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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속성
  •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1.08.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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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몸의 속성

사람들은 흔히 몸이 아플 때 기분 나빠합니다. 그리고 그걸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요. 그런데 그게 당연한 걸까요? 아닙니다. 몸 아플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언제가부터 몸 아픈 것에 대해서 그런 반응을 하기 시작한 거지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몸 아픈 것에 대한 반응을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응을 바꾸면 몸 아픈 것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배가 조금만 고파도 짜증을 냅니다. 그는 ‘배가 고픈데 왜 밥이 없어. 왜 밥을 준비 안 했어. 아! 밥 먹고 싶어. 그런데 밥을 먹을 수 없잖아. 아! 싫어.’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배고픈 것에 대해 ‘내가 식욕이 왕성하구나. 지금은 뭘 먹어도 맛있겠다. 더 있다가 먹으면 더 맛있겠구나.’ 하는 식으로 반응하면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내가 지금 배고픈 상태구나. 내 몸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식으로 반응하면 담담해집니다. 마음에서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배고플 때 짜증 내는 사람은 배고프면 당연히 짜증이 나는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또 배고플 때 짜증 안 내는 사람을 이상하게 볼지도 모릅니다. 그 역시 언젠가부터 배고픈 것에 그렇게 반응하기 시작한 겁니다.

몸의 현상에 대해서 어떤 반응이 있다면 언제부터 그런 반응을 보였나 하고 알아보는 게 필요합니다. 알아보고서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적절한지,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인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몸은 우리에게 통증을 줄 수는 있지만 우리 마음을 괴롭힐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우리를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몸이 가만히 있는 속성에는 마음이 어떻게 작용할까요? 마음이 몸이라는 자루를 움직입니다. 수행을 하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걷기 명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선정을 닦고 난 뒤 마음이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걷기 명상을 하면서 걸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해보면, 발을 들고자 하는 의도가 없으면 발은 절대로 안 들립니다. 들고 난 뒤에 가려고 하는 의도가 없으면 그 이상 안 갑니다. 의도가 몸을 움직입니다. 마음이 가만히 있는 몸을 움직이는 거예요. 선정을 통해서 궁극적 실재인 물질을 보니까 마음에서 만든 물질이 나와서 몸을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팔을 들어야겠다는 의도를 내면 마음에서 만든 물질이 심장 토대에 나와서 팔까지 갑니다. 그 물질이 팔에 도착하면 마음에서 만든 물질 중의 바람과 기존에 팔에 있던 바람이 만나 팔을 움직입니다. 또 내가 말해야지 하면 마음에서 만든 물질이 나와서 성대까지 이동하여 마음에서 만든 물질 중의 땅이 성대에 있는 땅과 부딪쳐 소리가 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몸보다 마음이 중요한 겁니다.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든다고 말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의 속성

이제 마음에 어떤 속성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마음 역시 몸처럼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속성은, 마음이 언제나 대상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상에 가 있지 않은 마음은 없습니다. 마음은 언제나 대상에 가서 그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정신이 건강하려면 자기 마음이 어느 대상에 가서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하루 종일 봐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대상 자체는 건전하고 불건전하거나, 좋고 나쁘고가 없습니다. 건전 불건전, 좋음 나쁨은 마음이 대상을 향할 때 어떤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이면 그 대상이 건전하고 좋은 것이 되고, 어리석은 주의를 기울이면 불건전하고 나쁜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수행할 때 대개 호흡에 집중하는데요, 호흡 그 자체가 건전한 대상인 건 아닙니다. 우리가 호흡에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챙김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편의상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마음이 좋은 대상에 가 있으면 좋은 결과가 옵니다. 편안하고 행복하고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반대로 마음이 나쁜 대상에 가 있으면 나쁜 결과가 옵니다. 괴롭고 불행하고 정신이 불건강해집니다. 마음의 첫째 원리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마음이 한 번에 한 대상에만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굉장한 치료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불건전한 대상으로 향해 있는 마음을 좋은 대상으로 향하게 하면 불건전한 대상의 영향이 그 순간 딱 끊어지고 좋은 대상의 영향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치료 과정에서 마음이 좋은 대상에 계속 향해 있도록 하는 것, 정확히 말하면 건전하고 좋은 주의를 대상에 계속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괴롭고 불행하고 정신이 불건강한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어리석고 무지해서 마음이 불건전한 대상으로 가는 거예요. 경복궁에 간다고 하면서 경복궁 반대편으로 가면 절대로 경복궁이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건전한 대상이고 어떤 것이 불건전한 대상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마음은 동시에 두 군데를 절대로 못 갑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요즘 멀티태스킹을 한다면서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거 착각이에요. 귀는 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그리로 갑니다. 눈 역시 뭐가 보이면 무조건 그리로 갑니다. 주의가 눈으로 갔다 귀로 갔다 하는데 집중이 잘 될 리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려면 딱 그거 하나만 해야 합니다.

둘째 속성은, 마음이 어느 쪽으로 자꾸 가면 그쪽으로 길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그렇게 구조화돼 있습니다. ≪맛지마 니까야≫ <두 가지 사유의 경>에서 부처님은 당신이 아직 깨닫지 못한 보살이었을 때 사유를 두 가지로 정해서 해보았다고 말씀합니다. 두 가지는 건전한 사유와 불건전한 사유입니다. 건전한 사유는 출리(出離.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남)의 사유, 악의가 없는 사유, 남을 해코지 안 하려는 사유입니다.

불건전한 사유는 감각적 욕망의 사유, 악의가 있는 사유, 남을 해코지하려는 사유입니다. 그렇게 사유를 두 가지로 정한 후 감각적 욕망의 사유, 악의가 있는 사유, 남을 해코지 하려는 사유를 일으켰을 때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열반에도 도움이 안 되고 지혜가 없어지고 남과 자신을 괴롭히고 곤혹스럽게 해서 멈췄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씀 끝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어떤 것에 대해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그대로 마음의 성향이 된다.” 불건전한 사유를 몇 번 하자 또 하려 한 것을 부처님이 느끼지 않았나 싶습니다.

뒤이어 부처님은 불건전한 사유를 멈추고 나서 출리의 사유, 악의가 없는 사유, 남을 해코지 안 하려는 사유를 하니까 열반에 도움이 되고 지혜가 생기고 남과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곤혹스럽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러고서는 다시, 반복하는 것은 마음에 성향이 된다고 덧붙입니다.

저를 찾아온 어느 환자는 생각을 엄청 했더니만 머리에 생각이 꽉차서 자기를 엄청 압박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생각을 많이 하면 생각의 방이 커지고 꽉 차서 그것들이 막 작용하는 것이지요. 마음에 길이 나는 원리는 뒤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주의와 어리석은 주의

이제 무엇이 지혜로운 주의이고 무엇이 어리석은 주의인지, 무엇이 건전한 대상이고 무엇이 불건전한 대상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그걸 알아야 지혜로운 주의를 기울여 건전한 대상으로 가고, 어리석은 주의를 거둬들여 불건전한 대상으로 안 갈 수 있으니까요.

간단히 말하면, 지혜로운 주의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는 주의이고, 어리석은 주의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있는 주의입니다. 우리는 눈, 귀, 코, 혀, 몸, 정신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 대상을 만납니다. 대상과 만날 때, 그 대상을 궁극적 실재인 정신과 물질로 보면 지혜로운 주의이고 덩어리로 보면 어리석은 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보고서 ‘영양소로구나’ 하고 알면 지혜로운 주의이고 ‘소고기로구나’하고 알면 어리석은 주의입니다.

이렇게 대상을 궁극적 실재인 정신과 물질로 보든지 그 대상의 네가지 속성인 ‘변한다, 괴로움이다,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깨끗하지 못하다’로 보면 지혜로운 주의입니다. 반대로 대상을 ‘영원하다, 즐겁다, 고정된 실체다, 깨끗하다’ 이렇게 보면 어리석은 주의입니다. 사실 지혜로운 주의로 대상과 접하기 위해서는 불교 수행을 하든지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는 지혜로운 주의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닐 수가 있습니다.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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