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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Aimez-vous Brahms...

  • 입력 2022.11.24 11:59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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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내부 ㅣ 이미지출처 Das Kurhaus Wiesbaden 홈페이지
비스바덴 쿠어하우스 내부 ㅣ 이미지출처 Das Kurhaus Wiesbaden 홈페이지

쌀쌀해진 이 가을에 생각나게 하는 작곡가 중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회자되곤 한다. 가을의 서정에 브람스를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그의 작품에서 우수에 찬 고독한 정서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걱정과 근심 또는 멜랑콜리(melancholy)나 글루미(gloomy)와 같은 수식어가 함께 붙는다. 아마도 기상에서는 기압의 배치가 빚어낸 계절의 변화에 사람의 심리도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브람스 교향곡 3번 F장조 Op. 90의 초연 지휘를 맡았던 지휘자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1888-1976)는 남성적인 느낌의 이 곡을 마치 베토벤의 ‘영웅(Eroica)’과 같다고 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영웅’과 다른 점은 각 악장의 쓸쓸한 분위기와 조용한 끝맺음 그리고 작품 중간에 느껴지는 약간의 허무함도 베토벤의 영웅과는 다르다. 이 곡은 서정적 선율로 사랑의 기쁨과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특히, 3악장의 도입부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된다.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 1935-2004)의 작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Aimez-vous Brahms...)’을 영화화한 ‘Goodbye Again(이수:離愁)’에서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이후 브람스 작품 중 높은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되었다.

왕들의 휴양지였던 비스바덴 ㅣ 이미지출처 DSLWeb
왕들의 휴양지였던 비스바덴 ㅣ 이미지출처 DSLWeb

왕들의 휴양지에서 남긴 아름다운 흔적

브람스의 두 번째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이 곡도 독일 헤센주의 주도인 비스바덴 (Wiesbaden)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는 중에 작곡되었다. 비스바덴은 로마 시대부터 발전한 온천 도시로, 중세시대에 유럽의 황제와 제후들이 별장을 짓는 ‘왕들의 휴양지’로 불린 곳이다. 현재도 온천과 카지노, 와인으로 각지의 유럽에서 휴양을 위해 찾고 있다. 비스바덴은 독일의 다른 도시와 달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폭격을 거의 받지 않았기에 18~19세기 지어진 건축물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카지노와 대형 공연장으로 사용되는 쿠어하우스(Kurhaus)로, 이곳은 1810년 개장 후 바그너, 괴테, 브람스 등 독일 예술가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옙스키까지 유럽의 명사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훌륭한 주변 환경 덕분일까, 교향곡 3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짧은 기간 안에 마무리되었다. 브람스는 기악곡만큼 다수의 성악곡을 남겼는데, 그중 가곡은 무려 200곡 이상이다. 당시 브람스의 음악 인생에서 많은 가곡이 탄생한 시기였기에, 교향곡에서도 노래와 같은 선율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휘자 한스 리히터의 별칭과는 달리 브람스는 이 곡을 ‘작은 교향곡(Symphonienchen)’이라 부르기도 했다(편집자 주: 독일어에서 ‘-chen’은 축소어를 만드는 접미사이다).

비스바덴에서 브람스에게 영감을 준 콘트랄토 Hermine Spies ㅣ이미지출처 Historische-daten 홈페이지
비스바덴에서 브람스에게 영감을 준 콘트랄토 Hermine Spies ㅣ이미지출처 Historische-daten 홈페이지

단기간에 작곡을 마친 사연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해진다. 브람스가 그해 여름 비스바덴에 머물게 된 것은 콘트랄토(Contralto, 메조 소프라노와 테너 사이의 음역, 여성저음) 가수 헬미네 슈피스(Hermine Spies, 1857–1893) 때문이었다. 그녀는 독일 가곡, 특히 브람스 가곡에 대해 깊은 공감을 갖고 있었으며, 브람스의 인품을 알게 되면서 한층 더 깊은 애정으로 그의 가곡을 접하게 된다. 그녀는 브람스의 작품을 훌륭하게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브람스는 비스바덴에서 헬미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의 사랑은 새로운 교향곡 작곡에 대한 열정과 동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이 작품은 4개월 만에 완성하게 된 것이다. 비스바덴의 고요한 숲속에서 산책을 하며 악상을 떠올리고 사랑의 열정적인 기쁨을 담아낸 것이다.

 

유럽 최고의 작곡가라는 명성을 가져다준 곡

교향곡 3번은 브람스가 그의 나이 50세에 완성한 곡인 만큼 무르익어있다. 1883년 10월 드보르작(A. Dvorak, 1841-1904)이 남긴 편지에 브람스의 ‘교향곡 3번’에 대한 인상이 담겨있다. 드보르작은 비스바덴에서 여름휴가 겸 교향곡 작업을 거의 마치고 비엔나로 막 돌아온 브람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이 그날을 회상했다. “평소에 친한 친구들에게도 말이 많이 없는 브람스가 그의 새 교향곡(3번)에 대한 질문을 받자마자 바로 저에게 다가와서는 첫번째와 마지막 악장을 연주해주었어요”. 비스바덴에서의 여름 휴가에서 작곡을 시작하고 그해 10월 비엔나에 돌아와 작곡을 완성했다. 브람스의 네 교향곡 중 가장 짧은 교향곡이지만 교향악적 색채와 독창적인 리듬이 돋보이는 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스바덴에 있는 브람스 기념패
비스바덴에 있는 브람스 기념패

이 곡의 3악장인 Poco Allegretto는 첼로의 선율이 감미롭고 서정적으로 흐르며 낭만의 극치를 이루는데 이러한 면모 때문일까,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선정되어 완성도 있는 작품이 대중적 인기까지 얻게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 필립(앤소니 퍼킨스)은 자유분방한 애인 로제(이브 몽땅)가 있는 15살 연상의 여인 폴라(잉그리드 버그만)를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원제이기도 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며 첫 데이트를 청한다. 이 늦가을의 날씨, 교향곡 제3번의 제3악장은 촉촉하게 젖은 초가을의 파리를 무대로 하는 애수 어린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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