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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무시하는 사춘기 자녀들

  • 입력 2022.04.08 17:00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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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아이를 기르면서 온갖 서러움(?)을 많이 느꼈었다. 첫째 딸에게서 영어 발음 교정을 당하면서 시작됐다. 필름(Film)이라는 말은 그래서 지금도 내 입밖에 내는 적이 없다. 하도 수정을 당했었기에∙∙∙. 칼슘(Calcium)이라는 말도 내 사전에는 없다. 끔찍이도 수정을 받았었으니∙∙∙.

11살짜리 딸 아니는 아마 정신과 의사라고 폼 잡는 엄마의 한심한 영어 발음을 올바르게 도와주고 싶었을 게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무시당한다’는 감정만이 앞을 가렸었다. 그리고는 아이와 한바탕 전쟁을 했다.

엄마, 내가 나올 때까지 저쪽 뒤에서 기다려 줄래요?”

막내가 비슷한 나이에 이르렀을 때 더욱 큰 서러움을 당했다. “엄마, 내가 나올 때까지 저쪽 뒤에서 기다려 줄래요?”

즉 자기 친구들 앞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그 당시 막 어린아이에서 발돋움해 틴에이저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얼쩡거리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애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누명을 쓰기 쉬운 때였다.

같은 남자였기 때문인지 아빠는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자동차를 세워놓고 아들이 수업 끝나기를 기다렸단다. 이 주책없는 엄마는 반갑다고 아이를 안아주고, 이름을 크게 불러댔으니 창피한 짓은 골라가면서 한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전 해 4학년까지만 해도 녀석은 빙그레 웃으면서 반가워 하지 않았던가! 며칠 밤 사이에 이토록 바뀌는 걸 어떻게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첫째와 막내사이에서 둘째 딸은 조신하게 살폈다. 그리고 매사에 신중을 다하고, 엄마에게 예의 바르게 굴었다. 그래서 둘째는 나를 은근히 겁준다. 행여나 실수할까봐. 이제 아이들이 30세, 25세, 24세가 되었다. 이제는 나를 서럽거나 무섭게 하지 않는다.

이런 나 자신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오늘 오후에 본 일본인 모녀를 이해하는 데 힘들었을지 모른다.

이꾸꼬는 미국인 병사를 만나서 일본을 다녀왔다. 미국에서 사는 20여년간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모두 희망을 걸었다. 그래서 열심히 엄마 노릇을 했다.

그런데 오늘 그녀는 무섭게 화가 나 있었다. 우선 엄마를 밖에서 기다리게 한 후에 틴에이저인 딸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니?”

“학교 정문 앞에서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것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나는 엄마 차가 오는 것을 못보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어요. 엄마는 나를 보셨대요. 그리고 내가 일부러 엄마를 못 본척 했다고 화가 나셨어요.”

“정말 너는 엄마 차를 보지 못했니?”

“네. 그런데도 엄마는 나는 안 믿어요. 그리고 엄마는 매일 내가 공부도 못하고 말썽만 부린다고 야단을 쳐요. 큰 언니 같이 되라고 늘 비교를 하는 것이 제일 듣기 싫어요.”

“그럼 다음 번에 올 때는 큰 언니하고 같이 올래?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싫어요. 언니는 엄마보다도 더 나를 야단치는 걸요. 그리고 언니는 엄마에게도 지시를 하는 걸요.”

스트레스는 성숙한 사고 차단

이 언니가 최근에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에 잠잠히 기다렸다. 내가 짐작했던대로 소녀의 엄마 이꾸꼬는 아이에 대해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가끔 아이 픽업 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대하 특별히 그랬다.

오늘 같이 의사와의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마음이 더욱 분주했으리라. 자신의 감정이 이렇게 스트레스에 쌓여 있는 경우에는 성숙한사고가 힘들어진다. 어린아이 같은 감정으로 퇴행하기 쉽다.

조용히 엄마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다. “도대체 딸이 당신을 피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어요? 당신처럼 열심히 살아가려는 엄마가 세상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제 막내 하나만 사춘기를 지나면 어려운 시기는 다 지나가니 축복할 일이 아닙니까” 웃으면서 사무실을 나서는 모녀의 머리의 머리 위로 저녁 노을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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