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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을 접게 하는 환자들

의사를 겨냥한 소송 계속될 듯… 적절한 법의 조절 꼭 있어야

  • 입력 2021.12.07 11:05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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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한 직장에서 20년간 일하다 보니 삶의 여러 측면을 대한다. 가장 가슴을 적시는 것은 무엇보다도 만남과 떠남이다. 얼마 전에 산부인과 의사 한 명이 비행기 사고로 비명횡사했다. 취미로 조종하던 경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다. 그에게서 산전 관리를 받던 많은 임산부의 마음이 어땠을까? 뭉클해진다. 남편, 또는 아버지를 잃은 가족의 슬픔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정년인 65세를 넘어서도 계속 병원 근무를 하는 파트너 의사들이 많다. 특히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바쁜 과의 의사들 중에서 그러하다. 우리 정신과 의사 한 분도 65세인데 몸과 마음이 여간 건강하지가 않다. 그는 은퇴 후 정신과 전문의가 부족한 지역에 가 환자를 돌보겠다고 한다. 반가운 이야기이다. 은퇴한 다른 의사들이 갑자기 병에 걸리거나 죽음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무수히 보아 왔기에 더욱 그렇다. 간혹은 그들의 배우자들이 먼저 쓰러지는 수도 있었다. 은퇴 직전까지도 젊고 건강한 상태였는데….

많은 무료봉사 클리닉에서 요즘은 자원봉사 의사들을 돌려보낸다는 기사를 최근에 읽었다. 왜냐하면 이 자원봉사 의사들이 ‘의료사고 보험료’를 지불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란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다. 어처구니 없는 미국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의료보험이 없어 자선클리닉에 와야 하는 가난한 환자들이, 무료진료를 받고서도 그 진료소나 의사를 걸어 고소를 하기 때문에, 비싼 ‘의료사고 보험료’를 내야하는 것이다.

정든 고향과 자신의 클리닉을 떠나는 의사들

의료 보험료를 올리는 원인은 환자들이 주장하는 턱없이 비싼 ‘정신적 고통 보상금’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의회에서는 이 정신적 고통 보상금을 25만 달러로 한정하자는 법안을 상정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부결되었고 보험료는 치솟았다. 그래서 이 조항이 없는 주의 의사들은 봇짐을 싸들고, 정든 고향이나 자신의 클리닉을 떠나야 했다. 비싼 의료보험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업이 불가능하니 조기 은퇴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캘리포니아 주는 제한이 돼 있다. 그래서 의사들이 남가주로 오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의사들을 모두 떠나보낸 마을 주민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특히 임신한 산모는 옆 동네나 큰 도시의 산부인과 의사를 찾아다니며 산전 관리를 계속해야 한다. 수 시간에 걸쳐서 큰 도시로 찾아가기도 한다. 의료보험을 들 수 없어 옆의 주로 이사를 간 자신들의 산부인과 의사에게 가기 위해서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병으로 잃어 본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서럽고 가슴 아픈 고통을 생생히 기억한다. 제일 먼저 나의 뇌리를 스친 생각은 ‘행여나 의사나 병원이 잘못해 그의 죽음을 초래한 것은 아닌가?’ 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어제까지도 나의 옆에 있던 사람이 운명을 달리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그의 시신을 데리고 나온 후, 나는 다시는 그 병원 근처를 지날 수가 없었다. 나의 크나큰 분노는 어딘가에 쏟아져야만 했다. 의사의 잘못이 특별히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죽음으로부터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구출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닌가! 내가 ‘그들’ 중의 하나인 의사라는 것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상실에 대한 분노가 있는 한, 늘 의사를 겨냥한 소송은 계속될 것이다. 게다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금은 천정 없이 치솟고 있다. 그래서 은퇴한 의사들이 봉사할 수 있는 자선 기관도 더 이상 은퇴 의사들의 능력을 이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적절한 법의 조절은 꼭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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