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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에 나타난 인간의 범죄본능(3)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의 살인

  • 입력 2022.03.18 14:11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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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한 나라의 통치자이며 군의 통수자인 기혼 남자가 유부녀를 탐내 그 남편인 군인을 최전방의 위험지대에 보내 죽음으로 모라 넣은 사건이 있었다. 결국 자기가 직접 손을 대서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살의가 있었던 것은 쉬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법률용어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 한다. 즉 어떤 행위의 결과로서 사람이 다치고나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런 결과가 와도 괜치 않다고 용인하는 점에 고의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던 그 유명한 다윗(David) 왕이다. 그는 원래 양치기 이었으나 그 용기, 재능, 하프의 명연주자로 또 수많은 전과를 올려 기원전 10세기의 이스라엘 왕 사울의 눈에 들어 발탁되었다가 사울 왕이 사망한 후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을 통일한 다윗 왕은 언변도 좋고 생기기도 미켈란젤로(Buonarroti Michelangelo 1475-1564)가 재작한‘다윗’(1501-04)의 조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남형으로 잘생긴 걸출한 인물이었다. 반면 쾌락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야비한 면이 있었다. 

미켈란젤로 작: ‘다윗’조각 (1501-04),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미켈란젤로 작: ‘다윗’조각 (1501-04),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어느 날 저녁 다윗은 더운 여름에 유태인들이 하는 것처럼 궁궐 옥상에서 바람을 쐬다가 멀리서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는데 고만 그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 버렸다. 그는 곧 그녀에 대해서 수소문해 본 결과 그녀의 이름은 바쎄바(Bathsheba)라는 남편이 있는 여인으로 그 남편 우리아(Uriah)는 군인으로 나가 지금은 집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을 보내 그녀를 데려오게 하여 정을 통하게 되었으며 머지않아 그녀를 임신한 사실을 다윗에게 알렸다.

궁리 끝에 다윗은 우리아에 대해서 알아본즉 그는 아브넬을 죽이고도 처벌을 받지 낳았던 장수 요압의 부하라는 것을 알게 되어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아에게 휴가를 주어 궁궐로 보내도록 지시 하였다. 왕의 지시대고 우리아는 궁궐에 도착하였다.

왕은 우리아를 환대하고 전선의 사정을 묻고 저녁에는 만반진찬을 대접하고 선물까지 주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 쉬도록 하였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궁궐에서 다른 병사들과 같이 잤다. 이상하게 여긴 왕은 우리아에게 왜 집에 돌아가지 않았는가를 묻자 그는 “지금 동료 병사와 상관인 요압은 벌판에 머물며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는데 어찌 제가 집에 돌아가 먹고 자며 마느라와 같이 지낼 수 있겠음니까? 저는 그리 할 수는 없음이다.”라고 대답하자 다윗은 자기의 계략이 빗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즉 우리아를 일선에서 불어드린 것은 집에 보내서 부인과 같이 지나게 하여 임신 중인 애를 우리아의 애로 인식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우리아가 집에 가지 않고 궁궐에 머물고 있으니 난처하게 되었다. 이렇듯 다윗은 바쎄바가 임신한 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1669)가 그린 ‘다윗과 우리아’(1665)는 다윗의 명령으로 궁궐에 온 우리아가 왕과 만나는 장명을 그린 것이다. 그림이 약간 어두워 인물들을 확대해 보면 왕의 표정은 한 곳을 주시하면서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데 비해 부하 우리아는 눈을 밑으로 깔고 궁궐에 들어오게 된 것만으로도 황성하며 입술을 굳게 모우고 있는 것은 어떤 어려운 명령이라도 어김없이 따르겠다는 굳은 의지가 표현되어 있다.

렘브란트 작: ‘다윗과 우리아’ 1665, 성 페테스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렘브란트 작: ‘다윗과 우리아’ 1665, 성 페테스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우리아가 궁궐에서 일선으로 돌아가는 날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 우리아로 하여금 전사도록 하였다. 실은 그 편지에는 우리아를 위험한 임무를 주어 전사하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림 2의 다윗 부분 확대
그림 2의 다윗 부분 확대

요압은 기회를 보아 오던 중에 적정 탐색이라는 면목으로 정찰대를 조직하는데 우리아를 정찰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아는 충성을 맹서하면서 부하들을 이끌고 적진 깊숙이 잠복해 들어갔는데 웬일인지 부하들은 따르지 않아 결국 우리아는 적에게 잡혀 죽게 되었다. 이것은 출동 전에 요압이 병사들에게 사전에 그렇게 할 것을 주지 시켰기 때문이며 이러한 것은 결국 다윗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그림 2의 우리아 부문 확대
그림 2의 우리아 부문 확대

우리아가 전사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자 요압은 이를 다윗에게 보고하는 전령을 보냈다. 그제서야 안심한 다윗은 바쎄바에게 사람을 보내 우리아가 전사하였으니 입궐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바쎄바가 입궐하기위해 몸치장을 하는 장면을 상상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들은 많은데 이탈리아의 화가 세바스티아노 리치(Sebastiano Ricci 1659-1734)가 그린 ‘바쎄바의 목욕’(1725)이 라는 그림이 앞으로 설명하려는 줄거리에 가장 적합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된다.

세바스티아노 리치 작: ‘바쎄바의 목욕’1725, 베를린, 달렘 미술관
세바스티아노 리치 작: ‘바쎄바의 목욕’1725, 베를린, 달렘 미술관

화가는 다윗 왕의 옳지 못한 행동에는 관계하지 않고 바쎄바의 아름답고 맵시 있는 몸매를 재현하는데 관심을 쏟은 것 같다. 시중드는 여인이 목욕물의 온도를 가늠하며 탕 속에 뿌릴 장미꽃을 준비하는 동안, 용머리가 토해내는 세찬 물줄기를 응시하는 바쎄바의 얼굴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 달아오르고 있어 남편을 잃은 서러움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오른쪽 귀퉁이의 미소년은 거울을 들었다. 알몸의 여인이 들어다보는 거울은 향락과 허영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는 자책과 반성의 의도도 없지 않다. 앞에 놓인 거울을 들어다보는 순간 자신의 등 뒤에 펼쳐지고 있는 과거의 풍경을 함께 보기 때문이다. 한 점의 그림 안에 상반된 이중적 교훈을 담은 것으로 화가는 다윗 왕도 잘못이지만 바쎄바의 행실도 나쁘다는 것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다윗 왕이 파견한 사령은 그림 왼쪽 뒤편에 숨어 있는데 오른손에 연모의 사연을 담은 쪽지를 들고 있는 것으로 이 그림에 펼쳐지고 있는 요란스러운 몸치장의 광경 또한 다윗 왕에 뜻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하기야 이 당시는 남편이 전사하여 과부가 된 전쟁미망인을 돌보는 것은 하나의 미덕으로 여겼으며 또 일부다처가 사회의 한 제도로 용인되던 시대이기 때문에 다윗이 바쎄바를 떳떳하게 마지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렇게 해서 바쎄바는 다윗의 부인으로 왕비가 되었으며 아들을 낳았다.

결국 다윗은 바쎄바라는 미녀를 손에 넣기 위해 이성을 잃고 그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바쎄바라는 여인을 진정 사랑해서 취한 행동인가 하면 그렇지 않고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을 단 한번 보고 반했다는 것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형을 사랑한 것이며 그녀의 인간 자체를 사랑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즉 다윗은 자신의 정욕과 사랑을 착각하여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아름다움 추구에 혈안이 되면 이상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그 이면의 심리를 분석한 한 평론에 의하면 의존, 투영, 자기표현의 대리 등의 심리적 요인이 포함되기 때문이라는 심리분석으로 이는 마치 고급 보석이나 명품을 수집하기 위해 죄악을 범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다윗과 바쎄바 사건을 살피면서 우려되는 것은 요새 우리 사회에도 만연되고 있는 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풍조로의 꽃미남, 얼짱, 몸짱 등의 용어의 탄생과 더불어 이를 위해서 온갖 희생을 무릅쓰는 폐단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정욕과 사랑을 혼동시킬 우려마저 낳게 한다.

다윗이 직접 자기 손을 댄 것은 아니지만 우리아를 전투를 빙자해서 죽게 한 것은 미필적 고의가 내포된 것이며 이것이 인류사상 첫 번째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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