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저널]

봄이 지나는 길에 여름을 맞이하려는 장미를 앞세우며 오고

또 그 길에 가을의 전령이 다가오며 말을 걸다.

스크린을 사랑하는 순간, 그는 이미 예술가이다. 대한민국의 중견 작가 이존립의 작업은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마중물이다. 시간을 일구고 가꾸어 나가는 길을 화폭에 행복한 순간으로 가져오고 있다. 캔버스에 숨어 있는 한 분 한 분, 그리고 그 해 여름 피어나는 식물의 개화를 살펴서 시간의 저장인 기다림을 온통 작업화 했다. 대지의 예술은 이 시간 동시대의 동류의 환희를 이야기한다. 작풍 속 내적 조화, 이는 그의 시선이다.

작업의 대화는 좋은 사람들과 자연의 호흡이었다. 한여름의 강렬한 햇빛으로 결실이 오는 때 그 계절 농부는 와이너리(winery) 수확의 선물과 풍요로 변하는 프랑스 보졸레(Beaujolais) 포도의 땀과 같다.

장 뤽 고다르(Jean-Luc Goaurd)의 영화 ‘경멸’(1963)의 주요 무대는 서양 문명의 대표 도시인 로마와 나폴리 앞의 섬 카프리가 중심이 된다. 세 섬 중 가장 유명한 카프리 섬에서 영화 속 영화 ’오디세이’를 찍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카프리는 건조하게 찍혀있다. 감독과 배우들 사이의 냉랭한 관계가 스크린 속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스토리가 강조된 전통적 영화가 아닌 감정상태를 반영하는 테마가 강조되는 작품이다.

이존립 작가의 원화가 영화 스크린에 배치가 될 때를 기대하고 상상해본다. 대한민국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자 슬로시티인 여수는 이 작가의 작품에 이미 설계와 구성으로 이어져 있는 상상으로 구현된다. 회화로 구성된 각 골목에 있는 이야기를 이제 스크린으로 담아야겠다. 원화 작가 이존립과 스토리텔러, 스크린에 담는 감독, 배역을 담는 연기자들 모두 그의 화폭에 있다.

이존립 작가의 작품 속의 각각을 분석해보고 싶다. 가족의 표정, 그 사람의 삶의 발자국을 따라가고 싶은 화면 분할의 선과 면. 그것은 이 작품의 컬렉터가 되는 길이다. 작가는 작업의 일상에서 오는 고독감으로 표정이 바뀐다. 지구 끝이자 처음, 태양이 떠오른 아침의 황홀한 에너지로 변환되고 있다. 그 작가의 품은 일상을 나누는 그 무엇이다. 예술작업이 어렵고 딜레마일 때 바람이 내게 전한 메시지로, 바람이 이는 때가 낙엽이 흔들리는 순간이 됨을 이제 알았다고.

가나 아샨티(Ashanti)지역의 한 마을에는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한 가정에 한정되지 않고 골목을 통해 만나는 이웃이 함께 만드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곳에 바로 이존립 작가 자신의 예술가의 초상이 담겨 있다.

꽃-색-우리. 꽃에서 색을 본다. 색에서 꽃을 본다. 이렇게 사계(四季)는 흐르고 있다. 이존립 작가의 행복한 일상은 소통하는 힘이 있다. 우리의 일상과 기억과 시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