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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음색과 White Christmas

  • 입력 2021.12.24 15:35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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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빙 크로스비가 출연한 1954년 영화 <White Christmas>의 포스터 | 이미지출처: IMDb
빙 크로스비가 출연한 1954년 영화 <White Christmas>의 포스터 | 이미지출처: IMDb

매년 ‘첫눈’이 내리면 아마도 모든 이들이 떠올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과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눈이 올지에 대한 올해 ‘화이트 크리스마스’ 확률을 다룬 기사도 앞다투어 나온다. 기상청이 기록하는 서울의 공식 첫눈은 지난해보다 한달 일찍 찾아왔다. 첫눈을 보기란 사실 어렵다. 지면의 기온이 낮아지고 충분한 습기가 있어야 함박눈의 형태로 내리는데 보통 첫눈이 오는 시기에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흔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 싸락눈과 같은 형태로 모두가 잠든 사이 새벽에 잠시 날린다.

1971년 The Sounds of Christmas의 빙 크로스비
1971년 The Sounds of Christmas의 빙 크로스비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날의 눈은 더 특별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하면 눈 오는 전경 다음으로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몇 년 전 이즈음에 지면을 통해 소개한 빙 크로스비(Bing Crosby)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빙 크로스비 원곡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지금까지 팝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이자 3천만 장이 넘는 레코드 사상 최고 판매기록으로 기네스 북에 등재되었다.

시대를 뛰어넘는 듀엣

2012년에는 독특한 시도로 눈길을 끌은 음원이 있었다. 2000년대 클래식하면서도 따뜻한 로맨틱 보이스로 많은 이들이 추운 겨울에 특히나 찾게 되는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é)와 전설의 로맨티스트 뮤지션인 빙 크로스비의 만남이다. 바로 미국 NBC에서 스페셜로 방송된 두 거장이 함께한 세기의 크리스마스 명곡, ‘White Christmas’ 음원이다. 빙 크로스비의 원곡과 마이클 부블레의 따뜻한 감성의 조합은 겨울 추위를 녹이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콜라보레이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어떻게 1977년 세상을 떠난 빙 크로스비와 1975년에 태어난 마이클 부블레의 듀엣이 가능했을까?

당시 TV 스페셜로 방송되었던 ‘Home for the Holidays’ 프로그램에서의 CGI(컴퓨터 생성 화상, computer-generated imagery)기술 덕분이다. 기존의 빙 크로스비 영상에 마이클 부블레가 구성에 맞게 짧은 대사와 함께 노래를 한 것인데, 원래의 화면은 1971년 ‘The Sounds of Christmas’ 방송에서 그의 와이프인 캐서린과 함께하는 장면에서 화면 분할로 마이클 부블레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마이클 부블레의 크리스마스 공연
마이클 부블레의 크리스마스 공연

클래식한 음색의 바리톤 보이스

무대 위 완벽한 수트 착장과 구두로 크루너 보컬을 들려주는 마이클 부블레는 지난 세기의 음악과 스타일을 가진 가수이기에 넒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크루너(Crooner) 보컬이란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노래부르는 가수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와 냇 킹 콜(Nat King Cole), 팻 분(Pat Boone), 딘 마틴(Dean Martin), 토니 베넷(Tony Bennett) 등이 있다.

크루너는 192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걸쳐 인기를 끌었으며, 스탠다드 팝과 발라드를 오케스트라 또는 빅 밴드(Big Band; 오케스트라 편성을 한 재즈 밴드)의 반주에 맞춰 저음의 음색의 중후한 바리톤 보이스로 노래를 부른 남성 보컬 가수가 대부분이다.

크루너가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던 것은 1942년 빙 크로스비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발표했을 때인데, 이 노래가 공식 발표된 시기는 예상과 달리 여름이었다. 이때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점차 개입했던 시기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매력으로 참전한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인기를 높여갔다.
또한 남편을, 그리고 아들을 먼 전장에 내보낸 여인들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노래에 시름을 달래곤 했다.

여기서 크루닝(Crooning)이란, 음악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테크닉에 더 가깝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노래부르는 것인데 이태리 오페라의 벨 칸토(Bel Canto) 창법에 그 뿌리를 둔다. 1931년 이후 마이크와 증폭기의 출현으로 녹음기술이 발달되며 가능하게 되었고, 크루닝 창법의 인기는 라디오 방송국과 전기 녹음의 등장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을 보면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원래 크루너란 용어는 부정적으로 사용되었기에, 1930년대 러스 콜롬보(Russ Colombo)와 같은 가수들은 이 용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프랭크 시나트라도 인터뷰에서 자신과 빙 크로스비를 크루너로 여기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1954년 이후 로큰롤(rock 'n' roll)의 등장과 더불어 그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전성기의 빙 크로스비가 편안한 바리톤의 달콤한 음색과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인기를 끌었듯 2000년대에 이르러 마이클 부블레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크 시나트라의 뒤를 이은 2000년대 최고의 크루너 보컬리스트로 각광을 받는 마이클 부블레가 고전적인 보컬 스타일을 시도하게 된 것은 그의 할아버지 영향이 크다고 한다. 그를 ‘오 나의 선샤인’이라고 부르며 할아버지가 청한 곡을 불러드리며 고전적인 스타일이 자연스레 자신의 목소리에 입혀진 것이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그 뿌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양분이자 원동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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