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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 생각하는 버릇

  • 입력 2022.03.15 14:17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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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어느 한인 사회학자는 한국 이민자들의 주루 사회 적응형태를 ‘짜집기’ 문화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도 본래의 사고방식은 그래도 있고, 가끔 필요에 의해 서구식 문화를 짜집기해 붙여 산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이 사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내가 몸 넘고 있는 정신과 분야인 듯하다. ‘정신병에 걸리면 집안의 수치이니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매일 올바로 살고 마음이 강건한 사람은 정신병에 걸릴 수 없다.’ ‘제 자식을 제일 잘 아는 것은 부모이므로 부모 마음대로 키우는게 좋다.’ ‘여편네와 북어는 자주 두드려야 제 맛이 난다.’

제법 미국의 법을 아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태도가 바뀐 듯하지만 (짜집기 현상)속마음은 여전하다. 또 한가지 짜집기 현상은 남을 의심하는 태도다. 이 때문에 각종 소송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어느 일간지 독자의 인생사 질문에 대한 답을 지면으로 한 적이 있었다. 한 중년 여성이 5세 연하의 남성과 결혼을 해도 괜찮겠느냐는 심각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그녀에게 성의를 다해 답변했다.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나열하면서∙∙∙.

그런데 이게 웬걸! 다섯 명의 독자에게서 온 응답은 내 답변에 대한 옳고 그름이나 자신들의 건건한 비평이 아니었다. 하나 같이 ‘왜 나의 얘기를 썼느냐?’ 라는 거였다. 이 다섯 사람이 모두 나와는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얘기(?)가 행여나 새어 나갈 것을 우려하는 마음 때문에 이 사람들은 문제해결이나 새로운 각도의 시각 등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문제 때문에 정말 고민하고 있을 다른 독자에 대한 염려는 별로 없는 듯했다.

이 짜집기 된 사고방식 때문에 화(?)를 당한 적이 또 한번 있었다. ‘주의 산만증’이 있는 어느 소녀의 얘기를 상담한 후였다. 모든 어린이의 이름이 가명이고 가능하면 나이나 성별도 바꿔 시재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젊은 어머니가 ‘우리 애 얘기를 썼다.’라며 친척들과 함께 편집실로 진입해 난동을 부린 것이다. 위협과 함께.

미국 공립학교 어린이 5~7%에서 발견되는 ‘주의 산만증’은 대뇌질환이다. 부모의 잘못도 아이의 탓도 아니다. 단지 대뇌의 전두엽에서 분비되는 뇌전파 물질의 불균형 현상일 뿐이다. 적절한 상담과 교육 그리고 약물요법으로 탁월한 효과를 보는 병이다.

그야말로 부모가 알면 아이들에게 힘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질병이다. 우리 이민 가정에도 이 증상으로 고생하던 아이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아주 좋아졌다. 서로가 알리고 모든 아이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아주 좋아졌다. 사로가 알리고 모든 아이들이 도움의 기회를 받아야만 할 질병이다.

그런데도 ‘내 아이의 얘기를 썼다’고 화를 낸다면 정작 편지를 보내고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독자에 대한 고려는 눈곱만큼도 없다는 얘기일까?

‘주의 산만증’만이 아니라 많은 정신병이 대뇌의 질병 때문임을 현대과학은 밝혀내고 있다. 대뇌는 몸의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장기이다. 췌장에 이상이 있으면 당뇨병에 걸린다. 인슐린이라는 화학물질의 이상 때문이다. 피부가 예민해지면 각종 습진, 여드름, 뾰루지, 아토피성 질환 등 수십가지 병이 온다.

이것들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모두 병이라고 믿는다. 당뇨병은 핏속과 오줌 속의 설탕의 양을잴 수 있기 때문에 쉽게 믿을 수 있다.

그러나 뇌의 병은 쉽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행동이 어수선하고, 감정에 기복이 오고, 주의 사람들을 걱정시킨다. 눈에 보이는 것 만을 믿는 것은 어린아이들이다. 그들은 아직 두뇌가 미숙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민 와 살고 잇는 성숙한 한국어른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대뇌의 질병과 부끄러워하지 말고 터놓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성숙함을 길러야겠다. 필요하다면 새 옷을 입을 수 있는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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