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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식 대화법

상대방의 얘기를 먼저 들어라, 이해하려 노력하라

  • 입력 2021.10.29 08:06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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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최근에 읽은 책 어려운 대화들(Difficult conversations)을 통해 특히 내가 이런 대화법을 과거에 알았더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하버드 중재자팀’ 이라고 불리는 세 명의 연구진은 수십 년간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상관이나 배우자, 자녀 또는 거래인들과 이야기를 하나?”를 연구했다. 그들의 방법을 읽어가다 보면 희한하게도 나의 친정어머니가 손자들과 하시던 대화들이 생각난다. 예를 들면, 어린 우리 꼬마들이 뛰다가 책상 모서리에 걸려 넘어졌다고 하자. 대뜸 “앞을 잘 보고 다녀야지, 왜 너는 그렇게 주의력이 부족해”라고 야단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러나 친정어머니는 아이 쪽이 되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이해하시려 했다. “정말 그 책상이 어쩌면 꼭 네가 뛰어가는 중간에 거추장스럽게 놓여있구나. 그러니 넘어질 수밖에…. 어디 보자. 피가 나나, 안나나.”그러면 행여나 야단을 맞을까봐 은근히 마음조리고 있던 아이는 기운차게 일어나곤 했다. 오히려 안쓰러워하시는 할머니를 위로하면서 “이 다음부터는 안 뛰고 저쪽으로 돌아서 다닐게요”하고 해결방침까지 거침없이 내놓는다.

바로 하버드팀이 말하는 대화의 요법 중의 “내 주장을 고집하기 전에 상대방의 얘기를 먼저 들어주고, 이해해 주며 노력하라”는 원칙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은 아이 쪽에 있다. 뛰지 않고 조심스레 다니면 넘어지지도 않고, 병원에 갈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어린아이 입장에서 보면 천만에 말씀이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일하던 아빠가 장난감을 사 가지고 오는 순간이다. 너무나 반가워 날아서라도 아빠를 맞으러 현관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다. 혼내고, 버릇을 가르치려는 엄마는 엄마 쪽의 진실만을 얘기한다. 옳고 그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엄마의 입장에서 본 진실이다. 아이 쪽에서 보면 아버지의 대한 사랑이 큰 것이었으니, 사실 그쪽도 옳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닐 때가 많다”

“누가 옳은가?”만 따지고 보면, 양쪽이 다 속상해지고, 아이의 행동에는 변화가 오지 않는다. 그에 반해 하버드팀은 상대방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란다. 마치 나의 어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살아가면서 생기는 많은 ‘대인간의 문제’ 나 ‘어려운 대화’ 는 사실 누가 옳고 그른가에 달린 것이 아닐 때가 많다고 한다. 간혹은 양쪽이 모두 옳을 수도 있고, 또 큰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13살짜리 딸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발견한 엄마가 아이와 어려운 대화를 한다고 치자. 엄마는 도대체 딸이 담배 피우는 것을 옳지 않다고 야단친다. 세상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것은 진실이니까! 그러나 이 경우에 중요한 것이 ‘누가 옳은가?’를 가려내는 것일까? 아니면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녀를 이해해보려고 일단 노력하면 어떨까? 행여나 13살짜리 딸이 ‘너는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다’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잘못된 정보를 통해 담배를 피우면 날씬해진다는 오해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사실 조차도 본인은 모르는 채 담배를 피울 수도 있다.

이미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이라고 마음의 작정을 해 버린 엄마에게는 딸의 이야기를 들을 문이 닫혀버린 셈이다. 그러니 딸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힘들 수밖에…. 이해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람들은 변화하기 어렵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반드시 ‘동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딸의 의견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듣다 보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대화’의 요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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