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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medicine]미술사로 보는 웃음과 미소의 표현

  • 입력 2008.07.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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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로 볼 때 중세미술에는 ‘웃지 않는 웃음’, 르네상스에는 ‘굴절된 웃음’, 그리고 17세기 플랑드르, 네덜란드 미술에 이르러 비로소 다양하게 미소 짓는 인물이 그림에 등장하게 된다. 중세의 많은 신학자들은 “이세상에 웃음을 위해 만들어진 무대는 없다. 우리들은 웃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죄를 슬퍼하기 위해 모이건 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즐거운 기회를 주는 것은 신이 아니라 악마이다”라고 주장하며 남을 웃기는 것은 가장 무거운 죄를 범하는 것이며, 웃음은 악마의 특징이라 하였으며, 그것에서 생겨나는 웃음으로 인한 육체적인 쾌락을 적대시 하였다.
사람들 앞에서 웃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종교적인 이유이외에 위생상의 이유도 가세되어 있었다. 즉 치과의술이 발달되지 못했던 시절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무 살만 넘으면 이가 망가져 입을 벌리고 웃으면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이를 온통 드러내고 웃는 것이 금지되어 어른들은 입을 다물고 웃게 하고, 다만 어린이들에게만 입을 벌리고 웃는 것이 허용되었다.
따라서 화가들은 웃음을 그림에 직접 올리지 못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양화(釀化)시킬 수 있도록 간접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웃음은 화가가 아닌 관객의 몫
르네상스를 ‘인간성의 발견시대’라 하여 웃음을 가장 인간적인 행위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저술이 쏟아져 나옴에 따라 웃음은 인간에 있어서 근원적인 것이며 웃음은 인간에서만 보는 즉 인간은 웃는 동물이라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문자화된 주장은 나왔지만 화가들은 웃음을 성큼 화폭에 올리지는 못하고 여전히 웃음은 그림을 보는 관자들의 몫이 었다.
따라서 화가들은 웃는 얼굴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보고 웃게 하는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이러한 것에 선봉을 섰던 것이 네덜란드의 화가 브뢰헬(Pieter Bruegel 1530~1569)이다. 그는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자란 네덜란드의 농촌을 사랑했고, 그는 농부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화가가 되었을 무렵의 그림은 성경의 인물들이나 신화속의 이야기 또는 왕족의 호화로운 생활이 그림의 주제가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주제와는 관계되지 않는 농부들이 들판에서 땀을 흘리는 모습이나 흥겨운 농가의 결혼잔치에서 춤을 추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림에 담았다.
즉 그는 극적 요소를 버리고 순수하게 사실적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농민의 실상을 묘사하였으며 숙명적으로 대지와 깊은 인연을 맺어 그 속에서 소박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농민을 높은 휴머니즘의 정신과 예리한 사회비판의 눈으로 관찰하면서 묘사해 냈다. 이로 인해 그는 최초의 농민화가가 되었으며, 그를 ‘농민 화가 브뢰헬’로 부르게 되었다.
그는 농민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속담을 이용해서 우회적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다. 이러한 속담을 주제로 한 그의 작품은 100여개가 되는데 그 작품들은 북유럽 전통의 사실성과 이탈리아에서 배운 엄격한 선(線)의 묘사를 통하여 독특한 스타일과 취향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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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네덜란드의 속담(1559)’을 보면 그림 속에 여러 사건들을 그렸는데, 다른 것을 압도하지 않도록 배치하고 있다. ‘기둥을 물어뜯는 사람’이 있는데, 이 말은 플랑드르어로 위선자를 의미한다. 양의 털을 깎는 사람을 흉내 내어 돼지의 털을 깎으려는 어리석은 사람도 보이고 ‘소등에서 당나귀 등으로 떨어지는 사람’은 ‘프라이 팬에서 뛰어나와 불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의미하고, 송아지가 우물에 빠져 둥둥 떠 있는 모습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의 네덜란드 판이다. 사람들이 두 개의 입으로 말하는가하면 두 의자 사이의 잿더미 위에 앉아있는 모습도 보여 이 속담을 아는 네덜란드인들은 이 그림을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리거나 아니면 미소를 짓게 마련이라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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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농민들의 춤’ (1568)을 보면 마을의 축제로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마을 어귀에 있는 광장에 모여 춤을 추며 담소하고 음식도 나누고 사랑도 나누고 있다. 그러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림을 확대하여 보면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는 남녀의 얼굴에도 웃음이 없고, 술 마시는 사람들 뒤에서 사랑의 입맞춤을 하는 남녀의 얼굴에도 기쁨이란 찾아 볼 수 없으며, 어린이에게 춤을 배워주는 어머니의 얼굴에도 미소가 없다. 즉 즐거운 일이 펼쳐지지만 이를 기쁘게 생각하기는 하나 웃음이나 미소를 짓는 사람은 없고 웃음을 터트리거나 미소 짓는 것은 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몫이다.

화폭으로 옮겨진 종교적인 미소
이렇게 화가들은 웃음이나 미소를 화폭에 담지 못하고 웃음을 내포한 속담이나 사건들을 그려 이것을 보고 웃음 짓게 하든 것이 점차 미소를 화폭에 담기 시작하였는데 그것도 온전한 사람의 미소가 아니라 병들거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불구자를 이용하여 미소를 떠올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좋은 예가 화가 리베라 (Jusepe de Ribera 1591~1652)의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화가는 스페인 태생이나 17세 때 이탈리아로 건너가 당시 스페인의 부왕령(副王領)이었던 나폴리에 정착하여 활동하였으므로 이른바 ‘나폴리파’를 대표하는 화가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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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새우 발의 소년’(1642)을 보면 그림의 소년은 우측 발이 소위 ‘새우발’이라고 하는 불구자이며, 그 발을 발톱으로 세우고 더러운 이빨이지만 내보이며 미소 짓는 소년의 표정은 티 없이 맑기만 하다. 특히 뒤 배경의 푸르고 맑은 하늘은 소년의 해맑음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이 소년은 우측 반신이 마비되어 있어 평상시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필요가 없기에 어깨에 메고 있어 마치 개선하는 병사처럼 보인다. 왼쪽 손에 들고 있는 종이에는 라틴어로 ‘DA MIHI ELIIMO SINAM PROPTER AMOREM DEI(하느님의 자비로 나에게 적선하세요)’ 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소년은 말 할 수 없는 실어증 (失語症)에도 걸려 있는 것 같다.
종이에 쓰여 있는 글귀는 적선이 영혼을 구한다는 대항 종교개혁(對抗 宗敎改革)의 이론에 입각한 것으로 이 이론의 취지는 여러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대부분의 그림에서 자선의 중요성은 성인(聖人)이 어려운 자에게 베풀어주는 줄거리로 표현되었던 것과는 달리 리베라는 이 그림에서는 반대로 시혜를 받아야할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 독창성을 발휘하며 미소를 형상화 하였다.
자기의 곤경을 개의치 않고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딜 수 있다는 표현의 미소는 이미 인간의 무력과 물질의 무의미를 알고 오직 전능하신 하느님에 의지하겠다는 고운 마음씨를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더욱 뒷받침하는 것이 넓고 푸른 하늘은 이미 소년에게 천국을 약속한 듯 소년은 웃고 있다. 소년의 지적인 표정 그리고 눈의 표정으로 보아 지능 장애는 없어 보인다.
우측 팔 다리와 손발의 마비는 대뇌 반구(半球)의 장애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년의 진단은 소아편마비 (小兒片痲痺 infantile hemiplegia) 일 것이다. 이 질환은 일명 반신불수 (半身不隨)라고도 하는데 한쪽의 팔 다리 얼굴 등의 수의적인 운동이 마비되어 임의로운 운동은 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런 상태가 가장 일어나기 쉬운 경우는 뇌혈관 장애에 의한 내포부 (內包部)의 출혈, 연화 (軟化) 등으로 인한 것인데 당뇨병, 요독증, 뇌종양, 다발성 경화 및 외상 등에 의해 생길 수 있다. 모름지기 이 소년의 경우는 나이와 처지로 보아 여기저기에서 얻어맞은 외상 후에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소년은 미소로 자기의 고통에 대한 면역성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