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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신상’를 탄생시킨 ‘류머티즘(류머티성 관절염)’르누아르 (Auguste Renoir)
  •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 승인 2021.09.0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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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작: ‘자화상’ (1910) 개인 소장

[엠디저널] 1860년대 파리의 미술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즉 이때까지는 화가들이 자기의 후원자로부터 생활비를 받고 그 대가로 주문하는 주제와 형식에 따라 그림을 그려 오던 것을 박차고 자기가 원하는 주제를 자기 나름대로의 형식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이들 화가를 이른바 인상파(impre-ssionism) 화가라 했으며 그들은 현실의 빛 속에 있는 물체는 종래에 믿어왔던 것과 같은 특징의 색과 형태가 아닌 광선과 대기(大氣)의 상황에 따라 변화된다는 것을 중요시하여 색채를 빛의 움직임에 따라 새롭게 재인식하고 이를 묘사하였던 것이다.

인상파에 속하는 여러 유명한 화가가 있으나 여기서는 인상파의 대표 격인 화가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의 그림에 나타나는 그의 병적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는 두 번씩이나 자전거 사고로서 우측 팔이 부러지는 수난을 당했기 때문에 좌우 손을 번갈아 가며 그림을 그렸으며 후년에는 관절염이라는 손가락의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화가이다. 그의 ‘자화상’(1910)에 잘 나타나 있듯이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병으로 인해 깡마른 얼굴이지만 그의 눈은 매우 예리한 눈초리로 자기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은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것을 스스로가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몸에 일어났던 병변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그림들이 있어 이것들을 보면서 그의 투병의 혼을 살려 보기로 한다.

르누아르 작: ‘반신상’ (1873-75) 메리온, 린컨 대학 바르니스 재단

르누아르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나체화를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1873년에서 75년에 거쳐 그린 ‘반신상(半身像)’을 보면 검은 머리의 반나체의 여인은 흐트러진 머리를 만지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목욕 후의 손질인 것 같다. 여인은 마치 가위로 오려낸 듯한 윤곽선이 뚜렷이 배경과 구별되고 있다.

이 그림은 그가 팔에 부상 전의 그림이며 또 손가락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 때 그린 것으로 이 무렵 그는 “나체그림은 애교가 있어, 보면 즐겁고 아름다워 손으로 만지고 애무하고 싶은 육체를 그려야 해요. 인생은 귀찮은 일이 너무 많아 새로운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르누아르에게 불행이 닥쳤는데 그 첫 번째가 1880년의 일로서 그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쓰러져 오른쪽 팔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래서 그림을 왼손으로 그리게 되었다. 1881년에는 폐렴에 걸려 상당 기간을 요양했다.

르누아르 작: ‘욕부 습작’ (1884-85) 시카고, 시카고 미술 연구소

그가 그린 ‘욕부(浴婦) 습작’(1884-85)은 아마도 오른팔의 부상으로 인해 왼손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습작을 통해 그의 왼손의 그림 그리기를 훈련한 것 같다.

르누아르는 약간 살이 오른 여인들의 몸에다 고운 얼굴에서 행복감을 찾았고, 다정다감한 여인들의 눈웃음과 드레스에 약간 가려진 풍만한 육체. 윤기 나는 금발 머리와 뽀얗고 흰 살결을 묘사하는데 어느 인상파 화가보다 뛰어 났다.

르누아르 작: ‘머리 빗는 여인’ (1887) 페테르스브르그, 헤르미타제 미술관

이러한 그가 이상으로 하는 여 나체의 그림이 바로 그가 그린 ‘머리 빚는 여인’(1887)인 것으로 보인다. 간결하면서도 육체에 균형이 잡힌 몸매는 그의 전작 ‘반신상’(1873-75)보다도 성숙되게 보이는 그림을 그렸는데 두 그림의 여인 모두가 손을 올리고 머리를 만지고 있기 때문에 유방이 그대로 노출되는 특징이 있으며 전 그림의 여인보다 뒤에 그린 여인이 풍만한 육체이어서 가슴이 풍부하고 팔에도 지방이 올라있다. 

이 그림을 그릴 무렵 그는 말하기를 “만일 여자에 있어서 유방과 엉덩이가 없다면 여체의 그림은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듯이 여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유방과 엉덩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것은 번식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절대 유용성을 지니는 번식미(繁殖美)에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1888년부터는 손과 발의 관절에 가벼운 장애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1894년에는 류머티 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으며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게 되었다.

1896년에 이르러서는 좌측 가운데 손가락 관절이 부어오르기 시작하였으며 심한 통증 때문에 붓을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897년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쓰러지면서 먼저 골절되었던 오른쪽 팔에 골절을 다시 입게 되었으며 다음 해부터는 류머티 성 관절염의 악화로 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다. 이 노 화백은 걷지 못할 뿐만 아니라 손가락의 마디마디가 염주 알처럼 굵어지고 굳어져 손가락을 마음대로 쓰지 못해 붓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겨울 한 철은 남프랑스의 따스한 해안가에서 휴양하였다.

1907년에는 남프랑스의 카뉴 교외에 넓은 땅을 사들이고 그곳에 아름다운 저택을 지어 그 이름을 루 고렛트라고 하였으며 그가 생을 마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나이 먹을수록 르누아르의 그림은 장미 빛이 더해갔으나 몸의 병은 점점 더 심해져 1909년부터는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다.

흰 수염이 더부룩하고 무섭게 깡마른 한 노 화백이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앉아 있으면 마당에 특별히 설계해서 만든 유리로 된 아틀리에 운반된다. 이곳에 운반돼 오면 언제나 흰색 야외 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다. 모델 겸 가정부로 있던 가브리엘이 마치 나사못처럼 꾸부러진 그의 손가락 사이에 붓을 넣고는 끈으로 동여매 주면 그것으로 그림을 그렸다.

화가가 붓을 잡을 수 없다면 화가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노 화백은 굳어진 손가락 사이에 붓을 넣게 하고는 끈으로 이를 묶어 그림을 그렸다.

르누아르 작: ‘여상주’ (1910) 메리온, 린컨 대학 바르니스 재단

육체는 비록 병들어 망가졌지만 예술가로서의 혼은 살아 가엾은 육체를 위로하고 달래어 창작의 세계로 끌어 드려 작품을 만들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우곤 했다. 특히 여성의 누드 그림에 있어서 유방과 엉덩이를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말년에 이르러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그의 ‘여상주(女像柱)’(1910)라는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다.

천정을 네 명의 나체의 여인이 떠받들고 있어 가슴과 엉덩이가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림의 좌우 바깥쪽의 여인들은 한 손만으로 천정을 받들고 있으며 안쪽의 두 여인을 양손을 다 들고 천정을 받들고 있어 여인들의 몸매의 전후좌우 측면 할 것 없이 다 표출되어 있다. 앞서 그린 나체화들보다 이 그림의 여인들은 비만한 편인데 특히 하체가 더 비대 된 그림이다.

모름지기 앞서 세 그림은 모델이 있어 그린 것으로 보이며 이 그림은 화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상형인 여인들인 것 같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앞서 그림의 여인들은 상박(上膊)과 전박(前膊)의 굵기에 차가 있어 자연스러운데. ‘여상주’의 여인들은 상박과 전박의 굵기에 차가 거의 없다. 이것은 아마도 화가가 팔의 골절, 류머티즘에 의한 상하지(上下肢)의 고통 등으로 인한 인체묘사에 자기 본위적인 표현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생을 늘 밝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 타고난 감각을 지녔던 그는 여인의 부드러운 허벅지와 가슴 그리고 엉덩이를 마치 애무하듯이 그려 숱한 남성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림 속 여인의 몸을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드는 그림, 감각이 무디어 흐려진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그림,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은 화가의 욕망을 황홀한 여체에 남김없이 구현했다. 

이러한 그림의 영향을 받은 당시 여성미의 기준을 터질 듯이 풍만한 유방과 엉덩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유방을 풍만하게 보이기 위한 브래지어, 엉덩이를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한 텐트 치마 등이 등장했다고 한다.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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