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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tal clinic]말을 못해서 사표 썼어요

  • 입력 2008.07.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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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치료를 받았던 20대 중반의 여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였는데 번번이 한두 달을 못 채우고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직장에서 쫓겨나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그만 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환자가 직장을 그만둔 주된 이유는 다른 직원, 특히 다른 여직원들처럼 말을 잘하고 명랑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싶은데 자기는 그게 안 되고 그런 자기를 직장 상사나 동료가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그것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직장에 취직하게 되면 항상 이 문제가 반복되었다. 잘 듣는 것도 말을 잘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환자는 여러 사람 속에 있게 되면 강박적으로 ‘내가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것이고 나만 소외 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잘 안되고 그런 것에 집착해 있다 보니 일을 잘 못하게 되고 직장상사 눈치도 보이고 하여 그만두곤 했다.환자가 이런 문제를 가지게 된 근본 원인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집에 살면서 부모보다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자고 더 가까워 부모를 보면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 오면서 자기가 어색하게 생각하는 부모와 같이 생활하면서 부모, 특히 아버지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친구관계에서도 수동적이어서 누가 호감을 가지고 이끌어주면 친분관계가 생겼으나 그렇지 않으면 사귀지 못하였다. 환자는 내성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명랑하게 보이려고 노력하였는데 명랑하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했다.이 환자의 대인관계 장애가 오래되어 약도 쓰면서 면담을 통해 이런 점을 깨닫게 해주고 실제로 회사에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교육을 시켰다. 이 환자는 병적으로 정도가 심하지만 이와 비슷한 장애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직장에서 명랑하고 재미있게 잘하고 싶은데 안 된다’, ‘어떻게 대화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척척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직장의 분위기를 주도하려고 한다. 그것은 무리다. 그리고 설사 그런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너무 일찍 그러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경계의 대상이 된다. 신입사원은 신입사원다운 어설픈 맛도 있어야 한다.그리고 직장에서 사람을 뽑은 것은 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에 채용한 것이니 먼저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윗사람이나 동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일을 해나가는 가운데 자연히 할 말이 생기게 된다.말을 잘 하려면 평소에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주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동료 직원이나 상사가 어떤 사람인가, 무엇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요즘 무슨 특별한 일은 없는지 등에 대해 평소에 잘 관찰해두어야 한다.그리고 신문이나 잡지, 독서 등을 통해 넓은 정보가 쌓일 때 말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지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까 고민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의식하면 더 말이 안 나온다.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꼭 말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할 말이 없으면 들으면 된다는 마음자세이다. 남의 말을 잘 들으면 상대방이 좋아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런 것이 쌓이면 언젠가 말을 잘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피곤한 대화보다는 편안한 침묵이 더 나을 때도필자가 오래 전에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근무하던 병원이 종합병원 규모라서 30명 정도의 군의관이 같이 근무하였다. 가끔 휴게실 같은 곳에 모여서 TV도 보고 이야기도 했는데 2년 근무를 마치고 헤어질 때쯤 우리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군의관은 별로 말이 없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 군의관은 별 말이 없는 것에 대해 ‘나도 말을 해야 되는데’하는 갈등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남의 말을 잘 들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어설프게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의 말은 듣기에 피곤하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말이나 별로 말이 없으나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침묵은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말을 하는 것만이 대화가 아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직장에서 대화하는 것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대화이고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을 편안히 하는 것이 좋다. 말을 잘하는 것은 말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할 때 가장 잘하게 된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고 공감해줄 것이 있으면 공감해주고 그런 편안한 마음이 되면서 평소 주위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 때 자기도 모르게 말을 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