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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

  • 입력 2021.08.17 08:40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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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도식화해서 이야기하면, 현재는 건전한 대상이고 과거와 미래는 불건전한 대상입니다.

현재에 있는 것을 현존이라 합니다. 현존이란 현재를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지금 이거 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건 현존이 아닙니다. 현존이란 무언가를 할 때 거기에 온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손전등 비추듯이 의식을 거기로 향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몸과 마음이 딱 가 있는 상태입니다.

과거에는 좋은 과거와 안 좋은 과거,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좋은 과거는 떠올리면 흐뭇하고 기분 좋고 그러는 추억 같은 것이고, 나쁜 과거는 생각나면 후회되고 화가 나고 뭔가 억울하고 아쉬움이 남는 그런 것입니다. 이 둘 가운데 안 좋은 과거는 당연히 불건전한 대상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좋은 과거는 과연 건전한 대상일까요? 안 좋은 과거보단 훨씬 낫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에 충실하고 현재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추억을 잘 안 떠올립니다. 추억은 좀 힘들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떠올립니다. 추억에 잠겼다가 다시 현실로 오면 현재가 힘들어집니다. 추억에 잠기면 현재가 손상을 받습니다. 추억에 잠기는 것도 반복하면 길이 나서 현실을 살아가는 데 지장을 줍니다.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마음이 현재로 가을 때의 이득과 비교하면 추억하는 것의 이득은 훨씬 적습니다. 이렇게 볼 때 좋은 추억을 건전한 대상으로 분류하여 그쪽으로 가는 것을 권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과거는 불건전한 대상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도 좋은 미래와 안 좋은 미래, 이렇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안 좋은 미래는 떠올렸을 때 걱정되고 불안하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그런 것입니다. 좋은 미래는 여행, 방학, 만기가 다가오는 적금, 계획 세우기처럼 기쁨과 설렘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미래와 안좋은 미래는 건전한 대상일까요, 불건전한 대상일까요? 과거를 살펴볼 때 이미 봤듯이 이 둘 모두 엄밀히 말하면 불건전한 대상입니다.

생각 속에서만 우리는 과거와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누가 생각이 많다 그러면 저는 그가 과거로 많이 갈까 미래로 많이 갈까를 봅니다. 과거로 많이 가면 후회와 화가 많기 쉽고, 미래로 많이 가면 불안과 걱정이 많기 쉽습니다.

‘기다림’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추억’하고 똑같은 거라고 봅니다. 현재가 좋지 않으니까,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고 충만하지 못하니까 기다리는 거예요. 기다림이 없는 삶으로 전환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랑 약속을 했는데 내가 좀 일찍 도착해서 친구 오기를 기다리면 그것도 힘듭니다. 친구가 약속 시각보다 늦게 오면 화가 날 수도 있지요. ‘나는 먼저 와서 기다렸는데 너는 뭐냐?’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는 거예요. 그럴 때를 대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책을 읽는다면, 그 시간이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이 됩니다. 그러면 기다리는 데 목을 맬 때보다 정신 건강에 훨씬 좋습니다.

계획도 비슷합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그랬습니다. 시험이 한 3주 남으면 열심히 계획을 세웁니다. 다음 날부터 공부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세우는 날은 마음 편히 놉니다. 다음 날 공부가 안 되면 다시 그 다음 날부터 공부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그날은 또 놀지요. 이게 며칠 더 반복되다가 결국엔 발등에 불이 떨어집니다. 계획이란 건 어쩌면 지금 하지는 않으면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세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계획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모든 계획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나 회사에서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어떻게 하겠다고 잡는 계획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건 실제입니다. 제가 여기서 문제를 삼는 건 자기가 무언가를 하겠다고 생각만 하는 형태입니다.

안 좋은 과거는 떠오르는 힘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것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억하기 싫어도 자꾸 떠오릅니다. 따라서 남에게 부당한 처우를 당했거나 스스로 후회하는 일은 정리가 필요합니다. 반면 추억 같이 좋은 과거는 그것으로서 끝난 것입니다. 추억은 필요를 느끼고 끄집어내야 떠오르지 가만히 있으면 잘 안 떠오릅니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미래도 굉장히 강한 힘입니다.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과거와 미래가 생각이지 실제는 아니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그 생각들도 본질적으로 보면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과거는 딱 한 번 일어난 일입니다. 누구한테 뺨을 맞든 나쁜 소리를 듣든 딱 한 번 일어난 거예요. 두 번 일어난 일은 없습니다. 한 번 일어나면서 통제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지나간 일을 우리는 생각으로 계속 일어나게 합니다. 생각으로 일어나는 것은 노력한다면 통제가 가능한 것입니다.

기분 나쁜 생각이 들면, 뇌에서 포도당 대사에 변화가 생기고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됩니다. 그러면서 화학 변화가 일어나지요. 그러면 그것이 또 영향을 줍니다. 과거의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어떤 심리적 타격을 받고 뇌에서 화학 변화가 일어났듯이, 생각을 할 때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 심리적 타격과 화학 변화가 동반됩니다. 열 번 생각하면 열 번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당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영향을 받습니다.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는 사실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거지만, 그 일을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순간만은 실제가 됩니다. 실제가 돼서 심리적 타격을 주고 뇌에 화학 변화를 일으킵니다. 열 번 생각하면 열 번 실제로 사건이 일어나는 거예요. 있지도 않은 일을 우리 스스로 일으켜 자기에게 영향을 주는 겁니다. 그 물질적인 변화가 일시적이면 다시 조화로운 균형 상태로 돌아가겠지만, 수십 일 수백 일 계속되면 불가역적인 변화가 올 수도 있습니다.

저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병난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대체로 이렇습니다. 순탄하고 잘 살아가는 중에 어려운 일에 맞닥뜨립니다 거기서 자기 힘으로도 이겨내지 못하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해서 올바르게 연구하고 대처하는 게 아니라, 다시 말해 실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 속에서 과거와 미래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서 엄청난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게 심리적 타격을 받고 뇌의 신경전달물질 대사에도 안 좋은 변화가 생깁니다. 악순환이 계속되면, 심한 경우는 정신병도 되고 신경증도 됩니다. 이 원리에 정신장애와 정신 불건강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제가 2003년에 수행하고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지금까지 내가 생각을 많이 해서 나를 괴롭혔다’는 사실입니다. 그때부터 생각을 스톱(stop)했습니다. 그랬더니 괴로움이 싹없어졌습니다. 크고 작은 콤플렉스가 사라졌습니다. 콤플렉스란 생각을 많이 해서 꽉 뭉친 부정적인 생각 덩어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서는 그런 게 생겨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생각을 줄이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에 사는 것은 정신 불건강이고 현재에 사는 것은 정신 건강이다.’ 현재에서 멀어진 만큼 정신 불건강이 됩니다. 조금 멀어지면 조금, 많이 멀어지면 많이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치료 작업은 환자로 하여금 현재로 돌아오게끔 하는 것이 됩니다. 틱낫한 스님이 “집에 있다(I’m home).”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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