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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통풍 증상 표현의 허와 실을 보인 4명의 유명 화가

화가의 질병이 탄생시킨 명화(22)

  • 입력 2021.11.04 16:18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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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작: ‘최후의 심판’(1534-41)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의 부분 확대
미켈란젤로 작: ‘최후의 심판’(1534-41)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의 부분 확대

[엠디저널]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당대 최고의 조각가이며 화가이고 건축가이었던 미켈란젤로(Buonarrori Michelangelo 1475-1565)는 시스티나 성당의 한 벽면 전체에 13미터 높이에 폭 12미터에 달하는 벽화 ‘최후의 심판’(1534-41)을 그렸다. 그림의 상부 중앙에는 젊고 씩씩한 크리스트가 오른손을 높이 들고 왼발을 앞으로 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심판자이다. 크리스트의 오른쪽 즉 화면의 좌측에는 선택된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하늘로 오르고 있으며 반대 측에는 죄인들이 절망적인 표정으로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른바 크리스트를 중심한 우주 전체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치며 크게 회전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크리스트의 주변에는 성모 마리아를 위시한 성자 사도들이 모여 있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크리스트의 발밑 우측에 있는 성(聖) 바르톨로메오 이고 그 반대 측에는 성 라우겐티우스가 대조를 이룬다.

즉 화가는 성자 바르톨로메오가 자기가 죽게 된 것이 이교도들에 의한 생피박리(生皮剝離)라는 끔직한 처형에 의해 사망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다. 화가는 피부를 몸에서 떼어내는 대신에 피부가 박리 되어 몸에서 떨어져 마치 입었던 내의가 늘어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더욱 주목해야할 것은 그 피해 받은 사람의 얼굴대신 자기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은 사실이다. 미켈란젤로가 바르톨로메오의 얼굴 대신 왜 자기의 얼굴을 그려 넣었는가에 대해서, 이 엄청난 그림의 작업이 자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서명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이것은 당시 화가들이 그림에 자기 얼굴을 넣어 싸인으로 한 형식을 취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라파엘로작: '아테네 학당’(1510-11)의 부분 확대,헤라클레이토스(미켈란젤로) 바티칸, 스탄차 델라 세냐투라
라파엘로작: '아테네 학당’(1510-11)의 부분 확대,헤라클레이토스(미켈란젤로) 바티칸, 스탄차 델라 세냐투라

프레스코화의 거장 라파엘로(Sanzio Raphael 1483-1520)는 바티칸 교황의 방에 ‘아테네 학당’(1510-11)이라는 유명한 그림을 그렸다. 외관상 그림의 시대적 배경은 고대 아테네로 기원전 5세기 말의 플라톤 학당이지만 라파엘로는 이성에 의한 진리 추구를 찬양한 이 작품에서 고대 철학자, 현자, 학자들 사이에 당대의 인물들을 섞어 그렸다.즉 이 그림은 지식이란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학자들 간에 토론과 논쟁을 반복하는 가운데 발전되어 왔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진리를 추구한 고대의 영웅들은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들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진리를 추구한 영웅은 누구보다도 예술가들이라는 것을 표현하였다. 그것은 플라톤의 얼굴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로 대치하였으며 그림 맨 밑 중앙의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의 얼굴로 대치되었다.

미켈란젤로 작: ‘Lorenzo de Medici의 무덤’(1520-31) 조각의 부분 확대
미켈란젤로 작: ‘Lorenzo de Medici의 무덤’(1520-31) 조각의 부분 확대

실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Lorenzo de Medici의 무덤’(1520-31)에서 남성의 무릎의 라파엘로가 그린 미켈란젤로의 무릎에 있는 통풍결절과 꼭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데 혹시는 ‘최후의 심판’ 그림에 자기의 얼굴을 그려 넣듯이 자기 무릎을 모델로 조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Lorenzo de Medici의 무덤’(1520-31)의 몸과 발 다리 부위 확대
‘Lorenzo de Medici의 무덤’(1520-31)의 몸과 발 다리 부위 확대

통풍을 예전에는 토푸스(tophus 통풍결절)라 했고 이를 처음으로 기술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의사 갈레노스(129-197)이었다. 통풍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13세기에 이르러서 이다.

이 병은 미식, 음주 등과 같은 생활 습관과 관계해서 야기되는 병으로 중년 이후의 남성에 주로 발병된다. 즉 요산(尿酸, uric acid)이 많은 음식물과 술을 즐기는 미식가들에 주로 발병하며 여성은 난포 호르몬(에스트로겐)이 요산 배설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폐경전의 여성은 요산치가 낮아 거의 발병되지 않고 있다가 폐경기 후에 발병된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칼 5세와 프랑스의 국왕 루이 14세도 통풍을 지병으로 갖고 있었으며 이들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들도 그들이 통풍 환자였다는 것을 알고 그렸는데 그 시각과 표현에는 차가 있다.

티치아노 작: ‘황제 칼 5세의 초상’(1548)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티치아노 작: ‘황제 칼 5세의 초상’(1548)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90-1576)는 르네상스 기의 화가로 베네차아파의 거장이었다. 칼 5세(1500-1558)는 신성 로마 황제와 스페인 왕 카르로스 1세를 겸한 합스부르크 가(家)의 왕인데 그의 초상화를 티치아노가 그린 것이 ‘황제 칼 5세의 초상’(1548)이다.

이 초상화를 그린 티치아노가 황제 칼 5세를 처음 만난 것은 1530년에 보로니아에서 제관식이 있은 후 이었으며, 그로부터 3년이 지나서 두 사람은 다시 보로니아에서 만나게 되자 황제는 티치아노를 전속 초상화가로 임명하여 많은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이 초상화는 1548년 칼 5세가 아우구스브르크에 머물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티치아노가 심혈을 기우려 그린 그림인데 통풍으로 고생하는 권력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숨김없이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즉 통풍 환자는 발가락의 통증 때문에 지팡이를 쓰고 시발은 큰 것을 신는데 티치아노는 칼 5세의 그림에서 사실대로 표현하고 있다.

프랑스의 화가 이아생트 리고(Hyacinte Rigaud 1657-1743)는 궁정 화가로 주로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초상화 중에서도 루이 14세의 ‘루이 14세의 초상’(1701)이 걸작으로 곱힌다.

리고 작: ‘루이 14세의 초상’(1701) 파리, 루브르 미술관
리고 작: ‘루이 14세의 초상’(1701) 파리, 루브르 미술관

리고가 루이 14세를 그릴 때 왕의 나이는 63세 이었다.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 파를 박해하고 얀센 주의자들을 모조리 소탕해 후일의 대혁명 당시의 자코뱅의 공포 정치보다 더 무서운 정치를 폈던 시기의 왕의 모습이다. 그만큼 권위와 위엄이 가득 차 있다.

그림에서 보는 화려한 의상과 도구들은 왕이 즉위식 때에 입는 의상과 장식들이며 화가는 프란돌의 화려한 바로크적 초상화의 전통을 답습하여 왕을 신격화하여 그렸다.

그러나 한 쪽 발을 앞으로 해 동적인 자세에 지팡이를 잡고 있는 것은 단지 전통적인 요소와 결합된 바로크적 초상일 뿐만이 아니라 세련된 우아한 멋을 내려고 애쓴 것이 보인다. 그런데 실은 루이 14세는 통풍 환자였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기 위해 애를 쓴 흔적으로 해석된다.

발목까지는 건장하게 그렸지만 발과 신발 부위에 이르러서는 우측은 그림자로 가려 보이지 않게 하고 왼쪽의 발 부위는 정면을 향하게 하여 보이지 않게 하는 등 태양왕이라 했던 루이 14세의 병으로 인한 취약점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칼 5세의 초상화를 그린 티치아노 화가는 루이 14세를 그린 리고의 지팡이를 장식으로 미화하고 신발의 표현은 교묘하게 피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있는 그대로를 즉 병들어 추하게 보이는 것도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를 묘사해 오히려 권력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전해 줘 호감이 간다.

그런데 루이 14세를 그린 리고는 묘한 포즈로 결점을 감추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즉 전자의 경우는 추하지만 있는 대로 묘사해 좋은 평을 받는데 비해 후자의 경우는 지나치게 권위와 위엄을 내세우려고 추한 것을 가린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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