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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관(牧民官)의 나무, 팥배나무
  •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 승인 2021.07.0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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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벌, 나비들이 무더기무더기 핀 흰 꽃다발로 모여들고 있다. 굴삭기에 잘려나간 언덕을 온몸으로 지키는 팥배나무가 잔치를 벌이는 중이다. 무척 향기롭다. 그 아래 마치 삽목(揷木) 모종 밭처럼 조롱조롱 자라는 어린 팥배나무들이 무척 사랑스럽다. 몇 년 전에 아파트를 지으며 굴삭기로 도랑을 팔 때 팥배나무 큰 가지를 부러뜨렸다. 고꾸라진 큰 가지가 어렵게 꽃을 피우는 동안, 땅에 꽂힌 잔가지들은 뿌리를 내렸던 모양이다. 올해는 꽃 대신에 잔가지들이 진한 초록 새잎들을 내고 있다. 한참 동안 어린나무들 곁에 서성이며 생각에 잠긴다.

키도 크고 잎도 무성한데다 꽃까지 향기로운 이 나무를, 꽃은 배나무 같고 열매는 팥알 같다하여 팥배나무라 부른다. 전국 어딜 가나 만날 수 있지만,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가을이 깊어져 낙엽들이 다 떨어질 때면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낸다. 청청하게 푸른 가을 하늘에 팥만 한 붉은 열매들이 풍성하게 달려있는 모습이다. 어치, 산비둘기 같은 덩치 큰 새들은 물론 곤줄박이, 박새, 딱새 같은 작은 새들도 먹을 수 있게 팥알만 열매가 풍성하다. 물론 사람도 이 열매를 먹을 수 있다.

동북아에 널리 분포하는 팥배나무가, 선정(善政)을 베푸는 목민관(牧民官)의 나무로 불리는 데는 이런 고사 때문이다. 상(商)나라를 정복한 주(周)나라는 봉건제(封建制)로 넓은 영토를 다스렸다. 상을 멸망시킨 주의 무왕(武王)이 갑자기 서거(逝去)하자, 아들 성왕(成王)이 어린 나이에 등극하였다. 무왕의 충성스런 동생들인 주공(周公) 단(旦)과 소공(召公) 석(奭)이 어린 조카를 보필하러 나섰다. 주공은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攝政)을 폈으나 겸손하였고, 소공은 선정을 베풀어 나라를 안정시켰다. 사마천의 『사기』,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소공이 산시(陜西) 지방 향촌과 고을을 순시할 때, 팥배나무 아래서 송사를 판결하고 정사를 살폈다. 후(侯)와 백(伯)에서부터 모든 백성에 이르기까지 적재적소에 일을 맡겨서 실직자가 없었다. 소공이 세상을 떠나자 지역 백성들이 팥배나무를 아껴, 더 많이 심고 가꾸며 팥배나무를 노래하는 시를 지어 소공의 선정을 기렸다. 이때 생겨난 ‘감당지애(甘棠之愛)’ 라는 말은 훌륭한 목민관을 그리워하는 백성들이, 목민관에게 사랑의 뜻을 전한다는 말이다. 관련된 노래가 시경(詩經) 소남(召南)편의 〈감당(甘棠)〉이다.

폐불감당蔽芾甘棠, 물전물벌勿翦勿伐, 소백소발召伯所茇. 

무성한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마소! 

소백님 머무시던 곳.

폐불감당蔽芾甘棠, 물전물패勿翦勿敗, 소백소게召伯所憩. 

우거진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꺾지도 마소! 

소백님 쉬시던 곳.

페불감당蔽芾甘棠, 물전물배勿翦勿拜, 소백소세召伯所說. 

무성한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휘지도 마소! 

소백님 계시던 곳이 라네!

십여 년인 2008년, 300년 가까이 꿋꿋하게 자라던 팥배나무가 생애를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무척 안타까웠다. 선현(先賢)들이 ‘감당지애(甘棠之愛)’란 말을 들을 수 있는 목민관들을 기다리며, 명륜동 성균관 관내에 팥배나무를 심어놓으셨다. 은행나무 앞에 자리했던 이 나무가 갑자기 말라죽은 이유는, 대성전 내에 방범 장치 및 소화 장치 등을 설치하면서, 나무 밑을 무분별하게 파헤쳤기 때문이라 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

서성이던 발걸음을 옮겨 대모산 정상으로 향했다. 돌 축대와 주춧돌만 남은 절터에 닿았다. 절터 안내판에는 왕실에 기와를 공급하던 기와가마가 있던 곳이며, 어느 왕비가 시주하여 절을 크게 중창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복원하며 세워놓은 건물 기둥 모형들과 나무로 뼈대만 지어놓은 절집이 어색해 보였다. 가마굴을 복원해놓은 기념관 안에선 흰 한복을 입은 인형 목부(木夫)가 불을 지피느라 장작을 들고 늘 허리를 구부린 채로 서 있었다. 큰 기와가마터 3개를 큰 유리 건물로 덮어 놓았다. 자연 친화적인 복원이 아니라 이 또한 어색해 보였다. 그러나 절터 가에 자란 커다란 팥배나무 한 그루가 이런 모든 허물을 다 덮어버렸다.

울창한 상수리나무들이 지붕처럼 덮은 숲길로 향했다. 전에는 오솔길이 길이었으나 아파트가 들어선 후 사람들의 발길이 잦자, 반질반질한 진흙 포장길처럼 되었고 폭도 넓어졌다. 장마 때 파여 나간 산자 자락으로 드러난 흙들이, 찰진 붉은 점토였다. 흙을 보니 이곳이 왜 가마터인지를 알겠다. 상수리나무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마치 흙길을 보호하려는 듯이 실타래 같은 무수한 수꽃들을 수북이 떨어뜨려 흙길을 덮었다. 구청에서 이 길에도 나무 계단을 설치하여 사람들이 직접 흙을 밟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 이대로 두다간 장마 때 넓어진 흙길이 도랑이 될 터이고, 그러면 상수리나무들도 뿌리가 노출되어 무사하지 못할 성싶었다.

숨 가쁘게 언덕을 올라 전망 좋은 곳에 벤치들이 놓여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사람이 산에 올라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멀리 롯데타워가 은빛으로 빛났고, 불어오는 바람에 키 큰 나뭇가지들이 물결쳤다. 소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은사시나무, 물박달나무 등이 어우러져 춤추는 숲의 군무(群舞)에, 내 어깨도 절로 들썩거렸다. 숲 군데군데에 함박눈이 온 것처럼 흰 꽃들이 만개한 키 큰 팥배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깊은 숲속으로 하늘을 반쯤 덮은 팥배나무 한 그루에게 찾아가보았다.

꼭 이루고 싶었습니다/5월 새잎들로/하늘을 고이 가리고

다시 그 반을 흰 꽃다발들로/정성을 다해 가립니다//

검은 땅을 무수한 흰 꿈들로 덮습니다

풍성한 저 흰 빛들도, 분명/한 때는 검은 흙에 섞인

무모한 꿈들이었을 터인데/아무리 애써도/배(梨)는 될 수 없다합니다//

올봄도 이루지 못할 꿈들/많이도 꾸었으니

하얀 내 꿈들이 다 지거든

그 순간보다 더 오래/날 기억하지는 마세요

팥배나무 / 신종찬

 

이름에 ‘배나무’가 붙은 여러 나무가 있다. 돌배나무, 콩배나무, 아그배나무, 백운배나무, 벌배나무, 팥배나무 등들이다. 모두 장미과 나무로 꽃 빛도 대부분 연한 붉은색이 비치는 흰색이다. 열매 크기로만 보면 팥알만 한 크기의 팥배나무가 그중 작다. 팥배나무는 어디에서나 잘 자라, 사태(沙汰) 진 경사면을 금방 숲으로 만든다. 잎이 무성하여 낙엽이 땅을 기름지게 하며, 검은 수액을 내니 팥배나무 주변은 땅이 검다. 그 열매로 새들까지 먹여 살린다.

 인간이 자연에 깊은 상처를 내도, 자연은 늘 그 상처를 보듬어 치료한다. 나아가 그 상처로 새로운 자연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주변의 야산들도 이미 자연이 많이 훼손(毁損)되었지만, 자세히 보면 자연이 훼손된 자연환경을 복원하려 무진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자연 중 하나가 바로 팥배나무다. 오지랖 넓은 팥배나무는 멋모르고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들어왔다가, 슬픈 최후를 맞이하기도 한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다하지만, 크게 보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은 파괴 기능만 가진 자연일까? 인간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연을 파괴한다면, 자연복원을 생활화하는 법을 팥배나무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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