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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에 나타난 인간의 범죄본능(11)

모략참살(慘殺)의 대명사 살로메

  • 입력 2022.11.23 12:13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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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세례 요한은 헤로데 왕과 헤로디아 왕비의 부정한 결합을 맹렬히 비난하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독설과 인신공격적인 행동에 앙심을 품은 헤로디아 왕비는 어떻게 해서라도 요한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하고 모략을 꾸미기 시작하였다.

구스타브 모로 작: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 1874, 아몬드 해머 컬렉숀, 로스앤젤레스
구스타브 모로 작: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 1874, 아몬드 해머 컬렉숀, 로스앤젤레스

헤로디아는 남편 헤로데 왕이 의붓딸인 살로메의 춤에 홀딱 반한 사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살로메에게 어떤 부탁을 해도 왕이 거절할 수 없도록 약속을 받아내라고 부추겼다.

헤로데는 아름다운 살로메의 춤추는 모습만 보면 넋이 나가건 하였는데 헤로디아는 바로 이점을 노려 딸에게 왕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약속을 하여야만 춤을 추겠다고 하라고 타 일었다. 어머니의 지시대로 살로메는 관능적이고 간드러진 춤을 추다가 멈추고 계부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주어야 춤을 계속하겠다고 하였다.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헤로데 왕은 무의식적으로 그러마하고 약속을 하였다.

뒤늦게 자신의 섣부른 약석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깨달은 헤로데는 약속을 취소할 것을 요구 하였으나 살로메는 왕강하게 거절했다. 얼마 후 더운 피가 뚝뚝 흐르는 요한의 머리가 쟁반에 담겨져 살로메에게 전해졌다.

세례 요한은 방탕하고 사악한 헤로디아와 냉혹하고 무자비한 살로메의 음모로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술인들은 세례 요한의 비국적인 삶과 죽음의 드라마에 깊이 매혹되었다. 즉 성자의 목을 요구하는 냉혹한 미녀와 간통한 왕비의 눈 밖에 난 죄로 비참하게 살해된 성자의 극적인 운명이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그래서 오스카 와일드가 희곡 형식으로 쓴 단막극 ‘살로메’(1896)는 성서의 내용에 에로틱한 양념을 가미해 선정적인 러브스토리로 각색했는데, 첫눈에 사랑에 빠진 살로메의 연정을 거부한 세례 요한을 증오한 나모지 잔인하게 보복한다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바꾸었다.

이러한 내용을 맞받아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구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도 이에 가세하여 살로메 연작을 그렸다. 그래서 살로메하면 곧 모로를 연상하리만큼 그의 살로메 작품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의 그림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1874)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나오는 ‘일급 개 베일의 춤’을 추는 것을 그린 것인데 일곱 개 베일의 춤이란 요염한 댄서인 살로메가 일곱 개의 엷은 옷을 하나씩 벗으면서 헤로데의 욕정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춤을 말하는데 살로메는 헤로데가 초조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춤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헤로데는 막강한 왕의 권력을 과시하는 듯 웅장한 궁궐의 옥좌에 앉아 사로메를 내려다본다. 왕의 등 뒤에는 음침한 분위기의 여러 신상들이 왕을 호위하고 있다. 불길한 느낌을 풍기는 신상들은 헤로데가 사악한 악마의 후예임을 말해주는 상징물이다. 왕의 왼쪽에는 헤로디아 왕비가 춤추는 딸을 대견스럽게 지켜보고 있고 그 앞에 루트 연주자가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음탕의 상징인 흑표범과 번득이는 시퍼런 칼을 든 망나니가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다.

화면 중앙에 화려한 온갖 보석으로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치장한 살로메의 한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앞으로 뻗어 허공을 가르고 있다. 땀이 스며 나오기 시작해 빛나는 흰 피부에 거칠게 몰아쉬는 숨결로 부푼 가슴의 관능미는 벌써 노안의 왕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구스타브 모로 작: ‘출현’, 1876, 파리, 루브르 미술관
구스타브 모로 작: ‘출현’, 1876, 파리, 루브르 미술관

모로의 살로메에 대한 또 하나의 그림 ‘출현’(1876)은 살로메가 일곱 개 베일의 춤을 추면서 옷을 하나씩 벗어 이제는 나체가 된 찰나이다. 그녀가 왼쪽 손으로 가리키는 허공에는 목이 잘려 피가 떨어지는 요한의 머리가 나타나 있다. 졸지에 억을 한 죽음을 당한 요한은 눈을 부릅뜬 채 사악한 요부를 노려본다. 살로메 역시 이에 질세라 표독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있는 요한을 향해 거칠게 손가락질하며 맞선다.

헤로데는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여인의 등 뒤에 희미한 그림자로 남았다. 왕도 왕비도 망나니도, 살로메의 아찔한 성적 마력에 취해 한낱 배경을 장식하는 무늬로 전락하고 말았다. 악마적이고 사악한 힘으로 충만한 여인의 매력은 남자를 압도해 한 남자는 애꿎은 죽임을 당하고 또 다른 한 남자는 여인의 강렬한 유혹에 빠져 그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수채화로 그린 ‘출현’의 장면은 요한이 참수 당하기 전의 장면으로 허공에 뜬 요한의 머리는 왕이나 왕비 그리고 망나니 등 그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살로메의 눈에만 보이는 환시(幻視)현상으로 그린 것이다. 즉 얼마 후에 벌어질 어쩌거니 없는 결과를 살로메는 알고 이를 환시를 통해 보고 있는 것이다.

카라바조 작: ‘세례 요한의 참수’,1608, 성 요한 대성당, 발레타(말타 섬)
카라바조 작: ‘세례 요한의 참수’,1608, 성 요한 대성당, 발레타(말타 섬)

살로메의 환시에 나타난 예상대로 헤로데 왕은 요한의 목을 칠 것을 망나니에게 명한다. 그래서 망나니가 오한의 목을 치는 장면도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는데 그 가운데서도 이 줄거리에 잘 맞게 표현된 것이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그린 ‘세례 요한의 참수’(1608)라는 그림이다.

‘세례 요한의 참수’는 그가 그린 것 중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요한은 두 팔이 뒤로 묶여 땅에 눕혀졌고, 망나니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첫 칼에 목을 베지 못한 망나니는 허리춤에서 다시 단도를 꺼내든다. 살로메의 하녀가 그의 머리를 받아가려고 대야를 준비하는데 늙은 하녀가 옆에서 전율을 느끼며 바라본다. 터키식의 복장을 한 간수는 이 잔인한 살육을 지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지금도 말타 섬의 대성당에 걸려 있다.

무엇보다 흥미 있는 것은 이 그림의 서명이다. 이것은 그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서명이기 때문이다. 또, 서명 앞에 ‘프라(fra)를 먼저 썼는데, 이는 ’형제(frate)‘ 혹은 기사임을 나타낸다. 서명은 화폭의 중앙 맨 아랫단에 있는데 세례 요한의 목에서 흐르는 피로 서명했다. 그의 피가 곧 자신의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카라바조도 역시 사형수임을 결부시켜, 세례 요한과 카라바조 자신을 동일시한 것으로 보이며, 이런 점에서 피의 세례 성사(聖事) 즉 카라바조의 순교가 암시된 작품이라는 평이 있다.

성서에 나오는 여성으로 여러 예술작품 즉 그림, 희곡, 오페라 및 소설 등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어니 해도 살로메일 것이다. 그것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충분한 소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법적인 측면으로 볼 때 헤로데 왕은 자기의 형의 부인 즉 형수인 헤로디아를 가로채서 자기 부인으로 삼았으며 전 남편의 딸 살로메는 헤로데 왕으로 볼 때는 조카딸인데도 연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아는 예언자 요한은 “형수를 가로 챈 것은 근친상간(近親相姦)의 죄에 해당된다고 비난하였기 때문에 투옥 되었으며 요한이 예언자임을 겁낸 헤로디아 왕비는 이러한 모략을 꾸며 그를 참살 하였던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자기가 지운 죄를 겁내고 음폐하기 위해서 바른말 하는 사람을 모략하고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 또 그런 마음을 먹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과 그림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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