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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는 당

  • 입력 2022.08.04 11:19
  • 기자명 최남현 (마리클(대전)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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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사람들은 보통 당이라고 하면 설탕을 떠올리고, 몸에 해로운 성분으로 여겨 덜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설탕을 비롯한 여러 당 성분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영양소로, 우리 몸의 최소 구성요소인 세포의 표면을 덮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세포들이 의사소통을 원활히 해야 한다. 이때 세포 표면에 있는 당들이 의사소통의 통로 역할을 한다. 당의 대사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인 병들이 발생한다. 류마티스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 암과 동맥경화, 노화과정 등에 당의 과학이 숨어있다.

이에 최근 당 및 당이 결합한 복합당에 대해 방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인 ‘글리코믹스’(Glycomics, 그림 1)가 주목받고 있다. 글리코믹스의 첫 음절인 ‘글리코’란 그리스어로 '딜콤하다'는 의미다.

그림 1. 2003년 MIT 선정 ‘21세기 세계를 바꿀 10대 신기술’에 선정된 글리코믹스
그림 1. 2003년 MIT 선정 ‘21세기 세계를 바꿀 10대 신기술’에 선정된 글리코믹스

[인간과 침팬지 차이는 당사슬]

2001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을 토대로, ‘지노믹스’(Genomics, 생물이 갖고 있는 전체 유전정보)분야의 붐이 일었다. 포스트 게놈 시대를 맞아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단백질 연구)가 뒤를 이었다. 대량의 데이터 분석을 특징으로 하는 이른바 ‘오믹스’(omics)기술의 핵심이 이제 당으로 옮아가고 있다. 즉 글리코믹스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2003년 미국 MIT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할 10대 과학기술’로 글리코믹스를 선정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유전체 정보가 해독되고 질량을 분석하는 기기들이 발달해 구조 해석이 쉬워지면서 글리코믹스 분야에서는 커다란 진전이 이뤄졌다. 특히 인간의 유전체를 해독해보니 예상보다 유전자 수가 훨씬 적게 나와서 인체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당사슬’이란 물질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리라고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영장류인 침팬지의 유전체를 해독한 결과,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거의 동일하나 당 관련 유전자들에서 차이가 발견되면서 이런 예상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림 2. 당사슬 설명
그림 2. 당사슬 설명

포도당, 갈릭토오스, 민노오스 같은 개개의 당이 사슬 형태로 연결된 구조를 당사슬(그림2) 또는 당쇄(糖鎖)라고 부른다. 당사슬은 DNA와 단백질에 이어 체내 기능 관련 정보를 담고 있는 ‘제3의 정보 고분자’로 여겨지고 있다.

세포 표면의 막은 대부분 당사슬로 코팅돼 있다. 이들은 생체 정보의 전달, 세포 간 상호작용, 면역작용을 비롯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예를 들면 세포가 이동할 때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위치를 알려주는 게 바로 당사슬이다.

백혈구는 혈관 속을 빠르게 이동한다. 상처가 나 감염이 되면 인접한 혈관이 확장되면서 틈새가 메워지고 혈액이 찐득해지면서 혈류 속도가 감소한다. 그러면 백혈구도 상처 부위 근처에서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서 표면에 있는 당사슬이 혈관 내피 세포 표면에 발현돼 있는 셀렉틴(Selectin)이라 불리는 수용체와 결합해 혈관 벽을 타고 흐른다. 셀렉틴과 당사슬의 결합은 매우 약하고 일시적이어서 백혈구의 이동을 멈추게 하기보다는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해 백혈구가 혈관 벽의 틈새를 통해 상처 부위로 빠져나가도록 해준다. 백혈구는 상처 주변에서 세균 같은 이물질을 잡아먹는다.

이런 감염반응 메커니즘에 이상이 생기면 면역세포들이 특정 부위에 과다하게 모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류마티스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다. 또한 특정 부위에 생긴 암이 다른 부위로 번져가는 전이 현상에서도 셀렉틴 같은 당사슬 결합 단백질과 당사슬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3. 혈액형
그림 3. 혈액형

[생과 사를 결정하는 당사슬]

당사슬은 면역반응에서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표지자로 흔히 사용된다. 예를 들어 사람의 혈액형(그림 3)은 적혈구 표면에 있는 당사슬에 따라 결정된다. 이 당사슬이 항원으로 작용해 면역반응을 일으키므로 혈액형에 맞춰 수혈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대표적인 혈액형이 ABO유형이다. A형은 골격사슬(H chain)에 N-아세틸갈락토사민(GalNAc)이라는 당을 부착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A형 항원을 만들어낸다. B형은 갈락토오스를 붙이는 유전자가 있어 B형 항원을 만든다. AB형은 이 두 유전자를 다 갖고 있어 A와 B형 항원이 모두 생성된다. O형은 골격사슬만 갖고 있다. 따라서 AB형은 자신의 당사슬에 대해서는 항체가 만들어지지 않으므로 모든 혈액을 수혈받을 수 있는 반면, A형과 B형은 O형 또는 자신과 같은 혈액형만 수혈받을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당사슬에 대해 면역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경우에도 큰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영장류를 제외한 동물의 세포에는 ‘갈락토오스-(1,3)-갈락토오스’(Gal(1,3)Gal)라는 당사슬 항원이 존재하는데, 사람은 이에 대한 항체를 갖고 있다. 따라서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면 사람의 항체가 이식 장기의 혈관 내피세포 표면에 있는 ‘Gal(1,3)Gal’ 항원에 결합하는 면역반응이 일어난다. 이 때문에 몇 분 만에 이식 장기의 기능이 멈춰버린다.

 

[건강 해방일지, 새로운 정보 - 당영양소]

당사슬이 생체 기능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글리코믹스 기술은 의약품, 식품, 화장품 같은 생물 관련 산업에 응용할 수 있다.

이 글리코믹스 기술을 식품(영양)으로 응용한 대표적이고 독보적인 회사와 제품이 나스닥 상장기업인 매나테크사와 그 대표 제품인 엠브로토스이다.

지금까지 설탕의 다량 섭취에 대해 경고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치료하는 설탕이라고 하면 어딘가 모순된 것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당의 역할을 직면할 때이다. 달콤한 치료제,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열 열쇠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정보와 수단은 언제나 낯설다. 낯설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물며 그것이 자신의 건강과 직결된 것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70년 전만 해도 혈압을 낮추기 위해 몸의 피를 빼고, 일부러 염증을 일으키는 등의 방식이 서양의 ‘첨단 의학’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더 새롭고 발전된 건강 지식은 언제나 반가운 손님이다. 새로운 과학적 지식에 조금 더 열린 자세를 가지는 것, 어쩌면 당신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이 아닐까.

<과학동아 2006년 2월본 내용 발췌 및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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