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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승리의 미소

  • 입력 2008.04.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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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바쿠스(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이탈리어 이름)가 술의 신이 된 것에는 상당한 사유가 있는데 그것은 그의 출생을 알아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바쿠스는 제우스와 그의 애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의 정실인 헤라는 남편의 아이를 낳을 ‘시앗 세멜레’를 파멸시킬 한 가지 묘안을 짜내, 마침내는 눈 깜빡할 사이에 타 죽게 하였다. 제우스는 세멜레의 몸에서 아기 바쿠스를 꺼내어 자기의 허벅지에 넣었다가 달수가 차자 이를 꺼내어 인도의 뉘시산의 요정들에게 맡겼다. 이 뉘시산의 요정들은 바쿠스를 맡아 길렀다. 바쿠스는 장성하자 포도 재배법과 그 귀중한 즙으로 술을 담구는 법을 개발하였다. 그러나 헤라는 이 바쿠스가 미워서 술을 많이 마시는 미치광이로 만들고는 살던 곳에서 쫓아내어 세계도처를 떠돌아다니게 했다.
그렇지만 술의 신 바쿠스를 그리스에서는 포도의 재배법을 개발하고 포도주 담구는 법도 가르쳐 준 신이기 때문에 술의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또 그는 항상 술에 취하여 돌아다녔고 그의 뒤에는 술에 취하여 날뛰는 수많은 박케라는 여인군(女人群)이 뒤따르면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축제를 열게 하여, 술의 신으로 주당들의 존경을 받았다.

삶에 밀착된 시간, 충만함이 느껴지는 순간에서 터져나는 승리의 미소
희랍에서의 ‘바쿠스 축제’ 때에는 선남선녀가 모여 그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취기를 빌려 마음 놓고 이야기하며, 술을 인심 좋게 권하고 받으며, 노래하고 춤추던 축제이었는데, 그것이 희랍의 식민지였던 남부 이탈리아에 전해져 그 곳에서도 ‘바쿠스 축제’가 자리 잡고 점점 성행됨에 따라 축제의 원래의 뜻과 의의는 망각되고 빗나간 축제로 번져 축제가 아니라 소동과 난동으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실정을 보고 받은 원로원(元老院)은 축제를 금하는 포고령을 내렸다. 그러나 순박한 농민들(특히 술꾼들)은 어쩌다 한번 마음 놓고 즐기던 축제를 금하는 것에 항거하여 축제를 계속해서 열었다. 금지된 것을 위반하면 엄한 벌을 내리는데도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축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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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화가는 스페인의 벨라스케스(Dieg Rodriguez de sliva y Velazguez 1599~1660)의 ‘바쿠스의 승리’ (1628-29)라는 작품이 있다. 그림에는 포도관을 쓴 바쿠스가 중심에 있다. 바쿠스의 얼굴은 마치 미소년과 같이 표현되어 있으나 그 표정은 상당히 활발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다. 머리에는 포도나무 가지를 엮어 만든 관을 쓰고 있어 자기가 바쿠스 신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자기가 쓴 관보다는 작으나 역시 포도나무 가지로 만든 관을 무릎 꿇고 엎드린 남자에게 씌워 주고 있다.
실은 그 사람이 항거 데모에 앞장섰던 사람으로 주신은 자기의 상징인 포도관을 씌워 주며 그의 용맹성을 칭찬해 주고 있는 장면이다. 그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모두가 승리감에 도취된 분위기다. 바쿠스의 바로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지우며 술잔을 들고 있는 이는 바쿠스의 칭찬이 끝나면 그 용맹했던 사람에게 잔을 권할 준비를 하고 있어 승리를 자축하는 모임이다. 그들이 짓고 있는 미소는 삶에 밀착된 시간, 충만함이 느껴지는 귀중한 순간에서 터져나는 승리의 미소이다. 이렇듯 승리의 미소는 순간에 우러나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여과되지 않은 채 동시에 분출되는 순간의 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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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피드를 통해 표현된 솔직하고 진실한 기쁨의 표현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은 찾아 볼 수 없는 단지 2점의 그림 ‘승리자 큐피드’(1601~ 02)와 ‘성 세례 요한’(1602)에서는 옷을 모두 벗은 남자 어린이들이 미소 짓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승리자 큐피드’는 카라바조의 전체 작품 중 보기 드문 남자의 완전 누드화이다. 어린 소년 큐피드가 날개를 단 채, 사랑의 화살을 쥐고 정면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 어린아이의 성기가 정면으로 완전히 노출되어 있으며 부끄러운 듯이 관자 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을 주문했던 빈센조 주스티니아니 후작은 카라바조가 델 몬데 추기경의 화실에 소속되어 있을 때부터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카라바조의 작품 ‘성 마태와 천사’의 첫 번째 판이 어떤 사유로 인해 인수가 거부되었을 때, 후작은 그 작품을 서슴지 않고 고가로 사들였던 카라바조의 강력한 후원자였으며, 또 당시 로마의 대표적인 예술품 수집가로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 작품 650점을 소장한 것으로도 유명한 예술을 사랑하는 수집가였다. 이렇듯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아는 사이에서 화가와 주문자가 되었기 때문에 ‘승리자 큐피드’에는 주문자의 학문에 대한 관심과 그 박식함을 유감없이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즉 바닥에 놓여있는 악보와 두 개의 악기는 주문자 주스티니아니 후작의 음악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반영되어 있으며,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는 검은색 갑옷은 군사적 용맹성과 지식을, 큐피드의 오른쪽 허벅지 뒤편에 놓여있는 천체 본은 천문학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왕관은 정치적인 탁월한 수완과 영광을, 그리고 바닥에 놓여 있는 기억자형 측량 기구는 주문자의 기하학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각각 표현한 것이다.
화가는 이렇듯 큐피드를 이용해 이 그림의 주문자이며 자기의 강력한 후원자인 주스티니아니 후작의 박식한 지식을 여러 분야의 학문을 정복한 승리자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보는 큐피드의 미소는 이러한 학문들의 지식을 습득한 학문의 정복자로서의 주스티니아니의 기쁨의 미소를 큐피드가 대신 연출하고 있는 것으로 그야말로 승리자의 미소이다.
즉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승리자가 되면 마음에 탄력이 생기고 들뜬 기분에 몸마저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어 얼굴에는 붉은 기가 돌며 입술에는 윤기가 돌아 더욱 부드러워지며 미소가 저절로 새어난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사람에 따라 그 신체적인 반응이나 표정에 차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지닌 욕구, 염원이나 가치관에 따라 차가 생기게 마련이고 또 같은 기쁨이라도 언제나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또 그러한 기쁨을 처음 느낄 때와 자주 느꼈을 경우와는 많은 차가 있게 마련인데, 작품에서는 어린 큐피드를 통해 구김 없고 솔직한 승리감에 도취된 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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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온갖 고비를 넘겨온 인생의 승리자, 그리고 그들의 미소
이제 나이 들은 노인들의 미소를 살펴보기로 한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인생의 온갖 고비를 넘겨온 인생의 승리자이다. 따라서 노인들은 지나간 젊은 날에 대한 향수에 젖을 수는 있으나, 아쉬움에 젖어 불평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에는 과거에 대한 망각이라는 작용과 남아 있는 시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사소한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고 단지 현재의 순간 만에 전념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에 있어서 지금이라는 시간에 있어서 특별한 멋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크라나하(Lucas Cranach 1472~1537)가 그린 ‘노인과 젊은 여인의 사랑’(1520~22)과 ‘할머니와 젊은이의 사랑’(1520~22)이라는 그림이 있다. 할아버지는 젊은 여인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젊음을 산 승리자로서의 미소를 짓고 있으며, 할머니는 젊은이에게 돈을 주고 있어 돈으로나마 젊음을 살 수 있는 승리자로서의 미소를 보이고 있다. 결국 기쁨이 얼굴로 표출될 때는 웃음이나 미소라는 표정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 두 노인의 미소의 공통점은 승리의 미소라기보다는 다행이라는 미소라고 하여야 옳을 것 같다. 즉 이렇게 젊은이와의 사랑을 맺을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기뻐서라기보다는 불가능할 것으로만 여겼던 것이 돈과 물질적인 보상을 주고서라도 가능해졌다는 현실적인 순간에 대한 만족에서 새 나오는 노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미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