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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에 나타난 인간의 범죄본능

인간의 본성에는 사냥꾼의 기질이

  • 입력 2022.01.17 11:03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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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 때 우리나라가 주최국으로 화려한 개막식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데다가 경기에 있어서도 4강에 진출하였으니 세계가 놀랐다. 단순히 경기력만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질서 있는 응원에는 우리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지울 수가 없다.

광장과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십만의 붉은 옷을 입은 인파와 붉은악마 응원단의 물결에는 세계가 다시 한번 놀랐다. 그 응원단 가운데는 평소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던 젊은 여성이 상당수 끼어 있었으며 늙은 노부부가 손을 마주잡고 대열에 합류해 “대한민국 * * * * *”을 젊은이들에게 질세라 하고 소리 높이 외치는 데는 감격해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와 같은 형식의 응원은 인류사상 처음 보는 현상일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느끼는 바가 있어 자진해서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무리를 지어서 남녀노소가 한결같은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훈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인데 이를 놀랍게도 꺼리낌 없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 각자의 몸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이렇게 자유분방하면서도 활발한 정열과 흩어짐이 없는 일사불란한 단결력,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은 분명 우리 선조들이 사냥할 때에 지녔던 사냥꾼의 기질이 유전자에 배어들어 그것이 우리에게 물려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 쾌(快)의 형태로 입력된 사냥꾼의 행동원리는 수렵 시에 활발했던 활동성, 이동성, 정열과 자유분방한 그리고 생명에 위험이 없을 때에는 허심탄회하게 쉬는 것을 즐기던 쾌락원리가 수렵과는 거리가 먼 후손들의 유전자에도 계승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인류는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사유하기전의 수백만 년 동안, 짐승을 사냥하거나 과일을 따먹고 살았다. 즉 인류역사의 대부분이 수렵시대가 차지하기 때문에 대상 동물도 다양하고 그 방법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수렵시대의 초기의 것으로 알려진 북경의 한 동굴에서 호랑이, 곰, 이리 따위의 맹수의 뼈가 나와, 큰 맹수도 잡았음을 알려주는데 이때에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짐승을 절벽으로 몰아 떨어뜨려서 잡는 방법을 썼을 것을 의미하는데 붉은 옷으로 무리지어 응원하는 모습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었다.

활, 창 작살 따위의 연장은 전기 구석기에서 중기 구석기 시대에 들어와 널리 사용된 것으로, 이 시기에 해당되는 서유럽의 한 동굴에서는 맘모스, 순록 따위의 대형 동물의 뼈가 나오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한곳에서 정착하여 생활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동굴에서는 풍족한 사냥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가 담긴 그림과 조각이 나오기도 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즐기는 많은 놀이와 운동경기는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했던 사냥을 상징화한 것들이 많다. 대부분의 스포츠, 특히 구기(球技)는 계획수렵, 협동수렵에서 행하던 추적, 노획이라는 사냥적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고 있으며 과거 우리 선조들이 맹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각자 역할을 나누어 맞고, 협동해서 사냥감을 탐색하고 추적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인기 스포츠는 대개 팀을 이룬 집단경기이고 농구나 축구의 골대처럼 상징적인 조준물이 있으며, 그리고 치밀한 작전을 세우고 협동을 통해 승리를 위해 돌진하는 것은 집단사냥을 의미 한다.

티치아노 작: '악타이온의 죽음‘ 1562, 런던, 국립 미술관
티치아노 작: '악타이온의 죽음‘ 1562, 런던, 국립 미술관

희랍 신화에도 사냥의 신이 나오는데 아폴론의 쌍둥이 자매로서 화났을 때의 혈기는 아폴론 못지않은 아르테미스(Artemis)가 사냥의 여신이다. 여신이 사냥하러 나왔다가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목욕을 하게 되었는데, 그 목욕하는 모습을 엿 보게 된 악타이온이라는 젊은 남자를 괘씸하게 여겨 사슴으로 돌변하게 하였다. 마침 악타이온이 데리고 왔던 사냥개가 주인의 변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에게 덤벼들었고 때를 놓칠세라하고 아르테미스 여신은 활을 당겼다.

왜 이렇게 모욕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만으로 죽이기까지 하는가 하면 아르테미스는 처녀신이다. 원래 처녀라는 말은 누구한데도 지배되지 않는 여성이라는 의미로서 여신은 남자의 접근을 싫어하며 남자를 가까이하지 않고 님프들과 숲속에서 생활하며 아르테미스나 여성들과 우정을 나누며, 많은 여성을 강간에서 구출하고 출산을 도와주는 여신이기도하다. 그래서 안산(安産)을 위해 쓰는 약초를 아르테미시아라고 여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즉 처녀신이기 때문에 외간남자에게 자기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조차도 그대로 넘길 수 없어 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이탈리아의 화가 티치아노(Vecellio Tiziano 1490-1576)가 ‘악타이온의 죽음’(1562)이라는 주제의 그림으로 표현하였는데 의도하지 않았던 일로 개죽음을 당하게 된 악타이온은 여신의 저주가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하고, 아르테미스 여신은 사냥의 여신답게 화를 쏘고 있고, 사슴으로 변해가는 악타이온은 달려든 개들 한데 밀려 넘어지고 있다.

작자 불명: ‘아르미테스 여신의 조각상’
작자 불명: ‘아르미테스 여신의 조각상’

일상적인 일에는 인정이 넘치고 매사에 관대하던 여신이 일단 활을 당기며 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며 투쟁적인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사냥꾼의 본질이어서 살생과 연결되며 또 일단 관역을 노렸으며 끈질기고 집요하게 이를 추적하는 것이 그 본성이기도한 것이다.

이러한 사냥꾼의 본성과 기질이 현대식 스포츠 특히 구기나 투기에 잘 나타나는 것으로 이러한 경기에서 사냥꾼의 근성을 발휘하는 선수가 우수선수로서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냥꾼의 특질이 좋은 방향으로 나타나면 영웅이 되지만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나타나면 범죄가 된다.

사람이 범죄 특히 포악한 범죄를 하게 되는 것은 자기가 사회에서 소외됨을 느낄 때 무력해지고, 인생의 불공평한 파도가 계속 밀려닥치면 패배를 의식하게 되어 결국 인간이 지닌 이성을 마비시켜 포악성이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는 잔인성과 억제성의 서로 길항하는 요소를 지니는 소위‘인간존재의 미지의 형’으로 있던 기질이 자연의 움직임에 순응해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잔인성은 억제되나 반대로 환경이 나빠지면 잔인성을 억제할 수 없어 범죄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작자 불명: ‘맨손으로 사자를 사냥하는 헤라클레스’
작자 불명: ‘맨손으로 사자를 사냥하는 헤라클레스’
반디넬리 작: ‘헤라클레스와 카쿠스’1534, 피렌체, 시노리아
반디넬리 작: ‘헤라클레스와 카쿠스’1534, 피렌체, 시노리아

조각 작품 가운데 헤라클레스(Heracles)가 맨손으로 사자와 싸워서 때려잡는 것이 있는가 하면 카쿠스(Cacus)를 죽이는 즉 사냥꾼의 특질이 사람으로 발현되어 사람이 사람을 때려죽이는 장면을 조각한 반디넬리(Baccio Bandinelli)의 작품 ‘헤라클레스와 카쿠스’(1534)가 있다. 카쿠스는 엄청난 거인으로 동굴에 살면서 주위에 있는 나라들을 약탈하고 있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가 소 떼를 몰고 지나다가 잠시 쉬며 잠든 사이에 카쿠스는 헤라클레스의 소 몇 마리를 훔쳤다. 그리고는 소의 발자국을 따라 추적해 오지 못하도록 소들을 잡고 뒤로 끌고 갔다. 그래서 소들의 발자국을 보건데 소가 반데 방향으로 간 것처럼 보였다. 헤라클레스는 이 계략에 속아 소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도 나머지 소들을 몰고 도난당한 소들이 숨겨져 있는 동굴을 지나갈 때 동굴 안의 소들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해 그것들을 찾았다. 그래서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동물 사냥하듯이 카쿠스를 때려잡아 살해한 것이다.

사람은 같은 사람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리고는 그 범죄를 증명하고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애쓰는 달리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선조들의 사냥꾼 기질이 좋게 발현되면 현대사회에서는 영웅이 되지만 그것이 나쁘게 발현되면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허기야 성공도 실패도 자유의 요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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