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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대화로 '환상작품'을 탄생시킨 화가 오딜롱 르동

화가의 질병이 탄생시킨 명화(23)

  • 입력 2021.11.29 12:40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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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동 작: ‘자화상’ (1880) 파리, 오르세 미술관
르동 작: ‘자화상’ (1880) 파리, 오르세 미술관

[엠디저널] 프랑스의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은 포도의 고장 보르도에서 태어나 곧 외삼촌에게 보내져 어머니의 애정도 모르고 외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는 고독 속에 음악과 시, 철학과 미술을 사랑하는 내성적 성격의 소년으로 자랐다. 이러한 고독한 환경은 일찌감치 그가 내면세계로 여행하는 통로를 제공했다.

18세 때 파리에서 장 레옹 제롬에게 그림을 배우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가 식물학자 알만클라보와 친교를 맺은 그는 현미경을 통한 미생물 세계를 체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상적이며 초자연적인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의 신비와 더불어 문학과 철학에 관하여 많은 일깨움을 받았다. 이어 1863년 동판화가 로돌프 브레댕을 알게 되면서 감화를 받고 극히 환상적인 에칭과 소묘제작을 시작하였다. 

1874년 이후는 거처를 파리에 두고, 앙리 팡탱 라투르와 친교를 맺었다. 그에게서 석판화를 배워, 1879∼1899년 ‘꿈속에서’를 비롯한 13종의 우수한 석판화집을 발표하였다. 작품 경향은 인상파의 외면적 현실묘사에 동조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한 보이는 것의 논리’를 사용하려는 환상적 상징적 경향의 것으로, 일종의 쉬르리얼리즘의 선구적 입장에 서는 것이었다. 

생명의 재생을 회화의 중심 주제로 삼았던 르동은 베일르버드에 있던 메마른 기억이 남아있는 그의 옛집을 팔아버린 것을 계기로 흑백의 터널을 빠져 나와 빛나는 색채를 회복하여 인상주의가 풍미하던 시대에 상상적이고 신비적인 세계를 찾아 나선 고독한 순교자가 되었다. 그 후 정물과 신화적 세계를 통해 자신의 만년을 화려하게 꽃피웠다.

1885년 르동은 위스망스의 소개로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1842~98)와 알게 되었다. 말라르메와 르동의 만남은 그야말로 상징주의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채 몰이해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르동의 회화세계에서의 상징주의가 말라르메라는 좋은 이해자를 얻음으로써 제대로 평가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라르메의 영향을 받은 르동의 작품 활동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즉 1890년경 그가 50세 무렵을 경계로 그전에는 색채를 쓰지 않는 판화와 소묘에 의한 흑백의 표현방법으로 상징주의의 문학에 인스피레이숀을 얻은 환상적이고 신비한 작품을 계속 고집하고 검은 빛깔은 ‘정신의 대리인’이라 했다.

그리하여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눈알, 잘린 목, 여성의 몸에 꼬리를 지닌 사신(死神), 동물과 식물이 합성된 모습 등 화가의 상상력은 검은 단색으로나마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르동의 작품은 일변해 신화나 
역사상 인물의 화려하고 빛나는 색채의 파스텔이나 유채에 의한 색채표현으로 옮겨졌다. 오늘날 친밀화(親密畵)로 불리는 매우 추상적인 회화의 창작에 성공하여 꿈과 현실을 조합한 쉬르리얼리즘을 예고한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러한 환상적인 형태의 창작은 젊어서 고향 보르도의 평탄한 풍경의 하늘에 둥실대는 구름을 관찰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으며 그 환상적인 형태에서 받은 영감이 그의 그림의 원천이 되었다고 하였다.

르동 작: ‘플라워’ (1903) 스위스, 갈렌 큰스트 미술관
르동 작: ‘플라워’ (1903) 스위스, 갈렌 큰스트 미술관

그리하여 만년에는 그림에서 괴기한 것의 모습은 사라지고, 상징의 깊이에 있어서 꽃과 소녀를 주제로 한 것이 두드러졌다. 그의 꽃의 작품 ‘플라워(flower)’ (1903)를 보면 이때까지 보아온 화가들의 꽃과는 전연 다른 형태로서 꽃이라기보다는 새의 날개 같은 모습의 꽃이 가운에 있으며 그 주변에는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빛깔의 꽃들이 더러는 떨어지고 있다. 

화가가 꽃을 이렇게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찬란한 빛의 조화를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식물학자 알만클라보와의 만남에서 르동의 정신면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표현의 방법에 변화가 있었다 해도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깊은 정신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신비나 환상과 같은 요소를 언제나 내포되어 있어 불가사의한 생명력에 넘치는 동물 같이 보이기도 한다.

르동 작: ‘오필리아’ (1900-05) 우든 컬렉션
르동 작: ‘오필리아’ (1900-05) 우든 컬렉션

르동의 작품 ‘오필리아(ophelia)’
(1900-05)는 섹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4막 7장을 소재로 한 것으로 연인 햄릿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함으로서 미쳐버린 오필리아를 주제로 그린 것인데 지금 자살하기 위해 물에 빠졌는데 막 꺾은 듯한 신선한 꽃묶음 하나가 떠올라 이승을 하직하려는 오필리아를 위로하며 마치 꽃들은 이승을 하직하려는 그녀에게 떠나지 말라고 재촉이라도 하는 듯이 찬란한 빛을 내고 있어 삶과 죽음이 갈리는 순간이다. 

꽃과 잎의 모양과 빛깔은 이 세상의 것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찬란하고 아름다워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의 것으로 보인다.

회화에서는 죽음을 의인화(擬人化)하고나 아니면 다른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유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화가는 꽃과 식물을 현존하지 않는 형태와 빛깔로 죽음을 미화한 것으로 보인다.

르동 작: ‘로제와 안제리크’ (1910) 뉴욕, 현대 미술관
르동 작: ‘로제와 안제리크’ (1910) 뉴욕, 현대 미술관

그의 작품 ‘로제와 안제리크(Roger et Angelique)’(1910)도 색채가 빛과 그늘을 통과한 풍부한 상상적 영감이 원천이 된 환상적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은 16세기의 소설가 루도뷔코 아리오스토의 소설 ‘광란의 올란드’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한 것이다. 기사(騎士) 로제는 중국의 왕녀 안제리크의 무서운 운명을 구출하기 위해 검은 황마(荒馬)의 과거를 추궁한다. 좌측에는 용이 보이고 중심부에는 불길한 불빛은 악의를 표현한 것으로 줄거리를 아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처녀만을 겁탈하는 오루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서운 안개가 축소해 표현한 왕녀의 주변에 피어오르고 위에서는 어두운 먹구름이 내려오고 있다. 

인물은 작게 표현하였지만 바위는 거대한 덩어리로 표현해 긴박감을 자아내고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림의 좌측은 갈색으로 그리고 우측은 청색으로 표현하였는데 각각의 빛깔을 묶음을 자세히 보면 두 사람의 얼굴의 환형이 어렴풋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르동 작: ‘바이오레트 하이만의 초상’ (1910) 클리블랜드 미술관
르동 작: ‘바이오레트 하이만의 초상’ (1910) 클리블랜드 미술관

그의 작품 ‘바이오레트 하이만의 초상’ (1910)은 사람의 상상력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림의 모델은 화가의 친구의 조카로 일상적으로 접촉이 많아 그녀의 꿈을 잘 알고 있는 화가는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인물을 우측에 놓고 좌측에는 그녀의 상상을 꽃과 알 수 없는 형태를 환상적인 빛깔로서 그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르동 작: ‘꽃 사이에 잠든 사람’ (1905~1912) Black crayon and watercolor 개인 소장
르동 작: ‘꽃 사이에 잠든 사람’ (1905~1912) Black crayon and watercolor 개인 소장

그의 작품 ‘꽃 사이에 잠든 사람’(1905~1912)은 꽃들에 둘러싸여 잠든 사람의 얼굴이다. 잠자는 사람을 둘러싼 꽃의 빛깔 또한 밝고 화사한 대신 어딘가 핏빛을 연상시킨다. 꽃을 그리면서, 혹은 꽃을 만나면서 죽음과 소멸을 생각하는 것은 예술가로서는 당연할 것이다. 햇빛과 비와 바람이 창조해낸 꽃이라는 아름다운 생명체 속에는 생명력이라는 신비의 힘을 볼 수 있다.

인간 또한 한 송이 꽃과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마치 오늘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행복한 꿈에 빠져 있다. 화가는 자기의 그림에 대해서 “자연은 우리에게 재능을 주고는 그 재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그러한 꿈의 세계에 인도되어 상상력과 놀라움에 고민하건 했고 자발적인 자극과 사고의 말단에 있는 불확실한 상태를 매력적으로 감상자들 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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