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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에 나타난 인간의 범죄본능(8)

인류최초의 영아 대량살해 사건

  • 입력 2022.08.12 11:04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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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사건의 줄거리는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 탄생하였을 무렵, 동방의 세 박사가 헤롯왕을 찾아왔다. 왕에게 유태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에 계신가를 물었다. 왕은 자기가 왕인데 또 다른 왕이 태어났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묻는 사람들이 세상 이치를 환히 꿰뚫어 보는 천문학에 능한 이른바 전문가들이며 이들이 새로 탄생한 왕의별을 보고 동방의 먼 나라에서 엘루살렘 까지 찾아왔다는 말에 헤롯왕은 자신의 권좌의 위험을 느끼게 되었다.

기가 찬 헤롯왕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며 동방 박사들에게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것이니 찾거든 알려주시오.”라고 하였다. 실은 아기가 있는 곳을 알면 병사를 보내 그 아기를 죽여서 불행의 씨를 말려 버릴 속셈이었다.

박사들은 별이 안내하는 곳을 따라 아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서 아기예수에게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을 예물로 바쳤다. 그리고는 헤롯왕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꿈에서 받고는 다른 길로 해서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동방의 세 박사가 돌아오지 않자 왕은 그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는 분노해서 병사들을 시켜 베들레헴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해 어린 생명을 무참히 살해하였다는 것이 아기 다량학살사건의 줄거리이다.

하아르렘 작: ‘영아 대학살’, 1591, 하아르렘, 한스 미술관
하아르렘 작: ‘영아 대학살’, 1591, 하아르렘, 한스 미술관

영아 살해를 주제로 한 그림이나 조각은 여러 화가나 조각가에 의해서 제작되었다. 조각으로는 지오반이 피사노(Giovanni Pisano 1248-1314)가 성 앙드레아 성당의 설교단에 부조로 조각한 것이 유명하고 이를 실감 있게 그린 그림으로는 하아르렘(Cornelis van Haarlem 1562-1632)과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 -1640)의 그림을 들 수 있어 이들의 그림을 보면서 영아살해의 실태를 살펴보기로 한다.

하아르렘의 ‘영아 대학살’(1591)이라는 그림에는 아이들을 살해하기위해 출동한 병사들이 옷을 벗은 나체로 그리고 아기를 숨기고 있던 어머니들도 나체로 그렸는데 그것은 어머니들이 아기가 발각되지 않게 꼭꼭 숨기기 위해 혹시 옷 입은 것이 단서가 되어 병사들에게 발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옷을 벗은 것으로 그렸으며 또 병사들이 옷을 벗은 것은 군복을 보면 아기들을 살해하기 위해 출동한 병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 볼 것이기 때문에 변장하고 출동 했었는데 이것을 과장해서 나체로 표현해 그림 전체는 나체 일색으로 표현해 영아살해의 비참성이 갖고 있는 극적 효과와 바로크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아울러 박진감 넘치게 전개시키고 사건 현장을 노골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무자비한 병사들로부터 자식의 생명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어머니들과 그들의 품에서 아기를 빼앗아 살해하는 자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무참히 죽어 가야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숨 가쁘게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피할 수 없는 극적 긴장감이 전개된다.

그림의 어떤 부분에는 아이를 가운데 놓고 아이 엄마와 병사가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한 병사가 아이를 거꾸로 들고 죽이기 위해 칼을 들이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밖에도 화면 곳곳에 주제의 잔인성이 뚜렷하게 부각 되어 있다. 어떤 어머니는 두려움과 고통으로 떨고 있고, 죽은 자식을 안고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는 모습도 보인다.

루벤스 작: ‘천진한 아이들의 대량학살’, 1635년경, 뮌헨, 알테 피나코테
루벤스 작: ‘천진한 아이들의 대량학살’, 1635년경, 뮌헨, 알테 피나코테

벨기에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 ‘천진한 아이들의 대량학살’(1635년경)을 보면 왼편 아래쪽에는 이미 살해된 아이들이 뒹굴고 있고 한 어머니는 죽은 아이를 부둥켜안고 슬픈 나머지 실성한 상태이다.

그림의 맨 왼쪽에는 병사가 아기의 가슴을 검으로 찌르고 있으며 그 바로 밑에는 아기를 빼앗으려는 병사에게 두 어머니가 덤벼들고 있다. 한 어머니는 병사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힘껏 할퀴고 있고 또 한명의 어머니는 병사의 옆구리를 가격해 병사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림 중앙에는 아기를 빼앗긴 어머니가 아기의 옷만을 들고 실성한 듯이 울부짖고 있으며 아기를 빼앗아 달아나는 병사를 아기의 어머니가 결사적으로 쫓고 있다. 그림 오른쪽 밑에는 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이를 병사가 칼로 찌르려하자 어머니는 그 칼을 맨손으로 잡아 쥐어 아이를 찌르지 못하게 하고 있으며 한 남정네가 병사의 머리채를 힘 것 잡아당겨 고개가 뒤로 재 쳐져 있다. 그림 맨 오른쪽에는 아기에게 칼을 휘두르는 병사의 팔을 사정없이 물어뜯는 어머니도 있어, 갖은 폭력을 다 하며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빼앗으려는 병사와 있는 힘을 다하여 이를 저지하려는 어머니 그리고 아무런 죄 없이 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을 잘 묘사해 긴장감과 격분을 금할 수 없게 하는데 그림의 왼쪽위의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이 처참한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러한 아기들의 학살이 벌어지기 전에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대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하고 일러 주었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대리고 길을 떠나 이집트로 향했다. 성경에는 어떻게 길을 떠났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된 것이 없다.

후버 작: ‘이집트로 피난하는 성가족’, 1525, 베를린, 달렘 미술관
후버 작: ‘이집트로 피난하는 성가족’, 1525, 베를린, 달렘 미술관

하지만 독일의 화가 후버(Wolfgang Huber 1490-1553)는 성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모습을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가족’(1525)라는 제목으로 실감나게 그렸는데 나귀 한 마리, 누렁 소 한 마리에 성가족만 그려 어떤 의미에서는 여행길이 좀 두려운 것이 될 감마저 드는데 이것은 아라비아 경전에서 성가족과 더불어 몸종 하나가 도피 길을 따라나섰다고 되어있는데 그림에는 몸종마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화가는 나귀 한 마리에다 단출한 짐 꾸러미만 매달고 급히 베들레헴을 떠났다는 야고보 외경을 참고하여 그림을 그린 것 같다.

성모는 나귀 잔등에 비스듬히 올라타고 있다. 요셉은 등허리에 봇짐을 짊어지고 고삐는 오른손에 쥐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서 아내 마리아와 아기의 상황을 살핀다. 왼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먼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것으로 이 그림에서도 이 여행이 긴 여행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또 나귀는 풀포기 하나 자라지 않는 돌산 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는데 이집트까지 가는 여정이 돌산처럼 험난함을, 그리고 시야를 가로막는 침엽수림은 고통스럽고 불안한 여정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아기와 그 어머니를 대리고 헤롯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급히 길을 떠난 이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는 없을 것이다. 마리아는 목덜미에 내리쪼이는 햇볕을 견디기가 어려운 듯이 눈살을 밑으로 깔고 있다.

이러한 사건의 줄거리가 회화의 주제로 관심을 끈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의 탄생이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는데 이처럼 죄 없는 생명이 무참하게 학살당하였다는 것을 되새길 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어쩌면 이 무고한 생명들의 희생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대신 죽은 예수에게 바쳐진 가장 깨끗하고 거룩한 희생의 양으로 해석하면 다소나마 위안이 되는 듯하다.

인간은 권력과 힘에 대한 의지를 항시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주위의 상상에 따라 좌절, 무력하게 빠지게 될 때는 열등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를 느끼게 되며 이를 보상하기 위해 힘을 내세우고 공격을 한다는 것인데, 헤롯왕도 열등 콤플렉스에 빠져 자기가 권자에서 물러나게 될 것을 우려해 무고한 아기들을 대량학살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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