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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음악 축제
  •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 승인 2022.04.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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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2021 SSF 살롱콘서트 현장 이미지출처 SSF 공식홈페이지

흔히 4월은 언 땅이 녹고 나무 심기에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도 언 땅이 풀리고 잎눈이 트기 전이 가장 적당한 시기로 보기에 식목일도 이 달로 지정되어있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개엽 시기가 확연히 당겨지고 있어 식목 시기 조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4월이 되면 미국 출신의 영국 모더니즘 시인 엘리엇(T.S. Eliot, 1888-1965) 의 장편시 ‘황무지(The Waste Land, 1922)’의 앞 구절이 회자되곤 한다. 다음은 시의 인용 구절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로 봄비를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주었다.”

생동의 계절, 4월

“가장 잔인한 달(the cruellest month)”이라는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서서히 움트는 싹을 상상하면 더욱이 그렇다. 우리의 절기에서 보는 4월은 어떠한가. 4월은 24절기 중에 따뜻하고 화사한 봄을 알려주는 청명(淸明), 그리고 비를 맞으며 새싹을 움트게 하는 곡우(穀雨)가 있다. 그 중 하나인 곡우에는 많은 속담이 함께 전해지는데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처럼 농사에 필요한 준비를 하기도 하며 한 해의 농사가 경작정도가 결정되는 순간임을 알 수 있다. 곡우의 의미는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다.

앨리엇의 시에서 표현하는 4월과는 사뭇 다르다. ‘황무지’는 20세기 영미시와 모더니즘 문학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개인적 상상력으로 만든 작품이 아닌 인류 고전의 유산을 인용하고 변형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황무지’에는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R.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and Isolde)’의 1막의 오프닝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황량한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여 잠시나마 느꼈던 사랑의 꿈이 깨지고 다시 황무지의 현실로 돌아오는 절망감을 안기는 대목이다.

봄을 알리는 음악 축제

이 계절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 생명이 움트는 봄의 소리,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대자연의 함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물이 움트는 봄은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실내악은 음악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악기의 개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각 악기와 연주자들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서 연주자들 간의 음악적, 인간적 교류를 관객들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도시의 이름을 내세운 유명 예술축제는 그곳의 문화예술 이미지를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06년부터 한국에서도 이러한 기회를 마련하고자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은 서울시와 함께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를 시작했다. 서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해마다 약 2주간 열리는 페스티벌로, 매년 20여 회 정규 음악회를 열고 다양한 무료 공연과 청소년 음악도를 위한 마스터클라스 등을 개최하고 있다.

2022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포스터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이 예술감독으로서 진행하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58인의 연주자들을 중심으로 올해 주제는 첼로, ‘Cellissimo’이다. 첼로의 'Cello'와 강조를 뜻하는 '-ssimo'가 결합된 단어로 올해 축제는 실내악 음악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악기인 첼로를 집중 조명하여 연주 프로그램은 전 일정에 첼로가 포함되어 구성되어 있다.

SSF 예술감독 강동석 이미지 출처 SSF 공식홍페이지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비슷하다는 악기인 첼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차분한 저음의 울림이 마음속까지 전달된다. 첼로는 약 60Hz에서 약 700Hz의 주파수를 갖는데, 배음을 고려하면 약 100배정도로 넓은 주파수 대역을 갖는다. 이는 사람의 목소리 주파수를 거의 포괄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첼로 소리에 편안함을 느끼고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악기라고 전해지는 것이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연주 장소(venue)로 안국동의 윤보선 고택이 활용되는 것이다. 2006년 이후 현재까지 고택 음악회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윤보선(1897~1990)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집행위원장인 윤상구 대표의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사적(史蹟)으로 지정돼 있는 서울 북촌의 윤보선 고택의 주인으로, 아버지와 달리 사업가로 살아왔다. 윤보선 대통령은 대중들에게 조선 시대 선비와 영국 신사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1913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여운형을 따라 상하이로 이동, 상해임시정부에 들어가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이후 영국 옥스퍼드와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바 있다.

고택 음악회는 초반에는 후원자를 위한 비공개 살롱음악회로 진행되었다가 2015년에 처음으로 공개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 현존하는 오아시스 같은 장소인 이곳에서 건강의 위협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두와, 전쟁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소망해본다.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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