움은 마음을 통해서 옵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잘 알려면 자세히 관찰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생각으로, 들은 대로, 교육 받은 대로 ‘몸은 이런 것이고 마음은 이런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판단은 몸과 마음의 본 모습과는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우리는 안보거나 못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관찰하기만 한다면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알고 본다고 했습니다. 실게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입니다. 우리는 실제를 안 보고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를 보면 우리 생각과 실제가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거시적인 관찰과 미시적인 관찰입니다. 거시적인 관찰이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덩어리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컵을 들 때 컵을 드는 것을 관찰하거나, 천천히 걸으면서 걷는 과정 하나하나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덩어리로 관찰하는 것은 굉장히 유용합니다.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거시적으로 덩어리로서의 몸과 마음의 속성밖에 알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미시적인 관찰이란, 선정에 들어 관찰하는 것입니다.≪상윳따 니까야≫를 보면 부처님은 ‘삼매를 닦으면 법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합니다. 삼매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순간삼매가 있고 근접삼매가 있고 본삼매가 있는데, 선정은 본삼매입니다. 그래서 삼매를 닦으면 지혜의 눈이 열려서 궁극적 실재인 정신과 물질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두 가지 관찰, 즉 거시적 관찰과 미시적 관찰을 다 하면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떤 속성을 가졌는지를 한계가 없이 정확하게 모두 알 수 있습니다.

관찰을 할 때 중요한 건, 관찰을 잘할 수 있는 상태에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번뇌 속에서 관찰하는 것은 조금 곤란합니다. 그건 때가 잔뜩 낀 안경을 쓰고 무언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안경을 깨끗이 닦고 봐야 합니다. 불교에서 명상 수련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명상을 하면, 비록 선정에까지는 들지 못하더라도, 관찰을 잘할 수 있는 상태에는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몸의 속성

눈에 보이는 몸은 그나마 관찰이 용이합니다. 그래서 몸에서 일어나는 인과의 법칙은 다들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근육을 늘리고 싶으면 운동을 하고 잘 먹으면 된다는 정도는 누구나 압니다. 반면 마음은 잘 보지 못합니다. 마음에서도 인과의 법칙이 작동해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면 그것의 결과가 남는데, 그건 눈에 안 보이니까 알기 어렵습니다.

몸과 마음의 속성을 아라보기 전에 중요한 것 하나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우리에게 몸이라는 토대 위에 마음이 있고 마음은 대상을 향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대상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몸 – 마음 – 대상을 늘 기억하셔야 합니다. 초기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우선 몸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활동입니다. 맨눈에는 안 보이지만 우리 몸에서는 활발한 생명활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명활동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순간순간 일으키는 것은 아니고 일어날 조건이 되면 일어납니다. 의대를 다닐 때 생리학 강의를 듣고 세포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는 놀란 적이 있습니다. 세포에는 우리 몸에 필요한 전해질을 운반하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트륨 채널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 나트륨이 운반됩니다. 그 밖에도 칼륨이나 칼슘 등을 운반하는 여러 채널들이 있는데 굉장히 정교하게 작동합니다. 그것을 보고 우리 몸만큼 정교하고 활발히 가동되는 공장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명활동은 중립적인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일 뿐이에요. 미세한 부분에서는 활발히 움직이고 있지만, 어찌보면 자루처럼 가만히 있습니다. 자루는 그냥 옆으로 가지 않습니다. 누가 자루를 들어서 옮겨야 옆으로 갑니다. 몸은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몸의 둘째 속성입니다.

몸의 이 두 가지 속성 가운데 ‘생명활동’에 대해서는 마음이 반응을 합니다. 그리고 자루처럼 있는 몸에 대해서는 마음이 작용을 합니다.

먼저 생명활동에 대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겠습니다. 생명활동에 대한 마음의 반응에 따라 우리에게 영향이 옵니다. 몸이 마음의 반응을 거치지 않고 우리에게 그대로 영향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심장이 쿵쾅쿵쾅 뜁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내 심장이 아주 튼튼하게 잘 뛰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이상하다.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거 아냐? 이러다 죽는 거 아냐?’라고 반응할지도 모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면 될 거야.’라고 반응할 수도 있겠지요. 중립적인 생명활동에 대해서 이렇게 긍정적, 부정적, 중립적인 반응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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