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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못 믿겠습니다.

  • 입력 2022.11.18 12:00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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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같은 과에서 일하는 간호사 로라가 전화를 했다. “처음 온 어느 환자가 당신에 대해 미심쩍어 하면서 당신이 미국에서 얼마나 살았냐고 물었어요. 그리고 ‘외국인 의사가 ADHD(주의산만 및 행동 항진증) 같은 병에 대해서 알고 있겠느냐’ 고 걱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요?”

“닥터 정이 20대와 30대 자녀들을 미국에서 출산해 길렀다고 대답했지요. 그리고 ADHD는 바로 닥터 정의 전문분야라고 했어요.” 로라는 또 한 가지를 물었다. “대화 내용을 환자의 임상일지에 써도 되겠지요.”

그녀가 이런 질문을 하는 데는 일리가 있다. 정신과 치료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 마음의 고통을 풀어 나누며 심신의 건강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이기에 처음부터 환자가 의사에 대해 신뢰감을 갖지 못한다면 그 결과에 큰 장애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환자가 상담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전이감정을 “Transference”라 불렀다. 만일 어떤 사람이 동양인 세탁소 주인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있다고 하자. 이들의 영어가 완전치 못했고 다른 문제로 화가 났었다면 나의 동양식 이름을 듣는 순간 그들에 대한 과거의 감정이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 이입된 감정 때문에 환자나 환자의 부모들은 동양인 의사인 나를 과거에 불쾌했던 세탁소 주인으로 대체할 수 있다.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믿는 사람이 없다.

과거에는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시간이 길었고, 또 진료하는 횟수도 훨씬 잦았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감정이입을 분석하고 치료하면서 환자의 마음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했다. 이에 반해 오늘날 정신과 치료는 많이 변했다. 정신과 의사의 수는 줄었고 환자들의 비용은 하늘처럼 높아졌다. 그러니 이런 잘못된 첫인상이나 오해를 풀어나갈 여유나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환자들은 자신들의 불안감 때문에 병이 쉽게 낫지 않는다. 자연히 이런 경우 비난의 화살은 애매한 의사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환자의 아픔을 덜어 주어야 할 의사가 제대로 일을 못한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 정신적 아픔은 심리적 요인 이외에도 육체적, 문화적 요소가 강하다.

이민을 와 서러움을 겪어 본 나와 같은 1세들이라면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고통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 불편함은 역으로도 느껴질 것이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에 악센트가 강한 어느 외국인 의사에게 자신의 아이를 믿고 맡기는 것이 모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들이 눈에 뛴다. 인종이나 사용하는 언어가 자신과 다른 의사를 못 미더워 하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의사에게도 ‘믿지 못할 이유’ 를 늘 찾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이래저래 타인을 신뢰하지 못한다. 그 원인은 자신의 ‘밖’ 에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유대인 환자가 나에게 특별 의뢰됐다. 그는 유대인 정신과 의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비유대인인 나에게 온 것이었는데 자신의 어머니마저도 믿지 못하는 망상증 환자였다.

무엇이 원인이든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늘 의심하기 마련이다. 로라가 보내온 기록서가 내 마음에 덫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의심 많은 새 환자를 기다리는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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