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저널] 의지의 이러한 속성을 알게 된 이후 제가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의지가 있으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환자로 하여금 의지를 내게 하려고 시도했지만, 이제 그렇게 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지금까지 언급했듯이 의지는 그 순간에 어떤 조건에 따라 떠오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지를 한 번 냈다 해서 그게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리고 환자로 하여금 현 상황을 개선하는 행동을 하게 할 의지를 내게 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닙니다. 또 어떻게 해서 의지를 내게 했다 해도, 환자가 그 의지대로 행동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물론 의지를 낸 것이 안 낸 것보다는 낫습니다.

환자가 경험하고 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줘야 합니다. 그 시스템 구축을 위해 환자가 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하고, 또 그렇게 작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시스템이 어느 정도 구축되었나를 살피며 환자가 어려워하는 것들을 잘 수행 할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요즘 성욕 문제로 괴로워하는 어느 남성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성욕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와 관계된 다양한 것을 포괄해서 다뤄야지 의지만 따로 떼어 다뤄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 환자가 섹스 상대가 없다면 성욕 해결하기 위해 자위행위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남에게 피해 안 주는 범위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위행위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위행위를 하기 위해 눈으로 직접 여성을 봐야 한다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어스름할 때 다른 집의 열린 창문을 통해서 여성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하면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다면 그걸 충분히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그런 문제에 빠져들게 된 것이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스트레스 요인도 다뤄야 하고, 성장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거라면 그것도 다뤄야 합니다. 모든 요인을 정확히 하나하나 다뤄서 그에 대한 대책들이 서야 문제를 충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는 가운데 실제로 그 사람에게서 시스템 변화가 일어나야 하지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알파고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알파고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한 존재지만, 조건의 영향을 받아 인과의 법칙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이 관점에서 치료자란 조건 바꾸는 방법을 제시해 시스템을 바꾸도록 돕는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치료자가 제시한 길로 환자가 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불교 정신치료가 아무리 탁월한 치료 방법이라더라도 변화는 환자가 하는 만큼만 일어납니다.

부처님 역시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가르침을 주셨지요. 불교 경전에 나오는 유명한 살인마 앙굴리말라는 사람을 죽인 다음 손가락을 잘라 실로 꿰어서 목걸이를 만듭니다. 목표는 1,000명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완성하는 것이었지요. 앙굴라말라가 999명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자기 어머니를 죽이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그 시점에 부처님이 앙굴라말라 앞에 나서서 그를 교화합니다. 그 타이밍에 뭔가를 하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보신 거지요. 의지가 조건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임을 꿰뚫어 보신 겁니다.

치료실에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눌 때 그 순간에 조성된 조건들 덕에 환자에게 무언가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가족의 고통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치료자는 이런 것들을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 치료자는 환자가 치료실 밖에서 일상을 살아갈 때 머리에 무엇이 떠오르는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이 그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 환자가 처해 있는 구체적 상황들도 파악해야 하고, 환자에게 어떤 긍정적인 의지가 일어났을 때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지 없는지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길을 적절한 타이밍에 제시하여 변화가 올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