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간절한 꽃향기, 치자(梔子) 나무

  • 입력 2021.12.22 12:52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

옥상 문을 열자 작은 정원에 가득한 향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아침이슬이 맺은 도톰한 우윳빛 여섯 꽃잎들이 마치 작은 풍차처럼 돌아갈 듯하다. 중간 크기의 화분에 스무 개도 넘게 치자 꽃이 피어 있다. 아직 피지 않은 연노랑 꽃망울들은 우산처럼 곱게 접혀져 피기를 기다리고 있다. 층층으로 마주난 타원형 초록 잎들도 반짝반짝 빛난다. 저 꽃들에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풍성한 가을을 기다려보는 향기에 취한 초여름 아침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치자를 다른 이름으로 담복(薝蔔)이라 부른다. 일연(一然)스님의 ≪삼국유사≫의 기록에 담복을 심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차자는 우리나라에 이미 1,500년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치자향이 어찌나 고귀했던지 석가모니부처님의 재가제자인 유마힐(Vimalakῑrti)이 주인공인 ≪유마경(維摩經)≫에서도 “담복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오직 담복의 꽃향기만 맡을 수 있고 다른 향기는 맡을 수 없듯이, 이 방에 들어오는 이는 오직 여러 부처님들의 공덕 향만을 맡을 뿐이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상록수인 치자는 중국 남부, 대만, 일본 남부 등에 자생하며 따뜻한 아시아의 온대나 난대지방에 잘 자란다. 우리나라 나무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꽃도 향기롭지만, 붉은 열매나 뿌리까지 약용, 염료, 차 등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조선 초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화훼서(花卉書)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치자의 네 가지 아름다운 점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꽃 색깔이 하얗고 윤택한 점이 첫째요, 꽃향기가 맑고 부드러운 점이 둘째요,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 점이 셋째요, 열매로 노란색을 물들이는 점이 넷째다. 이렇게 향기로고 아름다운 꽃을 당(唐)의 두보(杜甫)는 이렇게 노래하였다. 

치자는 여러 나무에 비하여, 인간 세상에 정말 많지 않다네.

梔子比衆木 人間誠未多

몸에 띤 빛깔은 쓰임새가 있고, 

도의 기는 몸을 조화롭게 한다네.

於身色有用 與道氣相和

붉은빛은 풍상을 겪은 열매에 취하고, 

푸른빛은 비와 이슬 맞은 가지에서 본다네.

紅取風霜實 靑看雨露柯

무정하게 너를 옮겨 심은 뜻은, 

강물에 비친 것을 귀히 여겨서란다.

無情移得汝 貴在映江波    

≪양화소록,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2≫

두보의 이 시를 잘 알고 있었던 조선의 서거정(徐居正, 1420~1488)도 화분에 심어놓은 치자나무를 시에서 ‘향은 참선하는 노승이 실컷 맡았고(香鼻飽參禪味), 명성은 두보의 시에 다 들어 있다네(芳名都入杜陵詩).’라고 읊었다.

예부터 치자 열매는 귀하여 값이 비쌌다고 한다. 송(宋)나라 때 ≪본초도경(本草圖經)≫에는 “9월에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린다. 남방 사람들은 다투어 심고 팔아서 이익을 취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화식전(貨殖傳)에 ‘치자가 천석(千石)’이라 하였는데, 천승(千乘)의 가문에 비교한 것으로 이익이 많다는 뜻”이라 하였다. 옛날에는 치자가 군사물자로도 중요했다. 군량미를 치자 물에 쪄서 말리면 변상(變喪)하지 않고 오래 동안 보관할 수 있어서였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유배지인 다산초당(茶山草堂)의 원래 주인의 손자이자 제자인 윤종억(尹種億)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비가 그다지 천하지 않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며 ‘동백은 기름을 짜내 부인들의 머리를 꾸미는데 쓰이고, 치자는 약에도 넣고 염료로도 쓰이니 아무리 많아도 팔리지 않을 걱정은 없다.’라고 했으니, 치자가 환전식물로도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양화소록,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2≫).

저녁 으스름 속의 치자꽃 모양

아득한 기억 속 안으로

또렷이 또렷이 살아 있는 네 모습

그리고 그 너머로

뒷산마루에 둘이 앉아 바라보던

저물어 가는 고향의 슬프디 슬픈 해안통(海岸通)의

곡마단의 깃발이 보이고 천막이 보이고

그리고 너는 나의, 나는 너의 눈과 눈을

저녁 으스름 속의 치자꽃 모양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이렇게 지켜만 있는가      

<치자 꽃/유치환>

으스름한 저녁이다. 노란빛이 살짝 스며든 도톰한 치자 꽃잎이 활짝 폈다. 그 속에서 풍겨 나오는 그윽한 향기는 아득한 기억을 더듬게 한다. 어릴 적에 보았던 곡마단 깃발처럼 떠오른 너의 모습은 치자 향처럼 오늘도 또렷하다. 아니 또렷해서 슬프기만 한데, 언제까지 너를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가. 이 안타까움을 더 간절하게 하는 건 바로 치자꽃향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사찰이나 고가(古家)에선 흔히 오래된 치자나무를 볼 수 있다. 남해안이나 도서지방이라면 키가 2~3미터 정도까지나 자란다. 그러나 중부지방 이북에는 밖에서 겨울을 날 수 없어 주로 화분에 키워왔다.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며 긴 타원형이고, 표면이 반질반질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고, 초여름에 흰빛으로 피어 짙은 향기를 풍긴다. 매화나 사과처럼 흔히 보는 장미과 꽃들이 대부분 꽃잎이 다섯 장이지만, 치자나무는 꽃잎이 여섯 장이다. 열매는 길이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긴 타원형이고, 세로로 6~7개의 능선 주름이 있다. 가을에 주황색으로 익는다.

치자나무와 비슷하지만 잎과 꽃이 작고 꽃잎이 여러 겹으로 된 것은 ‘꽃치자’다. 꽃치자는 향기가 무척 강하여 가까이에선 숨 막힐 정도이다. 은은한 향을 즐기려면 홑꽃치자를 키우는 편이 좋다. 17세기경부터 치자가 서양에 전해져서 꽃치자 등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되었고, 미국이나 유럽의 화훼시장에서 아주 인기를 얻고 있다한다.

어린 시절 명절 때나 가을 시제(時祭) 때면, 나는 치자열매 사오는 심부름을 자주했다. 할머니는 학교 앞 오일 장터 만물상에서 사온 치자열매를 하루 정도 종지에 불렸다가 쓰셨다. 부엌과 디딜방아 사이의 작은 뒤란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전을 구우셨다. 주로 찹쌀가루, 밀가루, 수수가루에 노란 치자 물을 넣고 반죽하셨다. 때로는 미리 빚어 놓은 반달 모양의 작은 조약 떡과 물에 불려 놓았던 치자 열매를 같이 놓고 기름에 튀기기도 하셨다. 붉은 물을 들이고 싶을 때는 주취 뿌리를 쓰셨다. 나는 지금도 그 주취 나물이 고향마을 어느 산비탈에서 나는지 일고 있다. 노란 치자 물을 들이거나 붉은 주취 물을 들인 전이나 조약 떡은 보기도 좋고 더 고소하였다. 

올해도 내 옥상 텃밭 화분에는 주황색 치자 열매가 스무여 개나 열렸다. 겨울에 얼어 죽지 않게 잘 보관했다가 내년 초여름에도 치자 향을 반갑게 맞이해야겠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