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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 입력 2022.03.18 14:19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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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 내부
베네치아 성 마르코 대성당 내부
성 마르코 대성당 내부2
성 마르코 대성당 내부2

세계 시민의 건강이 위협받는 시기가 절정에 달하고 있는 이 시기에, 또 한편에서는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다 소통이 막히고 더 큰 소리를 내는 모습들이 팽배해지고 있다. 극한으로 치닫는 혼돈의 사회에서 깊은 상처를 받는 것은 평범한 이들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음악일 것이다.

비발디의 모테트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모테트,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Nulla in mundo pax sincera, Motet RV630)’는 제목에서부터 혼란의 시기, 순수하고 진실한 평화를 추구하는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모테트는 본래 카톨릭 교회 음악으로 종교음악에서 시작되어 변형되고 진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양식 중 하나이다. 모테트는 중세 유럽에서 기원한 다성음악 양식으로 서양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라틴어의 movere(to move, 움직이다) 또는 프랑스어 mot(word, 단어)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종교음악과 세속음악 영역에서 작곡되었다. 바로크 시대를 거쳐 고전파 시기까지 작곡되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이루어져 이후 대위법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18세기 이탈리아에서 모테트는 비종교적인 라틴 시구에 종교적인 성악곡의 구성이었다. 비종교적인 가사가 쓰였기에 교단에서는 예배나 미사에서 모테트의 사용을 제한하기도 했지만, 주로 모테트는 예배 순서 중 헌금 때 연주되기도 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 외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 외부

17세기 중엽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생의 비발디의 집안은 음악의 3대 명문가 중 하나로 아버지는 성 마르코 대성당(Saint Mark's Basilica)의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아들인 비발디와 함께 같은 교회에서 봉사했다. 이 영향으로 비발디는 가극과 모테트와 같은 많은 종교곡을 작곡한 바 있다. 9세기에 세워진 비잔틴 양식의 대표 건축물인 성 마르코 대성당은 마르코(마가) 복음서를 쓴 성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868년 처음 건축됐다가 화재로 소실된 뒤 1063년 재건축되었다. 또한 입구 벽화들 위쪽 중앙에는 나폴레옹 전리품으로 프랑스 파리에 가 있는 것을 되찾아 더욱 유명해진 네 마리의 청동마상이 있다. 베네치아 수호신이라 하는 날개 달린 황금사자상과 함께 이 대성당의 상징물로, 베니스 영화제의 최고상이 ‘황금사자상’인 이유이다..

힘찬 날갯짓, 샤인

또한 이 곡은 1996년에 제작된 영화 '샤인'에 삽입되어 멜로디가 익숙하다. 영화의 후반부에 극중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David Helfgott)이 트램펄린 위에서 이어폰을 꽂고 자유롭게 뛰어오르는 장면에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었다. 극중에서 어려운 시기를 겪은 후 다시 세상과 접촉하고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그의 날갯짓에 음악이 그 힘을 더해주면서, 인물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하늘 위로 오르내리는 장면으로 상징화되었다. ‘아픔이 없다면, 세상엔 참 평화 없어라...’라는 가사는 그의 삶 속 아픔이 씻겨지는 느낌을 들게 했다.

험난하지만 열정적인 그의 일생과 참 예술혼을 보여주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삶이 비범하게 표현되었지만 영화의 후반부에는 평화로움을 선사한다. 우여곡절 이후에 찾아온 고요함은 혼돈 속에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보아야할 목표점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스타일인 이 곡은 솔로 소프라노와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그리고 바소 콘티누오(첼로와 건반악기, 비발디의 경우 오르간을 자주 사용했다)으로 구성된다. 곡의 평온한 분위기는 대지의 모든 생명체를 깨우는 듯한 바이올린의 선율과 구름을 연상시키는 소프라노 성부가 이끌어간다.

아리아 파트의 첫부분 가사를 보면, 'Nulla in mundo pax sincera sine felle; pura et vera, dulcis Jesu, est in te(이 세상에 고통 없는 참 평화가 없어라. 순수하고 진실하고 평화롭고 다정하신 주님이 네 안에 있으니)'와 같다. 작자 미상의 라틴어 시구를 가사로 하는데, 18세기 당시도 세상의 흐름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추측해본다.

 가장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음반은 1999년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Emma Kirkby)와 지휘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Christopher Hogwood)가 이끈 Academy of Ancient Music의 연주이다.

억눌린 영혼의 상처로 현실을 거부하게 되는 이 시기에 비로소 평안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음악을 통해 자유를 찾고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세상의 모든 아픔, 상한 영혼이 치유되기를 바라며 참 평화가 우리를 구원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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