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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속성

  • 입력 2022.08.11 11:57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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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마음 작용 중에서 우리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게 생각이고, 그 다음이 의지입니다. 따라서 의지를 정확히 아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의지에 대해서 정확히 알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문제가 해결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의지의 불상
의지의 불상

의지와 관련해서 우리는 ‘자유의지’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남의 강요에 의하지 않고 자기 속에서 의지가 나서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 ‘자유의지로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자유의지라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분명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그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조건에도 관계없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할 수 있다거나 무슨 의지든 낼 수 있다는 뜻에서 ‘자유의지’를 말한다면, 저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봅니다. 조건에서 자유로운 의지는 없습니다. 제가 이해한 불교는 인과의 법칙입니다. 어떤 현상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 조건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 불교 경전을 근거로 다음과 같은 대화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묻고 부처님이 답하는 가상 대화입니다.

“집이 있습니까?”

“아니다.”

“집이 없습니까?”

“아니다.”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

“아니다.”

“집이 잇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아니다.”

“그럼 뭡니까?”

“조건이 있어서 집이 있고, 조건이 있어서 집이 없다.”

어떤 조건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 없다 말하는 건 현상적으로 우리가 착각하는 겁니다. 저는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조건에서 자유로운 자유의지가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욱 전통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서, 어떤 정신 현상이 일어날 때 그에 관계되는 조건들이 있으며 그 조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그 정신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보고서는 문자 그대로의 자유의지란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건 관찰에서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찰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의지를 잘 관찰해보면, 의지도 생각이 그러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떠올리는게 아니라 의지가 조건에 따라 떠오르는 겁니다. 나 자신의 내부 상태에 영향을 받아 떠오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눈을 감고 의지를 한번 내보세요. 뭐가 떠오르나요? 내고 싶은 의자를 내는 게 가능하던가요? 그런 분 있다면 손을 들어보세요.

제가 관찰해본 바에 의하면 의지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떠오르는 겁니다. 순간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통해 내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조건에 따라 떠오른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의지는 내가 내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루 종일 의지를 내면서 살아보자.’고 결심하고서 이 의지를 내고 저 의지를 내려 해보았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의가 어떤 대상에 강하게 집중돼 있으면 의지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선정처럼 마음이 완전히 명상 대상에 가 있는 경우 의지를 낼 수 없습니다. 의지가 떠오를 수 있는 조건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작용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생각, 의지, 느낌, 감정, 인식, 의식 같은 것들이 마음의 작용인데, 제가 볼때는 이런 것들의 속성은 똑같습니다. 속성은 똑같지만 내용이 다르니까 이름이 다른 거지요. 그 속성이란, 엄밀하게 보면 그 모두가 조건에 따라서 일어나는 정신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걸 정확하게 알고 싶다면 꾸준하게 자신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연습하면 관찰력이 배양되어서 정신 현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자기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거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 하고 싶을 때 해야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런 마음이 안 드는 것도 안 들 만한 조건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바뀌지 않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안 들 수 있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의지의 이런 속성을 알고 보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굉장히 수동적인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들지 안 들지를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자기가 필요한 일을 해서 조건을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공부하기 싫으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가서 공부하겠다는 태도보다는, 집에서 공부가 안 되면 공부가 될 만한 다른 곳으로 장소를 바꾸는 등 공부할 맘이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찾는 게 바람직합니다.

조건을 바꾸는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저를 찾아왔다고 칩시다. 우울증에 걸리면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가혹한 요구 입니다. 그럴뿐더러 그 환자를 ‘내가 이것도 못 하는구나!’ 하는 자책으로 몰고 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힘들면 하지 마세요. 그것은 하지 말되, 그래도 무언가 할 만한 것이 있으면 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시작하면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대체로 우리는 많이 한 건 잘하게 돼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많이 하면 그 일에 좀 익숙해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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