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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신의라 불리운 애국지사 대암 이태준 선생, 그 현장을 가다.

  • 입력 2022.09.08 12:01
  • 기자명 엠디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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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한국잡지협회(회장 백종운) 몽골 울란바토르 문화교류단의 MD저널 송영용 대표는 지난 8월17-21일 몽골을 방문 애국지사 이태준 열사의 기념관을 찾아 그 분의 업적을 기리고, 머나먼 몽골에서 꽃피운 보편적 인간 사랑의 봉사 정신을 펼친 이태준 열사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이태준 열사
이태준 열사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만남이 독립운동의 길로

1883년 11월21일 경남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대암 이태준 선생, 그는 1907년 최고의 근대 의료기관인 세브란병원의학교 입학했다. 일제 강점기에 암울하던 1909년 의학교 재학시절, 환자를 치료하다가 우연히 만난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감화를 받아 항일 독립운동에 뜻을 세우고 안창호 선생의 권유로 1901년 청년학우회(1090년 서울에서 조직된 애국청년단체)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몽골에서 의술 펼치고 독립 자금 운반

1911년 학교를 졸업한 대암 이태준 열사는 일제의 계속된 탄압으로 의학교 선배이자 스승인 김필순 선생의 뒤를 이어 중국 남경으로 망명했다. 그 곳에서 조선 독립군 부상자를 돌보았다.

이후 1914년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다시 몽골의 고륜(현 울란바토르)으로 건너갔다. 그는 김규식 선생과 함께 몽골의 비밀군관학교를 설립하고자 했으나,약속한 자금이 도착하지 않아 학교 설립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태준 선생은 몽골 정착을 결심하고 곤륜에 ‘동의의국(同義醫局)’ 병원을 개원했다. 그 곳은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 거점이자, 몽골인들의 진정한 의사가 되어준 곳이 되었다.

당시 몽골은 매독의 나라라라고 불릴 만큼 전염병이 널리 퍼져 있어 다른 병원들은 외국인만 진료했는데 이태준 선생은 전염병의 위험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현지인들을 진료했다.

“목에 매독균이 퍼져 말을 못하던 사람이 이태준 선생에게 치료를 받고 말할 수 있게됐다는 일화가 소개될 만큼 이태준 선생은 몽골인들의 신뢰를 얻었고 당시 몽골 국왕인 보그드 칸의 주치의가 되었고,수많은 몽골인들의 생명을 살렸다.

1919년 몽골 최고의 훈장을 수여받았고 현재까지도 몽골에서 신의로 불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21년 11월 16일 대암 이태준 열사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애국지사 이태준 열사의 기념관을 개관했다. 애국지사 이태준 열사의 기념관에는 이태준 열사의 호적부와 세브란스 병원 의학교 졸업증서 등 관련 전시물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출생지인 대한민국 경남 함안에서 몽골까지의 여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터치스크린, 애니메이션, 홍보영상물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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