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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과 인간

  • 입력 2022.06.09 14:39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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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동굴 아낙네(Cave Woman)’는 아이들의 점심거리를 마련하려고 평원으로 나왔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나무 열매들도 떨어져버리고, 꿀벌통도 바닥이 났다. 사냥을 간 남정네들이 동굴로 돌아올 시간은 아득한데∙∙∙.

그런데 저 멀리 하늘 위로 새들이 모여 날아가는 게 아닌가! 더욱이 죽은 짐승의 고기를 노리는 까마귀나 독수리의 새들이다. 그래서 아낙은 그쪽을 향해 열심히 뛰었다. 그리고 다른 짐승들이나 조류들이 모두 먹어치우기 전에 현장에 도착했다. 사자에게 습격당해 쓰러져 있는 짐승의 몸에는 아직도 싱싱한 살코기와 내장, 그리고 뼈들이 남아 있었다. 아낙네는 바구니에 이것들을 모두 담아가지고 동굴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만찬이 준비됐다. 아낙은 동물의 큰 뼈 안에 있는 골수까지 잘 요리를 했다. 다른 짐승들이 남겨 놓은 두개골 속의 뇌조직도 훌륭한 식량거리가 된다. 오늘은 그녀의 ‘장거리 달리기 능력’ 때문에 온 가족이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상은 최근에 인류학자들이 발표한 ‘인류 초창기의 마라톤 맨’이라는 논문을 읽고 나의 상상을 가미한 옛날 이야기이다. 하버드와 유타 대학교의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그 능력 때문에 다른 모든 짐승들을 제쳐 놓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 유타 대학교 생리학 교수인 브렘블에 의하면, 인간은 장거리를 뛸 수 있는 스타로 200만 년 전에 군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인간으로 발전해 온 데는 인간의 이 ‘장거리 뛰는 능력’이 아프리카의 사막 지대에서 생존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원숭이나 침팬지들은 장거리 마라톤을 못한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만일 인간이 달리지 못했다면 이들처럼 나무나 타고 있을 거라고 한다. 물론 인간은 단거리를 뛰는 데는 형편이 없다. 동네에서 개를 쫓아갈 인간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30~40km의 먼거리를 달려가서 짐승의 고기를 주워오는 것은 ‘인간 동물’만이 가능했다는 주장이 ‘네이처’ 잡지에 게재된 내용이다.

우선 해부학적으로 차이점이 많다. 인간은 궁둥이 근육이 잘 발달돼 있다. 달리는 동안 몸의 균형을 잘 지켜주기 위해서다. 대퇴골을 몸과 연결해주는 다리 근육도 잘 발달해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는 것을 잘 지켜준다. 원숭이들은 궁둥이가 작을뿐더러 이런 발달한 다리 근육이 없다. 원숭이는 팔꿈치로 걷는 데 비해 인간은 길쭉한 팔이 있다. 달릴 때 팔을 흔들면서 속력을 낼 수 있다. 발꿈치의 아킬레스건도 인간에게만 있는 특수기관이다. 마치 스프링처럼 힘을 모았다가 달릴 때 탄력을 준다. 원숭이는 이 조직이 흔적만 남아 있다. 게다가 얼굴이 평평하고 치아는 작아 뛸 때에 상하 움직임의 저항이 적다고 이 학자들은 보았다. 머리 뒤통수와 목, 그리고 경추를 연결하는 근육은 팔과 어깨의 운동에 균형을 이룬다. 넓은 어깨는 뛰는 동안에 회전을 쉽게 해준다. 발뒤꿈치가 강하고, 발가락은 짧은 것도 뛸 때에 탄력을 준다.

그간 무심코 보았던 이런 해부학적 특징은 인간이 얼마나 달리기 위해서 진화되었나를 나타낸다는 주장이다. 물론 많은 학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인간의 대뇌의 크기가 다른 동물보다 월등하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이론이 많다.

지난 2~3년 간 나는 장거리 마라톤을 훈련받았다. 그리고 26.2마일 완주를 몇 번 해냈다. 마치 죽을 것 같아 힘들어하면서∙∙∙. 왜 달리는지 나도 확실히 모르지만, 끝낸 후의 기분은 100만 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마 나 자신을 싸워 이간다는 것이 ‘동굴인’들의 ‘식량’과 비견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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