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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브리튼 <전쟁 레퀴엠>

  • 입력 2021.07.12 17:55
  • 수정 2022.05.03 16:09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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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성 미카엘 대성당
독일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성 미카엘 대성당

[엠디저널] 나무가 우거지고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는 이 계절,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여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이기도 하지만 양봉농가에서는 아카시아 꿀 채취가 한창이다. 꿀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560만 개의 꽃을 찾아야 한다. 양봉 작업자들은 전국을 유람하며 줄어든 벌들을 벌통에 가득 채워 이동하면서 봄철 줄줄이 이어지는 꽃들의 개화 시기에 맞춰 약 6개월가량 전국 팔도를 이동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편안하게 꿀 한 스푼과 같은 작은 것일 지라도 이를 즐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귀한 보물을 만드는 이들의 숨겨진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유일한 분단 국가임에도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숨겨진, 잊혀진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20세기 이후 인류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가장 큰 비극을 겪었다. 이전까지 노래하던 이성과 지성, 계몽 등의 것은 전쟁의 폭력 앞에 처참히 널브러졌다.

전쟁 중에 작곡가 베베른(A. Webern)은 미군의 오발에, 수많은 유태인 작곡가들은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쇤베르크(A. Schoenberg), 바르토크(B. Bartok), 코른골트(E. W. Korngold), 힌데미트(P. Hindemith) 등 많은 작곡가들은 나치의 간섭을 피해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참담한 시기의 생생한 증언들은 음악에 남겨져 있다.

현재 코번트리의 성 미카엘 대성당
현재 코번트리의 성 미카엘 대성당

행동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자, 브리튼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을 반대하던 작곡가도 있었다.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 1913-1976)은 반전주의자로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할 만큼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스물다섯의 나이로 사망한 시인 윌프레드 오웬(Wilfred Owen)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평화를 기원하는 장송곡 <전쟁 레퀴엠(War Requiem)>을 작곡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는 예수도 사지를 잃었지. 그리고 지금은 군인들이 그를 지키고 있지”라며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며, 죽은 영혼들이 마지막으로 “이제 모두 잠듭시다”라고 읊조리는 대목으로 끝을 맺는다. 대규모 혼성 합창단과 독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장대한 곡이다.

브리튼은 영국의 모차르트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영국 현대 음악사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어린 시절 스승인 프랑크 브릿지(Frank Bridge)의 영향으로 전쟁을 거부했다. 브릿지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이 빚어낸 학살과 엄청난 피해를 목격하며 평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 자신의 사상을 어린 브리튼에 영향을 주었다.

시인이자 브리튼의 친구인 오든이 미국으로 귀화하자, 미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온 브리튼은 참전 거부를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된다. 참전 거부 의사를 밝히자 영국 정부는 그에게 ‘왕립 공군 음악감독’으로 취임해줄 것을 제의했고 그는 이를 수락하게 되어 참전문제로 야기된 문제가 해결됐다. 그는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의 ‘6일 전쟁’이 발발하자 “무기를 드느니 차라리 아랍의 탱크 앞에 드러눕는 것이 낫다”고 전쟁을 비난했고,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에는 시인 던컨(Ronald Duncan)과 협력하여 오라토리오 ‘내 탓이로소이다(Mea Culpa)’를 작곡하기도 했다.

벤자민 브리튼
벤자민 브리튼

반전에 대한 의지 ‘전쟁 레퀴엠’

레퀴엠(Requiem)은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가톨릭의 의식곡이나, 브리튼의 작품에는 전쟁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것 이상으로, 영원히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있다. 가톨릭의 레퀴엠은 라틴어 가사로 되어 있지만, 이 곡에서는 오웬의 시를 더해 브리튼의 의도를 드러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영국의 전투가 벌어지던 무렵, 독일 공군의 암호 해독 문제로 처칠은 고심 끝에 코번트리(Coventry)시를 희생하기로 결정했고, 수많은 사상자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도시만 남게 되었다. 이 곳에는 영국의 자랑이었던 14세기 고딕 양식의 성 미카엘(St. Michael) 대성당이 있었지만, 독일의 폭격으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폐허가 된 이 곳에 코번트리 대성당을 새로 짓기 위한 계획을 준비한다. 코번트리 시민들은 폐허로
변한 대성당을 재건축하는 대신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쟁의 참혹함과 어리석음을 기억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함이다. 폐허로 변한 대성당 옆에 현대식 성당을 건축하여 무너진 대성당의 잿더미에서 불타버린 대못 두 개를 찾아내 현대식 성당의 제단에 십자가로 봉헌했다.

완공 후 1962년 5월 30일, 이를 기념하기 위한 축성식이 열렸는데, 헨리 퍼셀(H. Purcell) 이후 20세기 영국 고전음악의 맥을 이어간 음악가로 인정받는 브리튼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음악을 의뢰한다. 이에 브리튼은 <전쟁 레퀴엠>을 작곡했고 새로 지어진 코번트리 성당에서 초연되었으며 총 연주시간만 72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전체 구성은 3관 편성의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실내 오케스트라, 혼성 4부 합창과 어린이 합창,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솔로로 된 대규모 작품이다. 테너와 바리톤은 주로 오웬의 영어 시를 오케스트라 반주로 노래하도록 구성되었고, 어린이합창은 전례의 특성을 반영하여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감정을 자제하며 노래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합창 부분은 라틴어 가사로 비탄, 탄원, 죄악감을 표현하기 위해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함께 강한 어조로 노래되어 소프라노 솔로가 때때로 등장한다. 전곡은 6악장 구성으로, 1악장 레퀴엠 에테르담(영원한 안식), 2악장 디에스 이레(분노의 날), 3악장 오페르토리움(봉납창), 4악장 상투스(거룩할 진저), 5악장 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 6악장 리베라 메(풀어 놓아 주옵소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곡은 테너 독창의 “짐승처럼 죽어간 사람들에게 무슨 조종(弔鐘)이 있겠는가?”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표현처럼 전쟁의 비극을 음악으로 표현하거나 위로한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 덕분에 다시 한번 전쟁의 역사를 반성할 수 있다. 브리튼은 이 곡의 모토를 악보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이 역시 오웬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나의 주제는 전쟁과 전쟁의 슬픔이다. 시는 전쟁의 슬픔 속에 있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오늘의 모든 일은 경고하는 것이다." (My subject is War and the pity of War. The poetry is in the pity. All a poet can do today is warn.)

오늘날 이 곡은 전쟁을 거부하고 영원히 세상에서 날려버리는 진정한 ‘레퀴엠’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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