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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와 ‘무용(無用)의 용(用)’
  •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 승인 2022.03.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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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주춧돌만 남은 절터에 겨울이 찾아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도무지 굴참나무 잎들은 떨어질 줄 모르고 붙어있다. 아름드리 굴참나무 아래에도 발목이 묻히게 누런 잎들이 쌓여 따뜻하게 땅을 덮고 있다. 도대체 굴참나무 잎들은 왜 그렇게 많으며, 덮어주어야 할 존재들이 그렇게 많단 말인가. 발길로 참나무 낙엽들을 헤집자 꿀밤들이 소복이 쌓여 있다. 하나 같이 모두 토실토실하다. 후세를 남기기 위해서는 이렇게 많은 도토리들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애초부터 다람쥐나 청설모에게 보시(普施)하려고 그리 많이 달렸음이 틀림없다.

참나무란 한 종류의 나무를 말하는 게 아니고, 이에 속하는 6가지를 말하며 흔히 참나무 6형제라고도 한다.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를 말한다. 이들을 다시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떡갈나무와 신갈나무, 갈참나무와 졸참나무 등 3무리로 나누기도 한다. 이들 나무는 모두 낙엽활엽수인데, 상록수인 가시나무 3종류를 참나무 종류에 넣기도 한다. 이 6종을 모두 참나무라 하고 그 열매를 모두 도토리라 부른다.

참나무는 우리나라 숲 활엽수의 대표 수종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자라며 키 20~30미터, 지름이 두세 아름까지 클 수 있는 큰 나무로, 목질이 단단하면서 질기고 쉽게 썩지 않아 선사시대부터 선조들이 널리 쓰던 나무였다. 건축재로서 가야고분이나 낙랑고분에서부터 해인사 대장경판전의 기둥으로 쓰였고, 선박재로로도 널리 쓰였다. 그래서 참나무는 ‘진목(眞木)’이라 하며 나무들 중에는 가장 재질이 좋고 진짜 나무란 뜻으로 ‘참’나무라 했다.

참나무 말고도 우리 주변에는 ‘참’이란 머리말이 들어간 이름들이 많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없이 많을 것 같았는데, 참꽃, 참매, 참새, 참나물, 참깨 등 막상 예를 들어보면 그리 많지도 않다. ‘참’이란 가짜가 아니고 진짜라는 의미다. 그런데 ‘참’이 접두어로 쓰일 경우 희귀하지 않고 우리기도 주변에 흔히 있지만, 너무 흔하니 그 소중함을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 땅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익숙하고도 아주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처럼 참으로 소중한 참나무는 우수한 목재일 뿐만 아니라 풍성한 열매로 소중한 식량을 공급해주기도 한다. 요즘은 묵으로 즐겨 먹지만, 정사(正史) 기록에 임금이 직접 시식할 정도로 도토리는 구황작물로 귀중하게 여겼다. 흉년이 들수록 도토리가 더 많이 달리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 참나무 종류의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시기는 봄 가뭄이 오기 쉬운 5월경이다. 햇빛이 쨍쨍한 맑은 날이 계속되면 꽃가루가 쉽게 날아다녀 수정이 잘되어 가을에 ‘도토리 풍년’이 온다. 반대로 비가 자주 오면 농사는 풍년이지만 참나무 꽃가루는 암꽃을 찾기 힘들어 도토리는 흉년일 수밖에 없다. 자연의 조화는 이렇게 신비롭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도 『총. 균. 쇠』에서 인류의 식량문제를 논하며 참나무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밤나무는 싹이 튼 지 3년 만에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참나무는 늦어서 적어도 10년 이상이 걸린다. 유라시아대륙에 널리 분포하는 참나무가 도토리를 밤나무처럼 일찍 생산할 수 있었다면 인류는 참나무의 품종개량에 나섰을 터이다. 생산량이 풍성한 도토리의 기장 큰 단점은 많은 탄닌산을 포함하고 있는 점이다. 이 탄닌산은 심한 변비를 일으키기에 인류는, 품종개량에 많은 노력을 기우렸으나 아직까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찍이 장자(莊子)도 『장자』 내편에서 상수리나무(櫟)에 빗대어, 그의 핵심사상인 ‘무용(無用)의 용(用)’을 설명하였다. 전설적인 목수인 장석(匠石)이 제(齊)나라로 가다가 곡원(曲轅)에 이르러 그곳 토지신을 모신 사당(祠堂)에서 상수리나무를 보았다. 그 크기는 수 천 마리 소를 가릴 정도였으며, 굵기는 백 아름이나 되고,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이여, 여든 자(尺) 쯤 되는 데서 가지가 나와 있었다. 그 가지도 배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것들이 수십 개나 되었다. 구경꾼들이 장터처럼 모여 있었으나 장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쳐 버렸다.

제자들이 장석에게 물었다.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후로 이처럼 훌륭한 재목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버리시니 어찌된 일입니까?”하니 이에 장석이 대답했다. “그런 소리 말게. 그건 쓸모없는 나무야. 그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으며, 기물(器物)을 만들면 곧 망가지지.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긴다. 그러니 저건 재목이 못되는 나무야. 아무 소용도 없으니까 저렇게 오래 살 수 있지.”

장석의 꿈에 그 나무가 나타났다. “너는 나를 무엇에 비교하려 하느냐? 너는 나를 쓸모 있는 나무에 비교하려는 거냐? 대체 아가위, 배, 귤, 유자 따위 열매 종류는 그 열매가 익으면 잡아 뜯기고, 뜯기면 부러진다. 이는 그 초목에 맛있는 열매를 맺는 능력 때문에 제 삶이 괴로운 셈이다. 그래서 천명(天命)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죽게 된다. 즉 스스로 세속의 타격을 받는 자이다. 세상의 사물이란 다 이와 같다.”

“또한 나는 쓸모 있는 데가 없기를 오랫동안 바라왔다. 지금까지 여러 번 죽을 뻔했으나 오늘 ‘그대가 쓸모없다고 했기 때문에’ 비로소 뜻을 이루어, ‘그 쓸모없음’을 내 큰 쓸모로 삼기로 했다. 가령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토록 커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너도 나도 다 같은 하찮은 것(物)이다. 그대 같이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쓸모없는 인간이 산목(散木, 쓸모 있는 나무, 쓸모 있는 사람을 散人이라 하는 말에 비유하여)을 알겠는가.”

장석이 꿈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한 제자가 “그토록 빨리 쓸모없게 되고 싶었다면 왜 사당나무는 되었을까요?”하고 물었다. 이에 장석은 “잠자코 있게. 저 상수리나무도 겨우 사당에 의지해 신목이 되어 있을 뿐이야. 자기를 이해 못하는 자들이 헐뜯는 게 귀찮다고 생각해서지. 사당나무가 안 되었다면 아마 벌채 당했을 거야. 또한 저 나무의 보전책은 세상의 것과 다른 거야. 사당나무가 되었다고 저 나무를 기린다면 당치 않은 짓이야.”

참나무 6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상수리나무는 잎이 좁고 긴 타원형이며, 가장자리 톱니 끝에 갈색의 짧은 침이 있고 잎 뒷면이 녹색이다. 굴참나무는 상수리나무와 잎 모양은 거의 같으나 잎 뒷면이 희끗희끗한 회백색이고 코르크가 두껍다. 졸참나무는 잎이 참나무 종류 중 가장 작으며, 가장자리에 안으로 휘는 갈고리 모양의 톱니가 있다. 갈참나무는 잎이 크며 잎자루가 있고, 가장자리가 물결모양이거나 약간 뾰족하다.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는 잎이 크고 잎자루가 거의 없으며, 잎의 밑 모양이 사람의 귓밥처럼 생겼다. 떡갈나무는 잎이 특히 크고 두꺼우며 잎 뒷면에 갈색 털이 있고, 신갈나무는 잎에 갈색 털이 없고 얇다. 6종마다 도토리의 모양이나 열매의 깍지 모양도 서로 다르다. 이 6종간에서 자연교배가 이루어져 신품종들이 태어나고 있다한다.

어릴 적 가을이면 시골집 가까이에 지천으로 떨어지는 잘 익은 굴참나무나 상수리나무 도토리로 팽이를 만들어 놀았다. 높은 산에 올라가면 가늘고 긴 갈참나무나 졸참나무 도토리를 주어 할머님께 드렸다. 이 도토리는 가루가 더 많이 나오고 묵이 더 찰지고 맛있다고 하셨다. 신갈나무 잎은 짚신 바닥에 깔개로 쓰면 적당해서 신갈나무라 하고, 떡갈나무는 잎이 넓어 떡을 찔 때 채반 위에 놓고 찌거나 떡을 쌀 때 쓰기에 떡갈나무라 한다.

아파트 산책로 끝에 참나무공원이 있다.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많은데 밑둥치에 오래 동안 치료 중인 상처들이 있다. 아마도 도토리를 털기 위해 때려서 난 상처이리라. 여름이면 이 상처에 풍뎅이, 집게벌레, 하늘소 무리들이 진액을 빨아먹느라 우글거린다. 매미, 소쩍새, 솔부엉이, 까치, 까마귀 등 새들의 보금자리다. 커다란 참나무들은 자체로 한 마을이다.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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