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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속성

  • 입력 2022.01.13 12:24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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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마음은 여러 가지 작용을 합니다. 생각, 감정, 인식, 의지, 의식이 전부 마음 작용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 작용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이들의 속성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괴로움과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음 작용들의 속성은 똑같습니다. 전부조건에 따라 떠오르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내용이 다르니까 ‘생각’이라 이름 붙이고 ‘감정’이라 이름 붙이고 ‘의지’라고 이름 붙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마음 작용들 가운데 대표는 생각입니다. 사실 생각만 정확하게 알고 잘 다스려도 정신적 문제가 많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에 대해서 잘 알고 생각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된 다음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의 영향을 받지요. 이미 언급했듯이 생각은 과거나 미래로 가 있는 건데, 과거가 생각난다면 과거에 일어난 일이 한 번 더 내 앞에서 재현되는 것과 마찬가지 영향을 받습니다. 심리의 변화와 뇌의 화학적인 변화로 영향을 받는 겁니다. 저는 여태껏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 가운데 생각이 적은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거의 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생각이 많은 분들이었습니다. 저와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딴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분도 많습니다.

생각을 우리는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는 자기 생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할지 결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각하고 안 하고를 선택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생각이 굉장히 빨리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웬만큼 관찰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생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관찰하지 못합니다. 둘째, 우리가 쓰는 언어 습관 때문입니다. “너도 생각 좀 해봐라.” “네 생각은 어때?” “생각 없이 살면 안 된다.” “생각해서 말해라.” 등 우리는 말을 하면서 생각을 하는 주체를 거의 늘 상정합니다. 이런 언어 습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마지막으로 셋째, 생각을 할 때 보통은 연관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자기가 이 연쇄 속에서 생각을 했다고 느낍니다. 사실은 앞 생각이 선행 조건이 되어 뒤 생각을 부른 건데 말이지요.

눈을 감고 어떤 생각을 만들어서 한번 해보세요. 내가 이 생각을 해야겠다고 의도해서 생각을 해보세요.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수강생) “강의 끝나면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요.” 그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그 생각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습니까, 아니면 그 생각이 그냥 떠올랐습니까? 그 생각이 떠오를지 예측 가능했습니까? (수강생) “예측 못했습니다. 생각을 해보라는 말을 듣고 그 생각이 그냥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생각을 해야겠다고 의도할 수도 없습니다. 생각은 그냥 탁 하고 떠오릅니다. 내일 계획을 잡아볼까 하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뒤 이어 일어난 생각들은 내가 의도한 것입니까? 내일 계획을 잡겠다고 그냥 탁 떠오른 생각이 그 생각들을 불러낸 것이지 내가 그 생각들을 불러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랜 습성에 따라서 자기가 생각을 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생각들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이 자기 안에서 형성된 것입니다. 뇌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가운데 순식간에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알파고가 바둑을 둘 때 다음 수를 순식간에 처리하는것과 비슷합니다. 자기를 꾸준히 잘 관찰하면 이 사실을 보게 됩니다.

부처님도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라’, 이건 관습적으로 한 말이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해보라’고 하는 것이지,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빠알리어로는 etad ahosi, ‘이것이 있었다’ ‘이 생각이 났다’입니다. 영어에서도 It occurred to me, ‘그것이 나에게 떠올랐다’입니다. ‘미국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는 ‘비가 온다(It rains)’, ‘바람이 분다(It blows)’ 하듯이 ‘생각이 난다(It think)’ 라고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네가 생각한다(I think)’ ‘네가 생각한다(You think)’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이 조건에 따라 이뤄지듯이 조건에 따라서 생각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올라오느냐? 우리에게 입력되어 있던 것이 떠오릅니다. ‘입력된 것이 나’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구래서 입력할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피부에 상처가 난 사람이 균을 피해 다니듯 그렇게 조심해야 합니다. 무언가가 들어와서 내게 영향을 주고 내가 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나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불교에서는 존재를 유지하도록 돕는 음식이 네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우리가 입으로 먹는 음식입니다. 둘째는 접촉입니다. 대상에 접촉이 안되면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접촉을 통해서 무언가가 입력됩니다. 누구를 만나고 무언가를 보고 하는 것이 존재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의도입니다. 의도가 있어야 업(業)이 되고 업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식(識)입니다. 식은 마음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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