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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가 한옥 건축 공간의 재발견그곳에 가고싶다
  • 양지원(문화예술학 박사/MD편집위원)
  • 승인 2021.11.0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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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가 전경 | 이미지출처 조선왕가

[엠디저널] 역사를 모두 산 허리에 이어지고 있는 이 지역은 난 개발의 흔적을 살짝 뒤로 한 채 평화가 깃들어 있다. 자연을 탐구할 수 있는 보고의 지역으로 탈바꿈하여 변하고 있는 그 곳 연천 지역이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연천군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토박이 주민들과 그 옛날 선사시대 인류처럼 새로운 삶터를 찾아온 이들이다. 맑고 깨끗한 자연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천군 연천읍 현문로에 자리한 <조선왕가>도 그 중 하나다.

경기도 연천 지역에는 사라진 왕조가 남긴 흔적이 여럿이다. 한 시대의 전환기 시점이라고 하겠다. 통일 신라의 말기, 고려의 말기, 조선의 말기의 역사적인 사적이 이 땅에 모여 있다. 고대 신라의 왕들은 산처럼 크고 둥근 봉토에 둘러싸여 수도 경주 남산 근처 지역의 문화유산이 되고 있다. 마지막 왕인 56대 경순왕릉은 경주에서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 경기도 연천에 있다. 미산면에는 고려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고, 고려 태조와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충경왕), 충렬왕, 공민왕과 공신 열여섯 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 숭의전지이다.

이건하기 위해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염근당 상량문 | 이미지출처 조선왕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전 왕조인 고려에 예를 다해 이 사당을 세웠으나, 장소는 수도인 개성을 벗어나 연천으로 했다. 또한 조선 왕조의 마지막, 한 부분의 공간도 연천에 있다. 이곳이 한옥 호텔 <조선왕가>의 자리이다. 한옥 호텔로 활용된 ‘조선왕가’는 고종의 손자 이근의 고택 염근당을 서울 명륜동에서 옮겨온 건물이다. 염근당은 1976년엔 극동그룹 김용산 회장이 그룹의 외부 인사 접견 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2008년 6월 10일 회덕 남권희 박사는 서울 명륜동에 있던 염근당을 원형보전 상태로 지금의 연천으로 옮겨왔다. 이 역사적 대 이동 프로젝트는 개인의 노력으로 서울에서 연천까지 한옥 건축물을 이전하는 시간만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건물 해체 도중 집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줄 상량문이 발견된다. 상량문에는 이 집을 지은 사람이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이며, 건축물의 상량문귀는 이러하다.

‘미나리처럼 혼탁한 물속에서도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의 ‘염근당’이라는 기록이다. 조선왕가 황손이 거처했던 공간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문화공간 역사적 자료가 되는 귀중한 한옥인 것이다.

회덕 남권희 박사, 김미향 씨 부부는 염근당을 연천으로 옮겨 짓는 동안 커다란 기둥 하나, 장대석 하나 다치지 않고 조선 시대 건축양식에 맞게 복원되도록 꼼꼼히 살폈다. 여러 전문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99칸 한옥을 옮기는 일은 이 공간의 주인의 결연함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사라질 위기의 역사적 공간을 이관하여 존치하는 어려운 계획으로 연천 이곳에 거듭남의 공간으로 있게 했다는 것을 취재 중에 더 실감하며 느꼈다.

조선왕가 회덕당 | 이미지출처 조선왕가

조선 왕조가 남긴 문화유산,

종로구 명륜동에서 경기도 연천으로

염근당(念斳堂)은 고종황제의 영손으로 조선조 역대 왕의 종묘제례를 관장하던 왕족 이근의 고택으로 1807년에 창건되고 1935년에 중수된 왕실가의 전통한옥이다. 후원의 회덕당(懷德堂)은 원래의 장소 종로구 명륜동에 있을 당시 故박정희 전 대통령이 머물렀던 고택(古宅)이다.

<조선왕가>의 염근당은 원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옆에 있던 이 집은 대학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사라질 운명이었으나 위기에 처한 고택 염근당을 연천군으로 옮겨 지은이들이 조선왕가의 주인 부부이다.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은 한옥 염근당, 회덕당, 사반정, 전각문 네 곳과 글램핑 장소인 카바나이다. 별도로 카페와 레스토랑, 수영장 시설이 있다. 단, 염근당 등 한옥 공간의 사용은 해당일 투숙객의 공간으로 활용한다. 훈욕 테라피, 풍등 날리기, 한방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한옥 호텔 예약은 홈페이지에서 맡고 있다.)

조선왕가 염근당 풍경 | 이미지출처 조선왕가

외길로 가다. ‘원형 이대로 보존하자!’

오직 한마음으로. 내 눈에 들어오는 상서로움이 있었다.

한겨울 추위에 황토 작업을 할 수 없어 그날 작업 공정에 배치된 건축 인력 분들의 작업 일정이 취소되는 일도 그중 하나의 일화이다. 인자는 큰일을 시작할 때 사사로움을 끊고 앞을 보며 그 일을 추진하는 내공으로 추진하지만 어려움이 직면했을 때는 약해지는 의지력에 잠시 긴장을 풀어내기도 한다. 그해 겨울, 왜 이리 힘든 일을 자처했는지 슬며시 고민이 머리를 들었을 때 문득 그의 눈에 들어오는 상서로움이 있었다고 한다. 머리 위 소나무 위에 모습이다. 겨울나기를 위해 짓고 있는 작은 둥지를 틀기 위해 수많은 나뭇가지를 떨어뜨리며 수고하는 까치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 아름다운 공간을 개인의 공간으로 지내는 것 또한 생애 기쁨이 된다. 이 기쁨을 배로 하는 일로 더 나아가 한국 건축의 최고의 미(美) 한옥의 지혜가 숨어 있는 귀한 공간을 이웃과 같이하기로, 또 그들과 함께 하며 한국학의 시작인 ‘한옥’의 공간 지내기와 나눔으로 선조들의 지혜를 읽는 정신적 실천으로 한옥 스테이를 구상했다. 원형 한옥 구성 공간을 현대인의 실효 공간 분석으로 객실 내부에 현대식 화장실을 갖추고 125칸으로 규모를 키운 조선왕가로 거듭나는 역사의 공간으로 지어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한 청년은 명륜동의 그 때를 기억한다.

‘이대로 보존하자!’라고 결의를 다짐한 후 그대로 실행을 감행했다. 어떤 바람이 그를 도왔을까! 그것은 가문의 내림의 미학이었다. 세월을 다져오는 동안 토호세력 층으로서
선행 또한 가문의 빛을 내는 내훈의 스토리가 있었다.

조선왕가의 한옥은 본채인 염근당과 행랑채인 사반정, 별채인 자은정으로 구성된다. 조선왕가의 손님 맞이는 편의시설이 자리한 현대식 건물 1층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입·퇴실 절차와 식사 예약을 마치고 한옥으로 건너와 편안히 쉴 수 있다.

염근당은 황손이 머문 왕가 공간의 위풍 답게 장대석을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은 건물은 ‘ㄷ’자 모양이다. 주련으로 장식된 기둥과 대들보는 일반 민가에서 보기 드문 곧게 뻗은 나무를 사용했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지지 않은 나무를 보면 오래전 지은 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잘 말린 금강송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염근당은 휜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푸근한 곡선미 (배흘림 기둥)를 보여주는 민가에 비해 이곳 건축물 양식은 반듯한 위엄이 서려 있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이 지금까지 150년째 지어지고 있다고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이론적인 지식의 방편으로 말하곤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오늘 이곳의 대화는 자연스러운 낮은 데시벨의 톤이 유지된다. 궁에서 어린 왕자의 학동기 예절은 낮은 보폭의 걸음걸이 시작이었다.

그렇다. 공간이 주는 자연스러움의 대화와 그 이치를 몸에 익히는 순간이다. 절로 발걸음을 조심조심 떼게 되는 공간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함에 있어서 경제적인 부분과 그에 따르는 가치창출을 도출하는 시대에 한쪽의 보존 의지만으로 오늘의 공간 이곳에 있게 되는 일을 청년의 때에 실행을 하였고, 이제 그는 불혹에 있다. 
 

자료제공 Gallery Blue

Information

조선왕가

주소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현문로 339–10

문의 031–834–8383

홈페이지 royalresidence.kr

 

양지원(문화예술학 박사/MD편집위원)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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